[인터뷰] 뷰티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국내서 페미넘 캐릭터 구축하고 싶어 도전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인기 전혀 예상 못해

맨즈 뷰티 쉽지 않은 도전, 질타도 많아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서 남자도 가꿔야

뷰티 철학, 화장은 철저히 이기적이게 해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장법 찾는 것이 중요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K뷰티 널리 알리고파
내 이름을 건 브랜드 론칭하는 것이 목표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내가 그쪽으로 가겠어요~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매주 일요일 저녁, 교태스러운 몸짓과 능글맞은 말투로 막바지에 이른 주말의 아쉬움을 배꼽빠지는 웃음으로 달래주던 ‘댄서킴’을 기억하는가. 그는 명불허전 장수 개그 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에서 펄럭이는 나팔바지를 입고 긴 다리를 사방으로 쭉쭉 뻗어대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40)씨다.

댄서킴 이후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 날 예기치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며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듯했다.

남자의 변신은 무죄라 했던가. 어느날 돌연 날카롭게 그은 아이라인과 곱게 뻗은 속눈썹, 짙은 립스틱을 바른 다소 파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김기수는 맨즈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평소 손수 화장품을 구매하고 메이크업을 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코스메틱 덕후(이하 코덕, 화장품과 관련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라는 그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지난 30년 가까이 이런 사실을 숨기며 지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도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 남자도 여자보다 더 화장을 잘하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과감히 뷰티 크리에이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큰 기대 없이 유튜브 채널에 처음 올렸던 영상은 누적 조회 수 60만뷰(인터뷰 당일 기준)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뷰티 유튜버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내에선 찾아볼 없던 페미넘(female+male,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의미를 가진 은어)스러운 독보적인 캐릭터로 뷰티 크리에이터계에 새로운 변화의 돌풍을 몰아치고 있는 김기수.

<투데이신문>은 지난 15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손수 기자의 화장을 고쳐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앞으로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김기수의 인생 계획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Q. 최근 맨즈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화제가 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지난 30년 동안 남자가 화장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코덕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하고 다닐 수 있어 정말 좋다.

Q. 인기를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 욕먹을 각오하고 시작했다. 예전에 무대화장을 하고 SNS에 사진을 올렸을 때 부정적인 기사가 매우 많이 나왔다. 악플러 때문에 집 앞을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화장품을 모조리 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겠다 마음먹고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사람들도 나를 인정하게 됐다. 당시 안티였다가 지금은 팬이 된 경우도 있다.

Q. 뷰티 크리에이터 활동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코덕이다보니 메이크업과 관련한 유튜브 영상을 굉장히 많이 봤다. 그중에서도 페미넘스러운 쟈니 시우스의 영상을 보고 영감을 굉장히 많이 얻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유튜버가 없더라. 남성이 여성보다 더 화장을 잘하고 섹시하고 교태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페미넘스러운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유튜브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Q.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부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가장 먼저 올린 영상이 버건디 메이크업인데 웹캠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영상 퀄리티가 굉장히 좋지 않다. 그런데 누적 조회 수가 60만뷰가 넘을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생각 이상의 반응에 어리둥절하다. 영상을 올릴 때마다 ‘오빠 메이크업 따라서 해봤어요’, ‘오빠가 쓰는 제품 구입했는데 괜찮았어요’ 등의 코멘트를 받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대세가 됐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김기수 유튜브 영상 캡처 화면 ⓒ투데이신문

Q. 국내에는 남자 뷰티 유튜버가 드물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물론 쉽지 않았다. 질타와 손가락질도 많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려놨다. 내가 메이크업을 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가지 루머도 많았는데 나만 사실이 아니면 되고,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일 자신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욕도 관심 아닌가(웃음).

Q. 롤모델이 있는가.

해외 남자 뷰티 유튜버 쟈니 시우스다. 외모도 잘생길뿐더러 메이크업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남잔데도 정말 섹시하다. 그의 영상이 (맨즈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많은 분들이 나를 한국의 제프리 스타(Jeffree Star)라고 말씀해주시지만 내가 생각하는 롤모델은 쟈니 시우스다.

Q. 다른 남자 뷰티 크리에이터와 본인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결정적인 차이점은 콘셉트의 지향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페미넘스러움을 추구한다. 국외에는 드랙퀸(Drag Queen, 남성이 여성처럼 차려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이나 페미넘스러운 유튜버들이 많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내가 독보적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계속 이 콘셉트를 유지할 생각이다. 나를 발판 삼아 다양한 유튜버들이 활동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구독자 타깃은 누구로 잡고 시작했나.

우리나라 여성들은 화장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기적이게 하지 못한다.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자들이 백이면 백 좋다고 말하는 민낯 같은 메이크업을 하려 한다. 화장은 철저히 이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굴 타깃으로 뒀다기보다는 여성해방운동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웃음).

Q. 한 달 평균 화장품에 투자하는 비용은 어느 정돈가. 보유한 화장품도 많을 것 같은데.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웃음). 매일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을 전부 사용해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화장품 개수도 셀 수 없이 많다. 작업실이 내가 사용하는 방이라 컴퓨터, 책상, 화장대, 디제잉 장비로 가득했는데 다 치워버리고 이제는 메이크업과 관련된 것들만 남아있다.

Q.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난감하다. 모든 브랜드를 좋아한다. 쓰면 쓸수록 좋은 제품도 있고 나쁜 제품도 있을 수 있다. 브랜드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꼬집기는 어렵다.

Q. 영상에 등장하는 화장품은 직접 구매한 것인가. 제품 평가는 객관적으로 하는지.

처음에는 전부 직접 구매한 제품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협찬도 있고 팬분들이 일본, 캐나다 등에서 많이 보내주시기도 한다. 화장품에 대한 평은 내가 쓰고 좋지 않다고 느끼면 유행어인 ‘두 번은 안 써’라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지속력이 떨어진다’, ‘발색이 나쁘다’ 길게 말하는 것보다 그 한마디면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사진 제공 = 번하드이엔티>

Q. 화장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눈이다. 언젠가 어떤 분이 하신 ‘나는 밥은 굶어도 눈 화장은 굶지 않는다’는 말이 뇌리 속에 꽂혔다. 그만큼 사람한테 눈이 중요하다는 의민데 나 역시 그에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도 눈 화장에 열광한다고 본다. 나는 눈 화장을 절대 쉬지 않는다. 하다못해 아이라인 하나라도 꼭 그린다.

Q. 실제 구독자 가운데 본인을 통해 화장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남성이 있었나.

요즘 ‘저도 코덕인데 형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뷰티 유튜버를 준비한다는 친구들도 연락이 온 적 있다. 유튜버라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홀릴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캐릭터 싸움이기 때문에 콘셉트를 잘 잡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Q. ‘김기수의 화장은 남자가 소화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는데.

맞다. 그런 지적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나는 유튜브 방송을 내가 여성보다 더 화장을 잘하고 더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 남성분들이 따라 하라고 한 게 아니다. 종종 댓글에 평소 남자도 따라할 수 있는 데일리 메이크업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내 채널보다는 그런 메이크업을 하는 다른 남자 유튜버 채널을 구독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Q. 영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직접 다 한다. 컴맹이기 때문에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유튜브 채널을 위해 열흘 동안 잠도 못자고 배웠다. 해외 유튜버들의 편집 영상을 많이 참고했다. 그래서인지 내 영상에 대해 외국 유튜버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이 많다. 10분짜리 영상 하나 완성하는데 3일 정도 소요된다. 메이크업도 거울로 봤을 때랑 화면으로 봤을 때가 다르다. 생각과 다르게 예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화장을 지우고 다시 한다. 보통 3번은 지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편집하고 자막, 음성 녹음, 병합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영상이 채널에 올라간다.

Q. 제작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영상과 가장 만족스러운 영상을 꼽는다면.

데일리 메이크업에 대한 요청이 너무 많아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센언니 콘셉트의 메이크업만 해오다 데일리 메이크업을 하려니 심심해서인지 너무 안 예뻤다. 그날 화장만 네 번 지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만족스러운 영상은 맥(MAC)과의 컬래버레이션 영상이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화장법으로 아이라인을 그릴 때 점막을 채우지 않았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화장법이었고 그래서인지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다른 매력을 느꼈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영상이다.

   
▲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사진 제공 = 번하드이엔티>

Q. SBS 모바일 프로그램 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이하 예살그살)도 화젠데.

현재 500만뷰(인터뷰 당일 기준)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 옥성아 PD님과 곽민지 작가님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페미넘스러운 남자 캐릭터를 찾던 중 나를 알게 됐고 캐스팅 우선순위에 뒀다고 들었다. 내 채널에서는 퍼포먼스 위주로 보여준다면 예살그살에서는 메이크업 꿀팁을 전수한다는 차별성이 있다. 방송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옥PD님과 곽작가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Q. 점차 미용에 관심 많은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이 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전에 스트리밍 방송에서 ‘남자가 꾸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게 왜 질문 거리인가. 2017년은 남자도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다. 깨끗한 인상을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루밍족이 늘고 있는 현상은 남자들의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라고 본다.

Q. 하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다. 하루는 카페에서 말끔한 차림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이 ‘김기수 메이크업 잘하더라’, ‘우리도 꾸며야 된다’, ‘김기수 어떤 제품 쓰더라’는 등 욕이 아니라 내 메이크업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거 보면 이제는 좀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인식이 변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Q. 개그맨, DJ, 뮤지컬 배우 다양한 삶을 살았다. 뷰티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은 어떤가.

그동안은 사람들하고 부딪힘 속에서 일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방송이다 보니 작업도 혼자 하고, 일이 잘 됐을 때의 기쁨도 혼자 즐기고, 스트레스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분명 녹화는 낮에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면 깜깜한 밤일 때도 있다. 가끔 ‘지금 나 혼자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로운 싸움이다.

Q. K뷰티가 급성장하면서 한국 뷰티 유튜버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은 없는지.

당연히 있다. 지금도 해외 팬이 많다. 얼마 전에는 외국 분이 내 영상을 구독하는데 자막이 없어 불편해한다는 코멘트도 왔었다. 조만간 영문 자막도 실행해 구독자 층을 넓혀갈 계획이다.

   
▲ 개그맨 겸 방송인 김기수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Q. 본인만의 뷰티 철학이 있다면.

‘화장은 이기적이게 하라.’유행하는 화장법을 따라 한다고 예뻐지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장법이 있다. 그걸 찾아내 본인이 하고 싶은 화장을 하는 게 중요하다.

Q. 앞으로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나. 목표가 있다면.

백화점에 크게 사진이 걸리는 화장품 모델도 해보고 싶고, 언젠가 ‘김기수 라인’처럼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 지인이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는데 메이크업 영상을 자주 보는 직장 동료들이 내 영상을 접하고 한국에도 이런 사람이 있냐며 놀라워했다고 하더라. 더 나아가서는 K뷰티에 대해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알리기 위해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다.

Q. 본인에게 화장은 어떤 의미인가.

숨 쉴 수 있게 해준 산소통이다. 30년 동안 남모르게 화장을 했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때가 무덤 속에 사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그 무덤에서 빠져나와 산소를 마시는 느낌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 년도 채 안된 새내기 뷰티 크리에이터에게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되나 두렵기도 하지만 앞으로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더 노력할 테니까 지금처럼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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