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울, 서울, 서울
[칼럼] 서울, 서울, 서울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0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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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여기 있으면 그냥 촌놈 되는거잖아요!

오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던 말이다. 그 학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가고 싶었던 학교는 수도권에 있는 모 대학교인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치면서 우리 학교에 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의 아버지께서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고, 지금 토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가고 싶은 학교에 편입학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2병(중2병과 비슷하게 대학교 2학년생이 겪는 병. 자신감이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에 대한 토론을 주고받다가 일어난 상황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암기와 줄세우기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 그에 따라 학생들이 자신의 창의성과 꿈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토론의 주된 내용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 학생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이다.

필자는 일순간 당황했고, 학생들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의 발언이 학생 스스로를 비하하고 다른 학생까지 비하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중재를 하고 겨우 위기 상황을 벗어난 후, 필자는 미안함에 빠졌다. 이 상황은 학생들이 선택한 상황으로 몰아붙이기에는 학생들이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도 좁았고, 대학과 전공에 대한 탐구의 시간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으며, 지역 대학교에 대한 차별은 학생들이 만든 것이 아닌 기성세대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학생들이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만든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었다.

우리나라의 소위 ‘서울 타령’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됐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지역의 사람을 가려서 뽑아야 된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시대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역시 지역과 신분의 차별에 저항하면서 일어난 민란이었다. 요즈음 많은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인 ‘조선왕조실톡’의 최근의 소재도 지역 차별과 정조의 화성(華城) 건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곳곳에 지역 사람들이 한양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입김으로 인해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급제를 하더라도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 승진을 하지 못하며, 그 결과 지역의 사람들은 지역의 향리(鄕吏, 지역에서 세습으로 내려오는 아전)로 남거나, 재산을 모두 팔고 서울로 올라와서 살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지역에서 살면 평생을 차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 내내 존재하는, 그리고 반드시 뿌리 뽑아야 되는 폐단일지도 모른다.

JTBC의 인기 프로그램인 ‘썰전’에 따르면 다른 도시에 비해 서울에는 단위면적당 매우 많은 대학교들이 몰려 있다고 한다. 지역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은 해방 이후 대학이 생길 때 서울에 집중되게 만들었고, 이러한 인습이 없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이 서열화됐으며, 수험생들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하니 지역의 대학들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히 대학과 청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과 우리나라 전체에도 문제가 될 것이다. 교육 문제와 부동산 가격이 직접 관련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지역 대학 차별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계속 높게 만들고, 인구의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역사 속에서 지속됐고,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지역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지역에 몇 가지 혜택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쉽지 않은 문제다. 대학 서열화가 없어져야 된다는 주장은 늘 나왔던 얘기, 즉 말만 많고 해결되지 않은 사안이다. 물질적 부와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는 것과도 직접 관련이 있는, 우리나라의 대 개혁이 필요한 사항이다. 거기에 당장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해야 된다.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대의를 위해 포기하게 만들고 우리의 인식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죄인이 되기 싫다면······. 말을 제주도에 보내지 않아도 말이 행복하고, 사람을 서울에 보낼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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