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산, 왕위에 오르다
[칼럼] 이산, 왕위에 오르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5.1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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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1776년 3월 10일. 이산(李祘)이 조선의 제 22대 왕에 올랐다. 훗날 그의 묘호(廟號, 임금이 죽은 후 붙이는 이름)는 ‘정조’로 정해졌다.

이산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이근호와 김준혁 등의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세손 시절 끊임없이 세손 지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그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의 원인에 관한 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산이 세손 시절, 사도세자가 정신적 질환으로 궁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 그리고 ‘역모의 죄’를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할아버지에 의해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것은 어린 이산이 받았을 충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역모의 죄를 물었다는 것은 연좌제가 있던 조선 시대에 이산 역시 역적의 자식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다가 왕명에 의해 아버지가 죽음을 당했으니, 세손으로서의 지위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조가 이산을 매우 아꼈고, 이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후한 시점에 영조가 이산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키면서 세손의 지위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경을 거쳐서 이산은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정조실록』에 등장하는 그의 왕위 등극 직후 일성은 강렬했다.

아! 과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대신들 앞에서 이산이 내린 윤음(綸音,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이었다. 윤음이 오늘날의 법령과 같은 위력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한 것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지위는 물론, 목숨까지 위태롭다고 느낄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말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이산은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한 뒤, 영조가 자신에게 효장세자의 종통을 이을 것을 명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조실록』에는 이 윤음의 제일 마지막에

괴수와 귀신과 같은 불령한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추숭(追崇)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께서 유언하신 분부가 있으니, 마땅히 형률로써 논죄하고 선왕의 영령(英靈)께도 고하겠다.

라고 말한다. 사도세자를 추모하거나 지위를 높이려는 모종의 노력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숭된 것은 고종 때에 와서야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세력에게 정조의 윤음 가운데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를 통해 이산은 세손시절까지 흔들렸던 정통성을 유지하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지위 역시 정통성에 상처를 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현대를 사는 우리 국민에게 정조는 세종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조선시대 왕이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던 시점이 병신년이고, 정조가 왕위에 등극한 것도 병신년이다. 그리고 <JTBC>의 시사프로그램 ‘썰전’에서 유시민은 “문재인의 대통령 취임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 반대편에게 무시와 조롱을 받고 있지만, 과보다 공이 훨씬 크고, 국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지, 또 수구정권 9년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쌓여있는 적폐를 어떻게 청산할지, 훗날 어떤 대통령으로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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