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저자 천주희 연구원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천주희 연구원 ⓒ투데이신문

사회에 만연한 학력주의…대학진학률 70% 육박
높은 등록금에 휴학‧알바‧복학 반복해도 부담 높아

학자금대출‧청년부채, 개인 문제 아닌 사회 문제
공공 영역서 이뤄져야 하는 복지, 금융화 되고 있어

경제 여건 관계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
대학, 취업관문 아닌 선택지로 작용해야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대졸 이상’의 고학력이 평준화됐다. 지난해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70%에 달했다. 고졸자 10명 중 7명은 대학에 진학한 셈이지만, 지난해 4년제 사립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학기당 737만원. 일반 가정에서 감당하기에 대학 등록금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자연스럽게 학자금대출 이용자도 증가했다. 한국장학재단이 밝힌 학자금대출 이용자는 2006년 54만명에서 2015년 92만명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대학 졸업 이후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쉽사리 취직이 되지 않아 청년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실업자 중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45.1%였다. 실업자 2명 중 1명은 고학력자라는 말이다. 최근엔 12학번이 역대 최대의 취업난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등장했다.

특히 부채가 있는 채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청년들 중에는 취업이 미뤄짐과 동시에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학자금대출 연체율은 4.19%를 기록했고, 원금 및 이자를 2년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로 낙인찍힌 청년은 1만7773명에 달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천주희(31) 연구원 또한 실제 학자금대출 채무자다. 그는 휴학과 아르바이트, 복학을 반복하며 서울살이와 대학 등록금을 감당해왔고 결국 10년 만에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도 모자란 등록금은 8차례에 걸친 학자금대출로 메꿀 수밖에 없었다. 꾸준히 원금과 이자를 갚아왔지만 완납까지는 앞으로도 몇 년이나 남았다.

그러다 청년부채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본인의 경험과 부채를 안고 있는 청년 25명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논문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발간한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도서는 57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청년부채 문제가 비단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증가했다는 방증이다.

학생이 부담하기엔 값비싼 대학등록금과 이로 인한 학자금대출, 자연스럽게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사회초년생.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그리고 무상교육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15일 어느 작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천주희 연구원 ⓒ투데이신문

Q.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새사연에서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글도 쓰고 연극에 참여하기도 한다.

Q. 학부 때와는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성공회대에서 신문방송학 및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문화학과 대학원에서 문화학 및 여성학을 공부했다. 연세대에서 공부했던 문화학이나 여성학이 사회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인류학을 할까 문화연구를 할까 고민하다 문화학협동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Q. 논문에서 학자금대출과 부채에 관해 다뤘다. 이 주제를 택한 이유는.
최근 3~5년 사이에 학자금대출과 관련된 논문, 그리고 부채나 금융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학계에서도 이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 주제를 택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 논문은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25명의 연구참여자들을 만나고 어떻게 가족과 개인이 부채 및 학자금대출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Q. 연구참여자로 만난 25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지.
사실 모두 기억에 남는다. 연구참여자들을 처음 만난 건 2013년 11월이었고 논문은 2015년 7월 세상에 나왔다. 그들을 여러 번 만나기도 했고, 그 사이에도 시간이 흘러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도 대학원을 졸업한 뒤 그들처럼 취업준비를 위해 쉬기도 했다. 부채 문제도 함께 안고 있었고, 그들과 닮은 부분이 많았기에 더 기억에 남았다. 책이 아닌 논문에는 그들이 졸업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쓰기도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한 번 고장난 뒤로 연락처를 잃어버려 25명 중 3명 정도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언젠가 이 책을 보게 되면 연락을 해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뒤에 이메일 주소도 써놨으니 꼭 연락해줬으면 좋겠다.

Q.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도서가 이번 57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에서 수상했다. 소감이 어떤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처음 나온 책이 상을 받아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웃음). 그렇지만 단순히 글을 잘 써서 수상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부채와 학자금대출이라는 주제를 이제는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생각해 이 책이 상을 받은 것 같다. 무엇보다 혼자 공부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받은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Q. 다음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하고 싶은 연구는 많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속도가 느린 편이고 몸이 하나인지라 많이 고민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의 이야기도 연구하고 싶다. 또, 단순히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을 넘어 노동시간과 관련된 노동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 ⓒ게티이미지뱅크

거금의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에 가는 이유

Q. 부모 세대들은 자식을 꼭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게 문제라고 보는지.
부모가 자식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건 당연하다. 부모 세대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기에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또 대학진학률 70% 시대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자식을 대학에 더 보내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선 더 나은 환경 혹은 안정적인 방법을 무조건 ‘대학’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Q. ‘교육비’라는 측면에서 등록금을 부모가 꼭 대줘야 한다는 인식도 강한데.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력주의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제도가 많지 않고 기업복지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학력주의 시대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에 가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IMF 이후엔 이 구조가 무너졌다. 2015년 말엔 모 대기업 신입사원이 29살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더 이상 대기업이 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삶의 경로를 청년들에게 강제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다른 선택지들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책에서는 이를 ‘신학력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Q. 최근 국내는 고학력이 평준화가 돼버렸다. 이것도 신학력주의의 일환일까.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의 기능은 취업과 직결돼있다. 대학은 학교에서 노동사회로 진입하기 전 남들과 다른 조건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협상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한다. 특히 예전엔 대학졸업자(대졸자)가 별로 없어서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엔 대부분 사람들이 대졸자에, 대졸자가 아니더라도 이후 전문대나 사이버대학을 통해 학위를 딴다. 고학력이 평준화됐다는 말이다. 굳이 대학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던 기술, 예를 들면 직업훈련센터에서 배우던 것들을 대학에서 배운다. 이에 대해 나는 굉장히 비판적이다. 그런데 고학력 평준화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만큼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본다. 작년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조금 떨어졌다. 대학이 자신의 삶에서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대학 등록금으로 차라리 다른 것들을 시도하거나, 대학 밖에서 자신의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본다. 이렇듯 대학에 대한 인식이 향후 5년 사이엔 많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Q. 대학에 가고 싶어도 돈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학에 갈 수 있음에도 대학을 택하지 않는 것과 경제적 조건 때문에 대학을 할 수 없이 포기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건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다. ‘대학은 선택’이라는 말은 많이 한다. 그렇지만 내가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대학 진학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비로소 대학이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했거나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에 가는 건 결코 ‘선택’이 아니다.

Q.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한 학기를 다니고 다음 학기를 휴학해 일하는 대학생들도 많은데.
개인적으로도 재정을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는데, 지식이 축적되지 않고 단절되니 그 안에서 성찰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 혹은 학생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없었던 것 같다. 흔히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만 사회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사노동자나 장애인, 예술가, 학생 등 경제활동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생과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을 사회에서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인식이 바뀌면 돈이 없어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나 일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이 조금씩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Q. 최근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무원시험 준비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고등학생 때는 선생님들이 “차라리 대학 가지 말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라”고 했다. 그만큼 공무원시험에 바로 뛰어드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보니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혹은 대학을 다니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옛날엔 공무원도 대학과 같은 하나의 선택지였는데, 이제는 유일하게 잡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지푸라기와 같은 꼴이 돼버렸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더라도 2~3년은 공부해야 한다. 삶이 자꾸 유예된다. 단순히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직업이 많이 줄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겠다.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천주희 연구원 ⓒ투데이신문

학자금대출 받아 대학 가는 시대

Q. 책에서 ‘소 팔아서 대학 가던 시대’에서 ‘대출 받아 대학 가는 시대’로 변했다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빚을 내서 대학 가는 건 사실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물가에 비해 등록금은 늘 비쌌다. 예전엔 소나 땅이 그 집의 엄청난 자원이자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대학은 곧 가족이 다시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일종의 경제 재생산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저당 잡힐 소도 땅도 없다. 부채가 소에서 대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현재를 ‘대출 받아서 대학 가는 시대’라고 표현했다.

Q. 1960년부터 학자금대출 제도가 존재했지만 2000년 이후 10년간 무려 3차례나 변화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는 무척 놀랐다. 어떻게 제도가 그렇게 자주 바뀔 수 있을까. 장기적 전망을 갖고 준비하기보단 반값등록금 투쟁 등이 있었을 때 주먹구구식으로 제도를 바꾼 건 아닐까 한다. 금융이 일상으로 확대되면서 의료, 주거, 대학 등 공공 영역에도 많이 들어갔다. 제도를 좋은 쪽으로 바꿔가는 건 물론 좋다. 그렇지만 더 이상 공적 영역에서 일관성 있게 운영되지 못했고 그만큼 학자금대출 제도와 채권자는 급격히 자꾸 변해왔다. 채무자에게는 참 불편한 제도였다.

Q. 한국장학재단이 이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2009년 한국장학재단이 만들어지고 지금도 학자금대출 제도는 바뀌고 있다. 물론 이를 설명하는 건 한국장학재단의 역할이 맞다. 이와 동시에 학자금대출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도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장학재단에선 대출을 받으면 좋은 점에 대해서만 좋은 언어로 말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무서운 말도 많이 한다. 빚은 사망 시에도 갚아야 하고, 빚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말한다. 그렇지만 공포와 위협의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서 ‘빚을 못 갚는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설득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와 주변의 부채 연구자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Q. 학자금대출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이를 편리한 제도로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나쁜 제도로 보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신용카드를 쓰는데 다음달에 카드값을 낼 수 있으면 이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포인트까지 준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갑자기 실직해서 혹은 돈이 없어서 카드값을 내지 못한다면 이건 위기가 된다. 사람이 어떤 상황과 조건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같은 제도를 바라보는 인식은 다른 것 같다. 연구를 하면서도 사람들이 학자금대출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다름을 느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지 고민한 결과 ‘계급’에 따라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크게 4개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번, 소득이 높은 부모가 학비를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 2번, 공무원인 부모를 둬서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 3번, 일반 학자금대출을 받는 사람. 그리고 4번, 학자금대출이 연체됐거나 혹은 학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는 학교에 진학한 탓에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 먼저 1번은 빚을 내지 않아도 되니 전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2번은 이자가 없으니 학교 다니는 동안 비교적 부담을 덜 느끼고 있었다. 3번, 특히 든든학자금대출(졸업 후 대출금 및 이자를 상환하는 제도)을 받기 전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끊임없이 이자를 내야 하기에 부담을 느낀다. 4번은 이자가 엄청나다. 막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일한 학자금대출을 이용하지만 이미 나와 가족의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계급화된 신용등급과 부채로 연결되는 것이다.

Q. 이렇게 보니 모든 금융이 가족과 묶여있는 것 같다.
그게 한국 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모가 이혼을 한 상태에서 본인은 편부모와 가난하게 살아도,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다른 편부모가 소득이 높으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다.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복지제도가 한국은 가족 단위로 묶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 학자금대출도 일종의 복지제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복지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게 진정한 복지제도라면 대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자신의 소득 분위가 낮음을 증명한다는 이유에서 국가장학금 대상자나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선정된 대학생들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선의에서 장학금을 주고 생색을 내는 방식으로 장학금 제도가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대학생이기 때문이라기 보단 ‘가난하기 때문에’ 장학금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가장학금 대상자나 교내 근로장학생 선정 시 소득 분위가 낮은 학생에게 더 기회가 많이 갈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를 대대적으로 명시하는 건 감수성이 부족한 측면 같다. 특히 예전엔 근로장학생을 선정할 때와 학자금대출을 받을 때도 자기소개서를 썼다.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가난 증빙 서류’를 내는 거다. 그 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낀 학생들도 많았다.

Q. 대학생 땐 학자금대출이, 결혼할 땐 주택담보대출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다. 어떻게 보는가.
한국장학재단이 생기기 전에는 학자금대출을 한국주택공사에서 운영했다. 그래서 둘은 유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서 얘기했듯 공공 영역에서 이뤄져야 하는 복지가 계속 금융화되는 건 좋지 않다. 진짜 복지가 아님에도 복지인 것처럼 선전한다. 그 점을 비판하고 싶다. 한국이 고비용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수입은 적은 편이고, 그 상황에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어디서부터 해결할 수 있을지 여러 사람들과 고민해보고 싶다.

Q. 부채를 관리하기에 20대는 경제관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청년들이 경제관념을 갖고 살기엔 앞서 말했듯 학자금대출 제도가 너무 급격히 변한다. 개인을 탓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오히려 요즘은 부채뿐만 아니라 금융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예전보다 많다. 또, 경제관념이 없다는 말은 보통 70~80년대 고성장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 같다. 저축을 열심히 하면 돈을 모을 수 있던 그들 눈엔 지금 청년들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건이 바뀌었다. 지금은 저성장 사회다. 서울에 있는 청년들의 평균 월급이 160만원이라고 한다. 월세 내고 생활하다 보면 저축할 게 없다. 실상 청년들을 보면 그 안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돈이 있건 없건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

Q. ‘대학 무상교육’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대학진학률이 70%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고등교육을 너무 사적인 영역으로 몰고 간다. 그렇지만 대학은 개인의 투자가 아니라 사회적, 공적 영역이어야 한다고 본다. 꼭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가 아니라 일을 하면서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어질 수 있다. 30대건 40대건 누구라도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취직을 위한 전 단계가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자기성찰의 장으로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학자금대출을 늘릴 것이지만, 공적 영역이라면 장학금이 늘어나거나 등록금이 낮아질 수 있을 거다.

Q. 이렇게 바뀌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바라는 건 인식의 전환이다. 사실 대학 내에서 빚이 있다는 건 금기시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하기를 꺼려한다. 단순히 ‘너는 빚을 졌으니 가난하다’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대학 진학을 위해 계속 빚지기를 권유하고 있고 그 안에 너와 내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학에 들어갈 때 입장권을 갖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부모가 입장권을 대신 사주고, 누군가는 학자금대출을 통해 입장권을 구입한다. 또 누군가는 일을 해서 입장권을 산다. 그렇듯 다른 조건에서 들어왔지만 적어도 입장권을 갖고 있는 대학 안에서는 평등했으면 좋겠다.

또 등록금을 인하하는 건 단순히 내가 적은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가 아닌, 이후에 대학에 진학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들의 아이가 10년 후면 대학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땐 학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Q. 10년 안에 변할 수 있을 거라 보는지.
그렇다(웃음). 변했으면 좋겠다.

Q. 대학이 이미 하나의 기본 스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대학진학률이 더 높아져 취업난이 심화될 거라는 우려도 있는데.
이미 고학력사회기 때문에 학력이 평준화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제안하는 건 단순히 대학 무상교육만이 아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받게 하자는 거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될 만한 사회를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진정으로 대학이 선택이 될 것 같다. 굳이 대학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삶을 시도할 수 있도록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들도 많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잘하고 싶은 걸 발견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사회에서 많이 열어줬으면 한다.

Q. 대학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대학원 졸업생이 하는 것도 아이러니할 수 있겠는데.
이전에도 대학은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더 이것을 주장하는 것 같다. 대학은 성공이 아니다. 대학에 가도 인생은 늘 성공과 실패를 오간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 사는데 굳이 대학에 가야 할까. 적어도 비싼 돈 주고 대학에 갔으면 본인이 하고 싶은 거라도 마음 편하게 하면 덜 억울할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등록금도 못 내고 생계도 힘든데 동시에 취업준비를 하며 조바심을 내야 한다. 4~5년 대학에 다니고 남는 게 고작 이력서 한 줄이라면 정말 슬픈 거다. 그래서 그걸 바꿔보자고 말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뭘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때문에 너무 지쳐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소진돼버린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자금대출로 인해 부채를 안고 있다면, 주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채를 안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대학 등록금의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 때로 혼자라고 느껴지거나 무기력해진다면 마냥 혼자 있는 것보단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런 주변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면, 책 뒤쪽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놨으니 넋두리를 해도 좋다. 소심한 나도 용기내서 답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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