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에도 망원시장 앞에 줄이 늘어서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빌라와 다세대주택들로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인심 좋은 망원시장과 맞은편에 위치한 월드컵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래된 음식점과 작은 미용실, 동네 사진관을 이용했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 망원동은 급격히 달라졌다. 망원시장 인근 포은로와 희우정로에 늘어서있던 오래된 음식점들은 어느새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들로 바뀌었다. 소위 취향을 ‘저격당한’ 20~30대들은 망원동을 찾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은 언젠가부터 망원동길을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착안해 ‘망리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리단길, 가로수길을 이은 신흥 명소라는 언론의 보도와 SNS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망원동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망원동은 지금 이 시간에도 더욱 ‘핫’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망원동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건물 임대료가 상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원주민들이 망원동 밖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원동의 두 가지 모습을 보고자 <투데이신문>은 지난 14일 망원동을 찾았다.

   
▲ 소위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엔 평일에도 대기하는 손님들이 있다. ⓒ투데이신문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망원동의 몇몇 음식점들엔 줄이 늘어서 있었다. SNS 등지에서 이른바 ‘맛집’이라고 입소문을 탄 음식점들이다. 이렇게 소문이 자자한 음식점엔 먼 타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온 서보화(24·여)씨는 “망리단길에 있는 각종 음식들과 가게들을 눈으로 직접 보러오고 싶었는데 주말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부러 평일 망원동을 찾았다. 그런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있어 놀랍다”고 밝혔다.

강원도 강릉에서 온 윤성아(25·여)씨는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가게들이 모두 작고 골목 구석에 숨어있어서 쉽게 찾기는 어려웠지만 실제로 와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 망원동에 위치한 가게들 ⓒ투데이신문

그러나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망원동을 찾는 사람들과는 달리 망원동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외지인이 몰려옴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들이 내몰리고 있는 현상,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

모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최모(51)씨는 “최근 ‘망리단길’이라 불리는 망원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오는 매물이 없어 권리금과 월세가 급격히 오르고 있는 추세다. 1년 사이 20% 정도는 상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6년 넘게 망원동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해 온 김모(50)씨도 “홍대에서 시작한 젠트리피케이션은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을 넘어 이제 망원동까지 도달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덩달아 지역 원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 망원동 가게들을 표시한 약도 ⓒ투데이신문

임대료 상승을 버티지 못하거나 혹은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로 망원동을 떠난 상점들도 많다. 그 자리엔 원주민보다는 외지인의 입맛에 더욱 맞는 상점들이 등장했다. 망원동에서 줄곧 영업해온 상인들은 언제 내쫓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망원동 50년 토박이이자 20년째 망원동에서 옷가게를 해온 김모(54·여)씨는 “망원동은 지반이 낮은 탓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침수가 잦았다. 가게가 잠길 때마다 주변 가게 주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와서 물 퍼주고, 또 나도 다른 가게 가서 물 퍼주기도 했다. 그런데 같이 물 퍼주던 세탁소나 철물점 주인들은 최근 2년 사이에 다 나가버렸고 이젠 두 명밖에 안 남았다”고 밝혔다.

6년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모(37)씨는 “개업할 때까지만 해도 망원동 주민들과 단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게였는데 이젠 외지인들이 더 많이 보인다. 매상 입장에서는 좋을 때도 있지만 이전의 망원동 분위기가 그리울 때도 있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가게들을 보며 이 가게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설칠 때도 있다”며 토로했다.

2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박남(55)씨는 “처음 들어올 땐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시작했다. 거주지와 상점이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도 망원동을 찾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외지인들이 늘면서 거주민들이 오히려 쫓겨나고 있다”며 “어쩌면 급격히 변해버려 아이덴티티를 잃은 이 사회의 축소판을 망원동이 겪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안타까움을 비쳤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상권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싼 곳을 찾아 망원동에 작업실을 차린 예술가 서모(36‧여)씨는 임대료가 상승한 탓에 4월 작업실을 철거할 예정이다. 그는 “7년 전 월세와 보증금 상승에 쫓겨나듯 홍대를 빠져나와 망원동에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골목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빌라와 다세대주택들이 즐비하다. ⓒ투데이신문

이러한 망원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망원동주민회 조영권(42) 대표는 ‘망리단길 싫어요’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 대표는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망원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해, 더 이상 이 용어를 쓰지 말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번달 초부터 진행해온 이 서명운동에는 벌써 400여명의 망원동 주민이 참여해 뜻을 모으고 있다.

그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실력 있는 젊은 분들이 망원동에 창업하는 건 좋은 현상이고 상권 형성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외지인을 상대로 돈을 챙기기 위한 부동산 투기가 심해진 탓에 망원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더구나 ‘망리단길’은 망원동이 내부에서 만든 이름이 아닌 외부 언론이나 SNS가 만든 이름이기에 이 길이 정확히 망원동의 어느 길을 지칭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 사례만 봐도 망원동의 상권이 주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OO길’이라는 단어는 이미 오염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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