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대(事大)에도 원칙이 있다
[칼럼] 사대(事大)에도 원칙이 있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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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사대(事大)라는 말을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큰 것을 섬긴다.’는 뜻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고 나온다. 국학자료원의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사대는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하(下)」에서 제(齊) 선왕(宣王)이 맹자(孟子)에게 “웃 나라와 교린을 맺는 데에도 도(道)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해 이르기를 “(도가) 있습니다…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 임금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齊宣王 問曰交隣國 有道乎. 孟子 對曰有. … 惟智者 爲能以小事大.)”라고 한 대화와, 손초(孫楚)가 “작고 약하나 크고 강한 자를 섬기지 아니함을 귀히 여긴다.(貴小不事大)”고 한 것에 근거한다.

흔히 사대에 입각한 외교 정책은 조선의 대표적인 외교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 개국 당시 중국은 원(元)에서 명(明)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조선의 전 왕조인 고려 때 몽골의 침략에 맞서서 항쟁한 후 몽골에 굴욕적 화친을 맺으면서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는 나라가 됐다. 그리고 몽골의 왕인 쿠빌라이가 몽골을 유목 기반의 국가에서 농경 기반의 국가로 바꾸고자 중국에 원나라를 세우면서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는 나라가 됐다.

고려 말 중국 왕조가 원에서 명으로 교체될 때 고려의 입장에서는 샌드위치와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고려를 속국으로 간주하고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과 말, 심지어는 고려의 처녀까지 착취했던 원과 새로운 중원의 맹주인 명이 공존하는 원명교체기에 고려의 입장에서는 원의 말을 들으면 명의 압력을 받고, 명의 말을 들으면 원의 압력을 받는 상황이었다.

고려의 선택은 명이었다. 고려에 공민왕이 등극하면서 쌍성총관부, 동녕부 등 몽골과의 전쟁 과정에서 몽골에게 빼앗겼던 땅을 돌려받는 등 원에게 대립각을 세우면서 명과는 유대관계를 강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명이 중원의 지배자가 되면서 성공하는 듯 했다.

명이 중원의 지배자가 된 시기를 전후해 고려 왕조도 이성계의 쿠데타에 의해 패망하고, 조선이 수립됐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외교의 원칙을 사대로 삼았다. 새 왕조의 나라 이름을 정할 때도 명에게 먼저 물어봤고, 스스로 조공을 명에 줬다.

겉으로 보기에 굴욕적이었던 이러한 사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조선 초 쿠데타로 인해 정권 교체의 정당성과 백성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나라와 대척점을 지을 수 없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사대에 따라 조공을 명에게 바치면 명 역시 대국의 입장에서 조공을 받고 소국인 조선이 바친 조공보다 더 큰 답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조선과 명 사이의 무역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 경제사학계에서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이전 왕조인 고려가 불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것에 차별점을 두고, 과거의 불교가 쌓은 적폐를 개선하고자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으며, 성리학의 사상적 특징 중 하나인 “화이(華夷 :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것)”를 적극 수용하는 입장에서 사대를 외교의 원칙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철저하게 계산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대를 기반으로 했지만, 조선은 명에 무조건 복종하진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표전문제(表箋問題)였다. 표전은 표문과 전문을 약칭한 말로,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 황태후·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명 태조가 이 글의 글귀 일부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서 표전문을 가져온 사신을 억류하고 글을 지은 당사자를 압송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표전문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사람이 정도전이었다.

이후 정도전은 공공연히 요동을 정벌할 것을 주장했다. 심지어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외이(外夷) 즉 한족 이외의 민족이 중원에 들어가서 중원의 지배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에 태조도 호응해서 정도전은 구체적으로 요동 정벌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 요동 정벌은 명 태조가 사망하고, 정도전 역시 왕자의 난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태조가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선 초기 외교에서 사대를 표방하면서도 불합리한 요구에는 저항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 역시 북핵을 둘러싸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2017년 4월 19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의 한반도 관련 대화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발언의 진위여부는 더 확인해야 알겠지만, 원칙에 입각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며, 중국과 미국의 잘못된 우리나라에 대한 시각의 교정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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