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몇 년 전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 부부와 만난 자리였다. 선배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한 해가 끝나가고 있던 겨울이라 딸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이 마무리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레 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선배 부부로부터 이런저런 경험담을 듣다 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과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 반에 아이들이 25명 정도라는 말에 집 근처 초등학교의 운동장 풍경이 절로 떠올랐다.

집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대로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모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인도는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높은 곳에 있고, 담벼락은 허리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지나가다 보면 운동장 모습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때마다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축구를 하고 있는 사내아이들의 숫자였다. 언제나 열 명 남짓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한 반의 남학생들로는 두 팀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시절에는 한 반에 60명 이상씩 꽉꽉 채워도 교실이 모자랐다. 그래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내 자리를 쓰는 다른 반 녀석이 책상 서랍을 비워놓지 않고 집에 가버리면, 어쩔 수 없이 책상 옆에 걸어놓은 책가방에서 책과 공책을 하나씩 꺼내 써야 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부터 일이었다. 두 줄로 이뤄진 분단과 분단 사이의 좁은 통로는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따위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 장애물들을 하나씩 넘어 화장실까지 가기란,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에는 피난통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그땐 그랬지 식의 이야기와 요즘 아이들은 너무 나약하게 키워지고 있지 않느냐는 꼰대 섞인 소리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았다. 남자 선배가 이렇게 끊고 들어왔다. “야. 우리 국민학교 시절이면 벌써 30년 전이야. 엄청나게 옛날이라고.”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말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뭔가 확 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였던 그때는, 우리가 어렸을 때로 치면 어른들의 6.25나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학생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격차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특히 경제구조와 사회문화가 급속도로 바뀌어 왔던 한국 사회에서는 그 변화의 폭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선배들마저도 초등학생 학부모의 삶에는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이니 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2,30년이 넘어버린 일반인은 과연 어떠할까.

얼마 전 고등학교 교사인 또 다른 선배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학부모들을 만날 때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는 전 국민이 전문가를 자처하는 분야가 몇 개 있다. 군대, 정치 그리고 교육과 같은 영역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12년의 보통교육을 받았고, 경쟁과 폭력이 지배하던 교실에서의 기억을 강렬하게 갖고 있다 보니 다들 교육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당사자의 입장에 따른 자신만의 시각 역시 확고하다.

그렇지만 교육 현장도 흐르는 세월을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해 왔다. 학생들이 다르고, 교실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입시 제도가 다르고 또한 가르치는 교사들마저도 다르다. 이러한 변화에 둔감하면서도 여전히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확신하는 이는 학부모들만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학교 밖에서 바라보는 학교의 모습 또한 80년대의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난 겨울, 우연찮게 탄핵반대 집회를 두 번 정도 참관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참가자들의 주장이 아니었다. 촛불집회와는 완전히 단절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독자적인 순환을 이루고 있던 또 하나의 세계였다. 그것은 옳고 그름과는 다른 것이었다. 현대사 책으로나 접할 수 있었던 과거의 시대가 광장에 완벽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언어와 문화와 매너와 질서와 세계관 등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나의 현실은 얼마나 현재성을 획득하고 있는가. 상당 부분 허상에 가깝지만 운이 좋게도(혹은 운이 나쁘게도) 이곳이 아닌 저곳에 가까스로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과 몇 개월의 시간 동안 나라가 그야말로 뒤집어져 버렸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물론이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정의의 기준선도 상당 부분 그 좌표가 수정되었다. 어르신들의 집회를 보면서 나의 30년 뒤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나는 어떤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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