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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남편~ 여보~나와서 밥 먹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요한 토요일 아침, 남편 종국(35)씨를 부르는 아내 신화(40)씨의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종국씨는 아내의 부름에 물기가 촉촉한 머리칼을 미처 다 말리지 못하고 거실로 나와 앉았다. 종국씨가 반려견 뽀삐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신화씨는 평소보다 늦은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의 메뉴는 딸기잼을 입는 노릇노릇 한 식빵과 영양만점 우유. 아침식사는 빵이나 전날 미리 만들어 놓은 볶음밥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편이다. 서로 마주 앉은 부부는 둘만의 소박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신화씨는 수시로 남편의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와 우유를 물티슈로 닦아줬다. 종국씨도 그런 아내의 손길이 좋은 듯 함박웃음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평소 주말 같았으면 늘어지게 늦잠을 잤을 테지만 부부는 지인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비교적 이른 시간에 외출 준비에 나섰다. 부랴부랴 화장을 마친 신화씨는 남편의 겉옷부터 챙겼다. 단추를 잠가주는 것부터 마지막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것까지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도 옷을 챙겨 입었다. 신발을 신으려는 남편 옆에 긴 다리를 굽히고 앉아 바지 밑단을 정리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현모양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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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병변 1급 장애인 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이렇게까지 남편을 극진하게 보필해야 할까 싶지마는 이들 부부에게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남편 종국씨는 뇌병변 1급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태어난 종국씨는 출산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뇌병변 장애가 생겼다.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매일 먼 거리를 오가며 재활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그 덕분에 종국씨는 초등학교 입학 전 걸음을 떼고 한글을 익혔고,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의 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종국씨는 시설로 보내져야 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시설도 많았지만 모두 시설 내 특수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랐다. 하지만 결단코 특수학교는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종국씨는 포천의 비인가 복지시설 ‘남사랑의 집’에 보내졌다. 비록 제대로 된 방 한 칸이 없어 컨테이너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일반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곳이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일반학교를 다니고 4년 장학생으로 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이런 종국씨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

아내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은 종국씨는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착석했다. 수능을 보자마자 면허를 취득해 어느덧 경력이 15년에 달하는 자타공인 베스트 드라이버. 혹여 남편이 심심하진 않을까 조수석에 앉아 쉼 없이 얘기를 이어가는 신화씨의 말투에는 애교가 넘쳐 흘렀다. 5살 연상 연하 커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동하는 내내 부부의 깨 볶는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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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씨 우리 한 번 만나볼까요”

신화씨와 종국씨가 처음 만난 건 2009년 6월.  당시 신화씨가 희망근로 보조원으로 일을 돕던 포천시의 한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 종국씨가 함께 하게 됐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아는 누나, 아는 동생 정도에 불과했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종국씨는 다정하고 착한 아내의 모습에, 신화씨는 장애가 있지만 누구보다 배울 점이 많은 남편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됐다. 신화씨에게 마음을 홀딱 뺏겨버린 종국씨는 용기를 내 고백을 전했고 신화씨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두 사람은 사랑을 싹 틔웠다.

함께 영화를 보고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데이트를 즐겼다. 종국씨는 늦은 데이트를 마치고 나면 4륜 바이크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둘도 없는 사랑꾼이었다. 신화씨는 항상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종국씨의 존재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날 부부와 만난 사람은 종국씨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 김혜자(30·여·가명)씨다. 혜자씨도 종국씨와 마찬가지로 남사랑의 집에서 자랐다. 지적장애가 있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치른 혜자씨를 위해 종국씨가 맛있는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

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자리 잡은 세 사람, 메뉴를 고르는 와중에도 신화씨는 남편을 챙기기 바쁘다. 혜자씨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소 전화통화를 할 때도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닭살커플이란다. 부부는 하루빨리 혜자씨가 자신들처럼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 두 사람이다.

결혼 전, 종국씨는 공무원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공시생이었다. 그의 한 달 수입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수급비와 장애인 수당을 합친 80만원이 전부. 집세, 공과금, 생활비 등 숱한 지출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는 장애는 물론 경제적 능력도 부족한 별 볼일 없는 자신을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해주는 신화씨의 마음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화씨에게 그의 부족함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했기 때문. 비로소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을 깨달은 종국씨는 연애 6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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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헤어질 생각이면 시작도 하지 말거라”

종국씨는 평소 신화씨가 꿈꾸던 대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후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는 기분 좋게 고백을 받아들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부모님의 허락이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국씨는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모두 결정하고 나서야 전주에 계신 지금의 장모님을 찾았다. 혹시 장애가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시진 않을까 우려돼 지인까지 동원해 신화씨의 직장 동료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넉살도 떨고 애교도 부려 장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고 그 노력은 빛을 발했다.

포천으로 돌아온 후 신화씨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함께 놀러 갔던 동료 중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상황을 직감한 듯 “장애가 있는 친구냐”고 물었고 신화씨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어머니는 “살다가 헤어질 거라면 시작도 하지 마라”면서 “나이가 어리고 장애가 있더라도 남편은 남편이니 존중하며 살고 만약 이혼하면 내 딸도 아니다”라고 흔쾌히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렇게 종국씨와 신화씨는 2010년 2월, 6개월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경기도 의정부 시내의 가구 단지로 향했다. 이사를 앞두고 침대와 옷장 등 갖가지 가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부부는 오는 8월 신축 중인 새 아파트 입주를 예정하고 있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종국씨 덕분에 결혼 8년 만에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종국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어려서부터 본인이 생활비를 관리해 온 탓에 돈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다. 때문에 십원 한 장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수입은 종국씨가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데 부부싸움이라고는 모르는 두 사람도 신용카드 사용을 두고 이따금씩 마찰을 빚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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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부, 나의 천사

부부는 손을 꼭 맞잡고 한 가구점에 들어섰다. 손꼽아 기다린 이사인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제품을 둘러봤다. 함께 침대에 누워보고 식탁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연출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행복한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쇼핑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 달달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종국씨는 고모리 카페거리로 핸들을 돌렸다. 한참을 달린 끝에 넓게 트인 앞마당이 돋보이는 한 좌식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종종 데이트 겸 기분전환을 위해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곤 한다.

종국씨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이런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아직까지도 꿈만 같다. 그에게 아내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 아마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 같은 행복은 영원히 꿈꾸지 못했을 거라는 게 종국씨의 생각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 종국씨는 장애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지만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해내려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기필코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쉽게 이뤄지진 않았다. 수차례 실패의 쓴맛을 본 그에게 아내는 어둠 속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믿고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아내를 위해서라고 반드시 어엿한 가장이 돼야 했다. 비로소 그는 결혼 3년차가 되던 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며 그 목표를 이뤘다.

이제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부족한 것 없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남편이지만 다른 남편들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벽에 못을 박는 것처럼 일상에서의 소소한 남편의 역할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여전히 크다. 하지만 신화씨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며 오히려 그런 남편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러니 종국씨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종국씨가 왜 아내를 하늘이 내려준 천사라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부부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무슨 관계냐고 물길래 신화씨는 자랑스럽게 "제 남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종국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주인아주머니가 신화씨에게 다가와 의아함과 의심 섞인 눈초리로 "장애인 아니에요? 남편이 돈이 많은가"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도 내고 상황을 설명도 해봤지만 이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일일이 설명하느니 그게 차라리 마음 편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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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사랑의 걸림돌은 아니에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사랑이 넘쳐흐르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 앞에서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상대방 혹은 자신이 가진 장애로 사랑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종국씨는 신체적 장애가 아닌 ‘장애는 사랑의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진짜 사랑의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장애라는 아픔을 서로의 사랑으로 함께 극복하다 보면 그 관계가 더욱 끈끈하고 깊어진다고 자신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도 어디선가 사랑을 망설이는 장애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신화씨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관심에 조금만 무심해질 수 있다면 상대방의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그녀의 생각.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것이 죄거나 감출 일이 아니니까. 

요즘 부부는 인생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오는 10월쯤 두 사람을 꼭 닮은 예쁜 아기를 가지려는 것. 그동안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임신을 미뤄왔지만 더 늦기 전에 시험관아기를 시도해볼 생각이다. 종국씨는 아이 없이도 둘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신화씨는 그가 누구보다 아이를 바라고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단 걸 알기에 포기할 수 없다. 부부는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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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는 종국씨에게 예쁘고 착한 아내에게 장가 잘 갔다고 얘기한다. 기자 역시 두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종국씨는 장애인이고 신화씨는 비장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배웅하는 신화씨에게 기나는 이런 말을 했다. 

“신화씨 시집 잘 가셨네요. 부러워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부족한 사랑을 주는 것도, 장애가 없다고 해서 과분한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니다. 만약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면 신화씨가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종국씨가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무거울 것 같다. 

봄바람처럼 살랑이던 설렘을 지나 이제는 한여름에 내리쬐는 뙤약볕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변한 두 사람의 마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기를 소망한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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