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요즈음 필자가 강의하는 교양 과목명은 각각 ‘다문화와 역사발전’, ‘세계문명사’다. 두 과목 모두 제목과 소재 자체의 범위가 너무나 넓어서 처음 강의를 배정 받고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교양과목’인만큼 대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갖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필자는 개념에 대한 내용을 꼭 강의하는 편이다. 두 과목 모두 역사, 혹은 사(史)라는 단어가 들어있어서, 역사라는 것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각 과목에서 ‘문화’라는 단어와 ‘문명’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문화와 문명에 대한 개괄적인 개념도 설명하고 있다.

필자가 강의안을 작성하던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타이핑했다.

‘역사의 가치는 인간이 무엇을 해왔는가,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데에 있다.

문화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것과 같다.

문명이란 사람이 무지몽매한 야만과 자연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다스리는 지혜를 터득하고 인간답게 사는 이치를 깨우쳐 밝은 빛 속에 살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학생들 스스로가 ‘존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간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삶의 과정을 알고,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토대를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 과정과 결과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동기를 부여받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힘으로 찾아가는 계기만 주고자 했다. 『탈무드』에 나오는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을 최대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역사, 문명, 문화의 개념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다가 두 가지 소식을 들었다. 한 가지는 친한 형님의 죽음이었다. 향년 쉰 둘. 갑작스럽게 걸린 암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세월호의 인양이었다. 2014년 바다로 가라앉은 이후 3년 만에 다시 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슬픔으로 사무치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강의를 준비하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역사는 계속 진보하고, 문명은 계속 발전하는 것일까? 문명이 계속 발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는 아직 예순도 되지 않은 형님이 암을 치료하지 못하고 형수와 이제 사회에 나온 딸, 군대를 다녀온 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예전보다 의학이 발달했다고 말하지만 암은커녕 감기바이러스조차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대 문명은 과연 과거에 비하여 얼마나 진보한 것일까?

세월호 인양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각종 이유로 인해서 실종자 아홉을 찾지도 못했고, 세월호도 3년 동안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아 있었다. 세월호가 잠수함도 아닌데······. 그 세월호가 반나절 만에 물 밖에로 나올 때 필자는 기쁨과 동시에 허무함과 분노, 그리고 ‘문명이 발전하긴 했나?’, ‘역사가 진보한다는데, 조선시대에도 사고로 인해 다치고 죽은 사람들을 구하고 위로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조선시대만도 못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필자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역사를 배우고 문명을 누리고, 문화를 향유하는 ‘나’라는 존재, ‘우리’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욕망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를 진보시킬 수도 퇴보시킬 수도 있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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