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심판 선고일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2016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다.

지난해 10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학사 특혜 제공 논란을 시작으로 최씨와 전직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를 비롯한 비선실세들의 추악한 국정농단의 민낯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대한민국은 충격과 실의에 빠졌다.

배신감에 치를 떤 국민들은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히며 박씨의 탄핵을 촉구했다. 6번의 촛불 집회가 지나고서인 지난해 12월 9일 박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심판뿐이었다.

박씨의 탄핵 심판 심리는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직후 약 90여일간 진행됐다. 심리 중 퇴임을 맞은 박한철 전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강일권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등 9명의 헌재 재판관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공정하고 신속한 심리를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10일, 길고 긴 싸움 끝에 그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오전 9시 반, 헌재가 있는 3호선 안국역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비상국민행동과 탄기국의 안내판이 역사 곳곳에 붙어있었다. 안내에 따라 4번과 5번 출구에는 태극기 물결이, 1번과 6번 출구에는 ‘박근혜 탄핵’ 피켓 행렬이 이어졌다.

양측 모두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시끌벅적한 음악과 함께 목이 터져라 ‘탄핵 기각’을 외치는 탄기국과는 달리 비상국민행동은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침착한 분위기 속에 다함께 큰 스크린을 통해 헌재의 심판을 예의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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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로 향하는 길목에는 수백명의 경찰관들과 버스가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해가며 헌재 출입을 철저히 제한했다. 이들은 심판 결과에 따라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헌재 앞에는 심판 현장을 국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인 언론들이 앞다퉈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79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받은 방청자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방청시민 김혜성(28)씨는 “현장에 오니 (탄핵 인용이)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혹시나 기각된다면 어떡하나 걱정스럽기도 하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심경을 전했다.

김씨는 “역대 최대 수사라 평가받고 있지만 박영수 특검 말대로 수사가 반절 이하로 끝났기 때문에 탄핵 인용 후에는 더 많은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청시민 김혜정(28·여)씨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역사적 순간에 오게 돼 영광스럽다”면서 “모든 국민들이 바라는 것처럼 탄핵이 인용되길 바라고 향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보단 국민을 위한 리더십 있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좌)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 권성동 위원장, (우 )박씨 측 변호인단 서석구 변호사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탄핵심판 예정 시간이 다가오자 박씨의 변호인단과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도 모습을 드러냈다.

박씨 측 변호인단 서석구 변호사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헌법적 가치를 재확인하고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줬다”면서 “재판관들의 법과 양심을 믿고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법과 양심을 지켜준다면 오늘의 심판도 탄핵 기각, 각하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고 헌재의 결과를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정법처럼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탄핵 소추위원단 권성동 위원장은 “소추위원단은 대통령이든 그 누구든 간에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며 “8명의 헌법재판관들께서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짧게 말하고 대심판정으로 들어섰다.

오전 11시, 사건번호 ‘2016 헌나 1 대통령 탄핵 사건’의 선고가 시작됐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지난 90여일동안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왔다”며 “오늘의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선고의 시작을 알렸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함은 물론, 공무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한다”면서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고, 이에 관련한 의혹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헌재는 8대0 만장일치로 박씨의 파면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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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인용 소식이 전해지자 탄기국 측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거리 곳곳에서 망연자실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거나 태극기를 부여잡고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포착됐다.

이들은 “탄핵이 기각되나 안 되나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헌재는 진실을 외면했지만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고 결국 승리할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일부는 다소 격앙된 듯 경찰 버스를 부수고 기자와 경찰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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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상국민행동 측은 일제히 “와~”라는 환호성과 함께 축제의 장이 열렸다. 거리 곳곳에서는 신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들은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고생많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며 탄핵 인용의 기쁨을 마음껏 드러냈다.

시민 박정훈(26)씨는 “그동안 국민들 뜻대로 되는 바가 없어 너무 답답했는데 후련하다”면서 “헌재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줘 기분 좋고 오늘을 계기 삼아 향후 국민과 정부가 좋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음 지었다.

노란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흔들던 김모(79) 할머니는 “말도 못하게 행복하다”면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록(24)씨는 “박근혜 게이트는 이미 2014년 4월 16일부터 열렸기 때문에 탄핵인용이 맨 처음 광장에 울려 퍼지고, 가장 먼저 ‘세월호를 구출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면서 “유가족들이 걸었던 3년의 길도 무척이나 외로운 길이었다. 우리는 박근혜 이후의 광장을 말해야 한다. 세월호의 또 다른 이름이 백남기, ‘위안부’ 할머니,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세월호야말로 우리 시대의 척도”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이제 계속해서 우리의 빼앗긴 ‘참 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광장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 (좌) 김모 할머니, (우) 김성록씨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그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생명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100만 촛불의 힘이 이뤄낸 결과임이 틀림없다. 국민들이 살려낸 이 불씨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오늘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돼야 할 것이다. 향후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정오 무렵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광화문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마음속까지 시리게 했던 매서운 한파가 지나간 2017년 대한민국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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