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2012년 12월, 박근혜는 1577만 3128표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국외 부재자 투표를 마치고 외국에서 개표결과를 지켜보던 기자는 약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너네 나라는 왜 독재자의 딸에게 투표했니”라고 묻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기자는 속 시원히 답변할 수 없었다. 같이 그곳에 있던 한국인들은 “이제 한국 어떡해. 가기 싫다, 창피해서 내 나라라고 부르기도 싫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세월호, 메르스. 끔찍한 수준의 재난들이 발생했지만 국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대통령의 재난 수습은 너무 더뎠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터질 게 터졌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비리부터 ‘빨간펜 선생님’ 최순실의 국정농단, 재벌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몰아주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평범한 시민들은 주말을 반납한 채 지난해 10월부터 무려 20주 동안 광장에 나왔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촛불을 들고 텐트를 설치하고 분신을 했다.

사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직접 ‘이성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다만 태극기 집회가 아직 시작되기 전, 촛불집회와 관련해 100명의 시민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물론 박근혜 지지 여부는 찬반으로 갈렸으나 무관심을 표한 몇 명을 빼고 9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현 시국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어떤 70대 남성은 국정이 혼란해 앞날이 걱정된다고, 기자에게도 고생이 많다고 격려했다. 약 한 달 뒤 우연히 종로3가역에서 본 그의 손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매번 집회에 나가서 든 생각은, ‘이 사람들은 간절하다’는 것이었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고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촛불 혹은 태극기를 들었다. 진보‧보수 어떤 꼬리표를 달고 있던 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나라가 창피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던 기자는 정의감 혹은 애국심을 갖고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든 적도 있다. 120만이 과장인지 500만이 과장인지 기자는 안 세어봐서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들이 돈을 받고 집회에 참여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목소리든 이 시대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안국역 근처 태극기 집회가 진행되던 자리엔 시민들이 버리고 간 태극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원래 태극기는 대한민국국기법 제10조 제3항에 의거해 반드시 소각해서 버려야 한다. 쓰레기통이나 길에 버려진 태극기는 국가의 명예를 실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렇지만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특히 태극기를 버리고 간 시민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나라보단 한 명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진실을 봐야 한다. 당신들이 그렇게 보호하려던 그 사람, 그렇지만 그는 당신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시위가 과격해지는데도 그는 입장발표 하나 하지 않고 벌써 몇 시간째 청와대를 불법점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과연 당신들이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나.

내 나라를 정말 지키고 싶다면 먼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자. 내 나라가 정말 올바른 길을 걷길 바란다면 앞으로 할 일들에 더 초점을 맞추자.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국기법에 의거해 태극기들을 촛불로 모두 소각시켜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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