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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기차를 타고 달려 오전 10시가 넘은 무렵에야 도착한 전남 전주시 덕진구 선전동의 어느 빌라. 사슴처럼 큰 눈망울이 예쁜 아내 윤주(35)씨와 하회탈 같은 눈웃음이 인상적인 남편 규정(39)씨는 멀리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윤주씨가 안내해준 방안으로 들어서자 찹쌀떡처럼 뽀얀 볼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세 살배기 하늘이가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 하람이를 등교시키고 잠든 하늘이 곁에서 한숨 돌리던 윤주씨는 늦은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윤주씨는 가사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잘 익은 배추김치와 계란말이, 소시지 부침, 나물 무침, 구수한 시래깃국 등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상 가득 차려냈다. 규정씨도 맛있는 음식 냄새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밥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원봉사자는 규정씨를 위해 밥 한술 가득 퍼 반찬을 고루 집어 야무지게 떠먹여줬다. 윤주씨도 남편이 먹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서툰 젓가락질로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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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뇌병변, 아내는 지체장애

규정씨는 선천성 뇌병변 1급, 윤주씨는 지체장애 2급의 중증장애인이다. 윤주씨는 태어날 때만 하더라도 아픈데 하나 없이 누구보다 건강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일찍이 고아원에 보내진 그녀는 3살 무렵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후유증으로 장애가 생겼고 5살이 되던 해 장애인 시설에 맡겨졌다.

결혼 전 장애 때문에 이렇다 할 직장을 갖지 못한 윤주씨는 손재주가 좋아 십자수가 들어간 쿠션, 핸드폰 고리 등을 만들어 팔곤 했다고 한다.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여유도 없을뿐더러 허리 상태가 더욱 나빠져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십자수는 취미로 종종 하는 정도란다.

규정씨는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가 있었다. 규정씨가 10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그를 어느 버스 정류장에 버려둔 채 떠났다. 그는 독립하기 전까지 전국에 있는 시설 여기저기를 떠돌며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배움에 욕심이 많았던 규정씨는 비록 장애가 있어도 비장애인들처럼 학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주는 시설로 거처를 자주 옮기기도 했다. 특히나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했던 규정씨는 경기도 광주의 모 직업전문 학교에 재학해 컴퓨터 기술을 익혔고, 기술을 살려 대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높은 벽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사업을 접고 전주로 내려와 ‘장애인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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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인권 확립을 위해 발에 땀나도록 현장을 누비던 그였지만 몇 년 전부터 부쩍 건강이 나빠져 현재는 종일 집에만 있는 처지가 됐다. 뇌병변이 악화돼 점점 더 몸을 움직이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족들을 위해 경제적으로 아무런 힘이 돼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한단다.

윤주씨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싫은 소리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혹시나 자신의 말 한마디가 남편의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윤주씨는 넉넉하진 않지만 그저 지금처럼 네 식구가 다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식사를 끝낸 윤주씨는 서둘러 세탁기를 돌렸다. 몸이 불편한 부부를 대신해 자원봉사자들이 가사를 전담하고 있지만 윤주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나서서 하는 편이다. 그렇게나마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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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그러는 사이 잠에서 깬 하늘이가 ‘다다다다’ 발소리를 내며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좀처럼 웃지 않던 규정씨의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띠었다. 윤주씨는 잠에서 덜 깨 투정 부리는 하늘이를 뒤로한 채 남편의 약을 챙겼다. 그녀는 건강이 나빠진 남편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사실 윤주씨도 남편 못지않게 건강이 좋지 않다.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해 집에서는 기어 다니다시피 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주씨는 자신은 괜찮다며 머릿속에는 온통 남편 걱정뿐이었다.

부부는 2005년 어느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규정씨는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마치 운명처럼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긴 채 그녀 옆을 맴돌기를 어언 4년, 규정씨의 고백으로 2009년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은 200일이 되던 날 평생 서로의 동반자가 돼주기로 약속했다.

함께라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땅한 직장이 없는데다가 장애까지 있는 두 사람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결혼 초에는 함께 살 방 한칸도 마땅치 않아 모텔에서 신방을 차려야 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살 집은 마련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돈이 들어갈 곳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황. 14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은 네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윤주씨는 아이들 과자 값이라도 걱정 안 할 만큼만 형편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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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부모로 산다는 것

부부에게는 하람이와 하늘이 두명의 아들이 있다. 두 아이 모두 자연임신으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처음에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했을 때 본인 하나도 건사하기 벅찬 두 사람이 비장애인들도 힘들어하는 육아를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위에서는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주씨는 혹시나 아이들이 자신들처럼 장애를 갖고 태어나진 않을까 임신 기간 내내 마음 졸였다고 한다. 또 키우면서도 아이들에게 조금만 열이 나도 혹시나 자신처럼 될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장애가 가진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내 아이만큼은 그 아픔을 몰랐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기특하게도 두 아이 모두 큰 병 한 번 치르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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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씨가 한눈을 파는 사이 아토피 때문에 가려운 듯 몸 여기저기를 긁고 있는 하늘이가 윤주씨 눈에 포착됐다. 긁지 말라며 연고를 발라주려고 하자 하늘이는 온 방을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봐야 엄마의 손바닥 위. 결국 하늘이와 엄마 사이의 ‘연고전쟁’은 녀석의 울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호기심 많은 하늘이는 기자의 핸드폰과 카메라가 신기한 듯 눈독을 들였다. 방심하는 틈을 타 핸드폰과 카메라를 가져다 이것저것 눌러대기를 일쑤, 혹여 고장 날까 싶어 그만하라고 말리는 윤주씨와 생떼 부리는 하늘이 사이에서는 하루 종일 실랑이가 벌어졌고 기자는 중간에서 난감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운 네 살’이라고 했던가, 순하디 순한 하람이와는 달리 아빠를 닮아 고집이 세고 말괄량이인 하늘이를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울 때도 많다. 괜스레 드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잘못을 꾸짖다가 망설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혼내려고 하는 편이란다.

오후 2시, 자원봉사자와 함께 제철인 쑥으로 떡을 만들기로 했다. 하늘이는 자신도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기자와 하늘이, 자원봉사자가 떡을 빚는 사이 규정씨가 윤주씨를 부르는 소리가 났고 윤주씨는 슬그머니 그가 있는 방문을 닫았다. 규정씨는 화장실까지 이동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윤주씨가 직접 방 안에서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자원봉사자가 손을 보태면 훨씬 수월할 테지만 이것만큼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윤주 씨가 혼자 도맡아 한다. 남편을 배려하는 윤주씨의 마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낮잠을 좀 자겠다는 남편을 위해 불을 끄고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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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빠가 창피하지 않니?”

오후 3시가 되자 윤주씨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방과 후 교실을 마칠 시간이 된 큰아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윤주씨는 종종 전동오토바이를 타고 하람이를 마중 나가곤 한단다. 혹여 궂은 날씨에 아들이 밖에서 기다리진 않을까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전동 오토바이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하람이가 방과 후 학습을 하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하람아~”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하람이는 재빠르게 뛰어나왔다. 윤주씨는 하람이가 오자마자 오늘은 무얼 공부했는지, 친구들하곤 무얼 하며 놀았는지, 싸우진 않았는지, 밥은 무얼 먹었는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의 무한한 관심 덕에 하람이 역시 집에 가는 내내 숨고를 틈도 없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아빠의 장애 때문인지 올해 초등학생이 된 하람이는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 편이다. 다른 부모들처럼 가족들끼리 나들이를 간다거나 갖고 싶은 장난감, 입고 싶은 옷 등을 마음껏 해주지 못하지만 떼 한번 쓰는 법 없는 착한 아들이다. 언젠가 그녀가 하람이에게 “엄마랑 아빠가 장애가 있어서 부끄럽지 않냐”고 묻자 하람이는 “아니 하나도 안 부끄러운데”라고 답했다고 한다. 윤주씨는 내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앞으로 하람이가 더 성장해 사춘기가 왔을 때 찾아올 변화들이 내심 걱정되고 두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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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윤주씨는 가장 먼저 하람이의 알림장부터 살폈다. 자원봉사자가 있을 때 확인해야 본인이 이해 못하거나 미처 챙기지 못한 숙제나 준비물 등을 챙겨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빠에게 “다녀왔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마친 하람이는 홀로 딱지를 치며 놀았다. 아빠 규정씨는 홀로 노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아빠와 아들은 함께 뛰놀며 몸을 부딪쳐야 정이 쌓인다는데 규정씨는 그럴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다. 종종 자원봉사자의 남편이 찾아올 때 안기며 놀아달라고 보채는 하늘이를 보면 아빠의 미안함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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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가 자기도 함께 놀고 싶은 듯 형이 노는 걸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하람이는 화 한번 내지 않고 동생이 원하는 대로 다 받아줬다. 그런 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이는 형이 아껴뒀던 스티커를 몽땅 망가뜨렸다. 그래도 하람이는 아쉬움 섞인 짧은 한숨만 내쉴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티는 안내도 내심 마음 상했을 하람이를 데리고 기자는 문구점으로 나섰다. 집에서 보다는 한층 밝은 모습이었다. 하람이는 “동생이 스티커 망가뜨려서 많이 속상했지”라고 묻자 “아니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라고 대답했다. 스티커를 선물한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8살이라기엔 어른스러운 하람이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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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부끄럽지 않은 부모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누구보다 잘 자라준 하람이에게 기자까지도 감사했다. 이렇게 바르게 잘 자라기까지 윤주씨와 규정씨는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윤주씨와 규정씨는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장애가 있는 자신들에게 쉬운 일은 물론 아니라고 했다. 비장애인들보다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두 사람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크단다.

부부는 비록 자신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하람이가 태어난 해부터 근 10년간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조금씩 모아 지역 독거노인들을 위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하람이와 하늘이가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배려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뜻에서다. 아이들에게 나눔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부부는 여력이 되는 한 계속해서 기부를 할 생각이다.

규정씨와 윤주씨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대답했다.

“그냥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끄럽지 않은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나중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엄마·아빠’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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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기준은 경제력, 친화력, 소통 등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일 테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기준은 ‘얼마만큼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느냐’다. 그래서일까 이날 본 윤주씨와 규정씨는 이미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엄마·아빠임이 틀림없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것도, 장애가 없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을 통해 배웠다.

요즘 ‘결혼은 현실’이라며 상대방에 대해 많이들 재고 따진다. 사랑을 먹고산다는 것은 다 옛말. 때문에 누군가는 규정씨네 가족을 보며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 역시 부부를 만나기 전엔 그랬다. TV만 틀어도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불행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에 반해 돈이 없어도 행복한 규정씨네 가족을 보니 사랑만 먹고 살 수는 없어도 사랑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며 장애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그동안 인생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더욱 굳건해진 규정씨와 윤주씨 부부. 든든한 엄마·아빠 울타리 안에서 예쁘게 성장하고 있는 하람이와 하늘이에게 앞으로 행복만 가득하길 바란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죠. 규정씨 가족이 여러분이 주신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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