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돼지 발정제. 이 걸 사람에게 쓴다는 건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말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가 과거 펴낸 자서전에 약물에 의한 강간 모의에 가담 내지 방조한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다. 이 문제와 관련 해 홍 후보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홍 후보는 누군가에게 위해가 가해질 상황을 내버려 두었다. 45년 전에도 약물을 사용한 데이트 강간은 범법 행위였다. 사회적으로 그런 일이 당연시 되지 않았기에 모의 또한 암암리에 이뤄진 것인데 이를 묵인했다.

둘째, 자서전을 펴내면서도 깊이 있는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2005년이면 과거에 비해 사회적으로 인권의식이 성숙해진 때다. 성폭력은 더더욱 지탄의 대상이었다. 홍 후보는 반성의 의미로 자서전을 썼다지만, 정작 내용의 대부분은 말초적인 강간 모의 과정과 결과일 뿐이다. 반성의 문장은 단 두줄이다. 성폭력에 대한 가벼운 인식이 엿보인다.

셋째, 논란이 불거진 2017년 현재, 홍 후보는 이를 과거지사로 치부하고 있다. 반성했으니 그만 비난하라고 요구한다. 후안무치한 그의 태도를 보면 우리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논해야 할 정치인, 나아가 대선 후보로서 실격이다.

논란이 점화되고 나서 홍준표 후보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성폭력 실태와 의미에 대해 상당히 무지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성폭력(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기타 등) 피해자 여성은 약 2만명이다. 하루 55명 꼴이다. 집중 발생시간은 심야이지만, 평균 잡아 시간당 2명이 성폭력을 당한다.

이 중 강간 피해자는 연간 5117명이다. 하루 14명, 두 시간에 1명 꼴로 강간을 당한다. 당연히 이 통계는 신고 접수된 건 만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면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다행히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네 정당이 모두 강력한 비판과 함께 나아가 홍 후보의 사퇴촉구까지 입장을 밝혔다. 전날 TV대선 토론에서 후보자들은 유권들이 보는 가운데 홍준표 후보를 강력 비판하고 사퇴를 주문했다. 이런 압력은 매 토론 때 마다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언론들과 시민 사회도 홍 후보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 홍 후보가 보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안전을 추구하는 보수의 기조로 볼 때 그를 지지하는 것은 보수의 행동일 수 없다. 여기엔 진영이나 정치이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가령 특정 후보와 캠프는 홍 후보가 후보직을 계속 유지하면 대선 구도에서 전략적 이점이 생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사퇴선언 하지 않길 바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런 저런 말들로 - 세상이 그렇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견뎌라 - 또 다른 피해를 입는다. 마찬가지로 정치현실을 이유 삼아 홍 후보에 대해 충분한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버티고 감내하는 피해자들에게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의 시간까지 떠넘기는 행위가 된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건전하고 상식적인 바탕 위에서 미래를 이야기 할 준비가 돼 있음을 스스로 확인 하는 것이다. 23일 TV대선 토론에서 홍 후보는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사과 해야 할 사람은 당시 피해자가 될 뻔했던 어떤 여성이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모르고 있는 홍 후보 자신과 그러한 그를 지지하는 세력 모두,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장에서 퇴출돼야 마땅하다. 그 신호를 시민사회와 유권자가 내보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성평등과 인권을 위한 모든 정치적 노력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대선은 5월 9일이다. 앞으로 남은 날은 15일. 통계대로라면 그 사이 825명의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 210명의 여성이 강간 당한다.

TV 대선 토론은 보통 두시간 동안 벌어진다. 그 두 시간 동안, 여성 4명이 성폭력을 경험한다. 그리고 후보들이 TV에 나와 토론을 벌이는 그 두시간 동안, 대한민국 어디선가 여성 한 명이 강간 당하고 있다.

TV에서 홍준표 후보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등장하는 그 두 시간 동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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