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침을 뱉는다. 크르럭 콧물 들이키는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퉤엣하고 뱉은 한 덩이 침이 바닥에 탁!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침을 비켜 간다. 침을 뱉은 남자도 휘적휘적 제 갈 길을 간다.

내가 사는 서울의 공기가 지난 수십 년간 제대로 맑아 본 적이 없으니 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이 낯익다. 봄 철 황사나 요즘 한창 말 많은 미세먼지 탓도 있겠다. 원인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이 질 나쁜 공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잘 살고 있다. 누군가 침을 뱉는다면 그저 피해서 돌아가면 되는 삶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람은 하루에 대략 500ml의 콧물을 마신다. 코털이 먼저 이물질들을 대략 걸러내면, 나머지는 코 안의 점막에 있는 섬모와 끈끈한 액체에 붙어 다시 한 번 걸러진다. 점액에 둘러싸인 미생물이나 세균들은 대부분 죽게 되고 조금씩 식도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고 나면 위의 강한 멸균 작용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변이 돼서 몸 밖으로 나온다. 우리는 대부분 콧물을 마시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코 주변에 염증이 있으면 후비루라고 해서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확실히 알게 된다. 심하면 불어난 콧물만으로도 배가 부르게 된다. 아마 내 앞에서 걸어오던 사람은 그 걸 뱉은 모양이다.

목에서 올라오는 가래는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한 점액들이 몸에 안 좋은 물질들과 엉긴 것이다. 기침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면 기관지의 섬모가 심하게 손상되고, 몸에 나쁜 물질을 뱉어내는 기능이 약해진다. 금연 후에 가래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기관지가 정상이 되면서 누적된 가래가 배출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들이마신 공기가 안 좋으면 침을 많이 뱉게 된다.

사람이 침을 뱉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문명에선 침을 아무 데서나 함부로 뱉지 않는 게 예절이다. 19세기 서구에선 길에서 침을 뱉고 싶으면 정해진 타구통에 뱉도록 했다. 미국에선 길거리에서 침을 뱉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공공보건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기가 혼탁해지면서 사람들이 침 뱉는 게 부쩍 늘었던 것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길거리에 침 뱉는 걸 막으려면 공기의 질이 중요할 수 있겠다.

사람에겐 마시는 공기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사회의 공기도 중요하다. 사회가 분노와 혐오의 공기로 오염 되면 그것 만으로도 사람은 질식 할 수 있다. 가령 동성애혐오가 그렇다. 얼마 전 TV 대선 토론에서 동성애 질의응답이 논란이 됐다. 동성애를 찬성이냐 반대냐로 묻는 것부터 문제지만,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고유의 권리를 타인이 인정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갑론을박 하는 것도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에 맞지 않다. 그런 이야기들의 언저리에는 혐오의 공기가 매캐하게 가득 차 있다.

동성애 혐오론자들은 동성애를 불결하다거나 역겹다고 표현한다. 그들의 시각에선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바닥에 뱉어내야 할 가래침이다. 안 보이는 곳에서 뱉고 씻어내야 할 대상이다. 정치인이 엄벌 운운하고 종교인이 죄인이라 칭하는 것 모두, 혐오로써 세상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들에겐 동성애 논란이 곧 더러운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역사의 작동 원리는 정반대다. 어느 문명에서든 인정투쟁은 늘 대립과 갈등을 낳아왔으며, 이를 혐오와 폭력으로 다스리곤 했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로 좁혀질수록 그 결과는 인류전체를 향한 거대한 자학적 폭력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수많은 참혹함을 낳았고 이성의 빙하기를 초래했다. 지금 세계는 그런 터널을 지나 공존의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야만 모두의 권리가 지켜지고 모두의 자유도 근거를 갖기 때문이다. 느리긴 해도 인류는 늘 그렇게 발전해 왔다. 거꾸로 행진하는 사회엔 길이 없다. 담배를 끊으면 가래가 나온다며 계속 피우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고민하는 것은 반인권적 혐오가 섞인 우리 사회의 나쁜 공기를 호흡기로 걸러내는 활동이다. 성정체성에 관한 논의라는 사회적 섬모와 점막이 사회의 해로운 성분을 솎아낸다. 가래에 섞여 배출 되는 것은 자기확신이 타인에 대한 부정으로 기능해도 된다는 반인권의식이다. 진짜로 더러운 가래침은 타인에 대한 혐오다.

우리사회는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공기가 한결 맑아지기 때문이다. 남이 마실 공기를 깨끗하게 정화하면 내가 마실 공기도 깨끗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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