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파면된 대통령이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날, 바다 속 깊숙이 가둬졌던 시대의 민낯은 뭍으로 올라왔다.

선과 악은 각각 창궐할 시기에 맞춰 자리를 맞바꾼다. 서로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 속에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한 시대를 뒤덮는 특정한 현상은 당대의 각자가 수 많은 관계 속에 그때마다 내리는 판단들이 직조된 결과다. 어느 한 시대가 악행으로 점철돼 있다면, 그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을 점진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일 모두를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나눌 수는 없다. 인간은 다양한 표정을 짓고 살아가고, 옳고 그름은 저마다의 입장에 맞춰 가늠되곤 한다.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절대적으로 옳은 이도 절대적으로 그른 이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 낸 어떤 결과가 모두에게 악행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능하다. 각자는 서로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고 행동을 바꾸게 하며, 그 결과 무리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저마다 욕망에 충실하고 이의 추구를 옳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잘못을 넘어가고, 순간의 모면을 감추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궁리한다. 그런 그들에게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이를 본 사람은 혼자만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잘못이 더 이상 잘못이 아닌 세상에서 욕망의 한계선은 저 멀리 물러나고, 그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낸 사람들은 뒤쳐진다. 한정된 재화를 나눠야 하는 사회에서 뒤쳐짐은 절멸의 신호가 된다. 위기의 사이렌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제재를 두려워 않고 욕망의 한계선을 다시금 더욱 뒤로 물린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 넓어진 공간만큼 한 사회 혹은 한 시대는 잘못된 세상 안에서 자유롭다. 타인의 욕망을 침해하는 기준을 공유하지 않는 사회에선 잘잘못의 기준도 없어진다.

세월호가 무리해서 짐을 과적하고 작지만 반드시 해야 할 여러 의무를 소홀히 했던 것, 승무원으로서의 직업의식을 저버린 선장의 태도, 해경이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훈련 없이 구조에 나서려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그 세계에서 용인되는 잘못의 경계가 저 멀리에 있어 왔다는 뜻이다.

최순실이 사익을 위해 정부정책에 손을 대고 대통령의 입을 가로챈 것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무행위에 게으르고 외모에 신경 쓰면서 정작 국가 중대사를 자격 없는 이에게 책임감 없이 맡긴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민주질서를 지배 하는 공의 대신 권력 위계를 이용한 다스림과 복종을 정치의 근본으로 보는 태도를 유지했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범위를 보여준다. 사회적 상규로부터 벗어나는 그들의 공간감은, 그동안 그들이 만나고 겪어 온 사람들의 세계에선 별로 특이한 것이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이는 어떤 소수의 집단 안에서만 팽배한 문화라고 할 순 없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고 정리하는 과정 동안 정부는 유가족을 핍박했고 최종책임을 민간인에게 물었으며, 이에 저항하면 반국가적 인물이나 집단으로 매도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나, 우리 전통문화의 관점에서나 뿌리가 없는 악행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런 정부의 자세가 사람들로부터 더러 지지도 받고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속해 있는 세계는 그만큼 악의의 놀이터가 돼 있었다.

파면되고 구속 수감 된 대통령 박근혜에게 죄를 묻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모든 악행을 그 한 사람에게만 묻는다 한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떨쳐 나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바다에선 큰 해류가 흘러 다니고 파도가 거칠게 인다. 그 위에 배 하나 띄워 이리저리 움직여도, 결국 거대한 대양의 움직임에 종속 된 행위다. 중요한 건 바다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이 구속됐다. 건져 올려져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는 지난 몇 년의 울음에 뒤덮여 바래고 앙상하다. 단지 미수습자를 찾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세월호를 샅샅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우리의 민낯을 뭍으로 올려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악행으로 점철 된 지난 시기를 역사의 장에서 파면시킬 수 있다. 박근혜의 구속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토록 비정하고 무감한 혼돈의 세계를 이끌어 온 모든 악행의 지점들을 하나씩 바꿔 나가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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