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선 칼럼니스트
-스토글 대표이사
-경찰교육원 외래교수
-교보문고 독서코칭 전문강사
-아동문학가

<이야기 하나 >

사십대 중반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포장마차에 들어오셨다. 포장마차 옆에 세운 수레에는 폐지가 가득 실어져 있었다. 마치 할머니의 고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주인 양반 따뜻한 국물 좀 주시오.”

주인아저씨는 할머니가 부탁한 따뜻한 어묵 국물뿐만 아니라 떡볶이 약간에 순대를 얹은 접시 하나를 내놓았다. 할머니는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식사를 아직 못하셨는지 금세 한 접시를 다 비우셨다.

할머니가 돈을 치르려고 하자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할머니, 돈 아까 주셨어요.”

“그런가? 아닌 거 같은데…….”

옆에서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도 눈치를 채고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할머니가 아까 돈 내시는 것 저도 봤어요.”

할머니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잘 먹었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수레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따뜻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야기 둘>

노처녀 마샤는 빵집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일주일에 두어 번씩 그녀의 빵집을 찾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그의 옷은 낡았고 군데군데 기운 데가 있었지만 차림새는 깨끗했고 무척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굳은 빵 두 개를 사갔다. 마샤는 어느새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녀는 가끔 남자의 손에 붉은 얼룩이 묻은 것을 보고 그가 가난한 화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좁은 다락방에서 굳은 빵을 먹으며 그림을 그리는 있는 가난한 화가를 떠올리며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하고 고민했다. 굳은 빵만 사가는 그에게 크림이 듬뿍 들어있는 맛있는 빵을 주고 싶었지만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선뜻 크림빵을 줄 수도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그가 다른 데 정신을 쏟고 있을 때 굳은 빵 가운데에 치즈크림을 듬뿍 바르고 감쪽같이 붙여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는 빵을 사가지고 갔다. 그녀는 그가 빵을 한 잎 베는 순간 달콤한 치즈크림이 입 안 가득히 퍼질 때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다음날 가게를 찾아온 그는 매우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당신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어! 당신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나는 이제 끝장이 났어. 이 멍청한 여자야!”

그녀는 너무 당황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그와 함께 온 사람이 설명을 했다.

그는 건축 설계제도사인데 석 달 동안 시청 설계도 현상 응모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심혈을 다해 어제 드디어 작품을 완성했다. 제도를 할 때는 먼저 연필로 그리고 그 위에 펜으로 그린 다음 연필 선을 지워야 한다. 이 때 굳은 식빵을 사용하면 깨끗이 지워진다. 그는 마지막으로 연필 선을 지우기 위해 굳은 빵을 사갔는데 그만 빵 속에 크림치즈가 들어 있어 그동안 그렸던 설계도를 망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위의 두 이야기는 상대방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전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포장마차 주인아저씨와 마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내 위주의 생각으로 상대방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과 상대방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마샤는 자기 위주의 생각으로 남자의 상황을 규정하고 자신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다보니 그 남자가 굳은 빵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남자의 처지를 생각했더라면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했다. 대화를 통해 주기적으로 사가는 굳은 빵의 출처를 알았더라면 남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포장마차 아저씨는 할머니가 불쌍하다는 동정에 앞서 할머니의 고단함을 공감하고 이해를 한 것이다. 순대와 떡볶이는 할머니의 상황을 알아주는 아저씨의 마음이었다.

즉 ‘무엇을’ 배려할지보다 ‘어떻게’ 배려할지를 포장마차 아저씨는 안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각종 강렬한 감정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정서는 언제나 역지사지를 통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감정이 그러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감정과 일치한다. 그래서 자칫 자기위주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마샤의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미리 앞서서 남자는 이런 사람일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상대방을 위해 준다는 기준도 스스로가 결정을 한 것이다.

‘설레발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은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게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는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폐지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허기진 배를 따뜻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한 포장마차의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미소는 우리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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