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안녕하십니까,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 김기덕 본부장님. 일면식도 없는 기자의 뜬금없는 서신에 깜짝 놀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본인 역시 끝내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본부장님께서는 울산우체국장을 비롯해 우정본부 우편사업단 국제우편과장, 금융사업단 보험과장, 감사담당관, 우편사업단장, 경영기획실장 등을 거치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경인·서울·부산지방우정청 청장직를 역임하셨더군요. 끝내 제8대 우정사업본부 본부장 자리에까지 오르며 이른바 ‘정통 우본맨’으로 명성이 자자하십니다.

안타깝게도 본부장님의 차고 넘치는 화려한 경력에 비해 경영 능력은 터무니없나 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배원들이 황천길을 걷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만은 없기에 일개 기자인 제가 쓴소리 한번 하려고 합니다. 고까워 마시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쓸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전국이 떠들썩했던 지난 4월 말, 기자는 “선거철에는 공보물 때문에 평소보다 두세 배 바쁘다”며 고개를 내젓던 어느 집배원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더군요.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 걸까요.

지난 4월 25일 아산우체국 소속 21년 차 집배원 곽모(47)씨는 집에서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 사실 아산우체국 집배원 돌연사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2월 6일 곽씨와 같은 우체국(아산영인우체국) 소속 15년 차 집배원 조모(45)씨 역시 자택에서 숨진 채 직장 동료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이하 집배노조)는 두 집배원의 사망 원인을 인력 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인한 ‘과로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곽씨는 ‘대통령선거 우편물 특별소통 기간’으로 인해 비상근무를 하던 중 아내의 여권 갱신을 위해 하루 휴가를 냈던 날 이런 변을 당했습니다. 조씨 역시 사망 전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우편물 때문에 출근해 약 3시간여 동안 우편물 분류작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지요. 아시다시피 집배원들이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전국의 집배원들은 부족한 인력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소중한 동료를 또다시 잃고 말았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본부장님, 이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우정본부의 뻔뻔스러운 태도입니다.

우정본부는 곽씨 사망에 대해 그는 업무량이 많지 않은 도농복합지역을 담당했고 사망원인은 심근경색으로 밝혀졌다며 과로사를 부정했습니다. 지난 조씨의 사망 당시 우정본부 관계자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에게 할당된 우편물 수가 평균 전국 집배원 우편물 할당량보다 적었고, 사망원인은 40·50대에게 많이 나타나는 동맥경화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아산우체국의 관할 구역은 신도시 개발로 우편물 폭증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우정본부는 이에 따른 적정 인력 충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해 집배원 1만 6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 조사 결과 실제 주당 근로시간은 48.7시간으로 집계됐으며, 최근 5년간 우편물량은 약 10억통 감소한데 반해 집배원은 464명 증원됐다”고 인력부족 문제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본부장님, 한강에 소금 몇 스푼 뿌린다고 강이 바다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애당초 턱없이 부족했던 인력에 보여주기식으로 몇 명 더 늘린다고 해서 어디 티나 나겠습니까. 집배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더 이상 우는 아이 달래려 사탕 물리는 식의 수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본부장님, 단 한번이라도 집배원들의 근무현장을 함께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지난 1월 집배원의 하루를 따라다닌 기자는 다음날 몸져 눕고 말았습니다. 20대 청춘을 녹다운 시킨 하루가 집배원들에겐 일상이자 인생입니다.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여유로이 주말을 즐기는 동안 집배원들은 이륜차에 몸을 싣고 택배를 나릅니다. 본부장님이 퇴근 후 지인들과 거나하게 술 한잔 기울일 동안 집배원들은 책상에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기 위해 퇴근을 미루며 또 한명의 친구를 잃습니다. 본부장님이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집배원들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몰라보게 변한 자식의 잠든 모습만 바라봅니다.

본부장님께서 취임식에서 “우편사업 혁신에 매진해 130년 한국우정의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말입니다 본부장님, 내 병사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군주에게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집배원 근무환경 개선 없이는 우정본부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부디 이 편지가 본부장님에게까지 닿길 바라며...

P.S ‘2017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특별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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