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뉴시스

재벌개혁 최일선에 선 재벌저격수 두 학자
‘재벌해체’보단 ‘불공정’ 바로잡는 개혁 전망

공정위 조사국 부활…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순환출자 해소…현대차 지주사 전환설 솔솔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재벌 저격수’로 평가받는 한성대 김상조 교수와 고려대 장하성 교수를 각각 내정·임명하면서 재벌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내정자는 지난 1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의 목표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이라며 “새로운 법을 만들어 4대 그룹만 때려잡겠다는 방식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 실장 역시 지난 21일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을 개혁한다는 것의 의미가 (재벌을) 두들겨 팬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며 “보다 함께 잘 사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일자리, 그리고 국민 삶의 출발인 기업의 생태계 균형이 잡혀야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20여년간 활동한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 투톱을 내세운 새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재벌 저격수’ 투톱 내세운 재벌개혁

문 대통령이 재벌개혁을 위해 선택한 카드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장하성 교수였다.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평가되는 두 학자는 그간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을 지적하며 재벌개혁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장 실장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경제개혁연구소장 등을 맡아 활동해왔으며,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에 나섰다. 지난 1999년에는 삼성전자 주총에 참석, 8시간 넘게 집중투표제 도입, 경영투명성 확보 등을 위한 정관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내정자 역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을 거치며 시민사회에서 재벌 비판에 앞장서왔다. 지난 2004년에는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삼성전자 주총에서 이사 선임 등 안건에 적극 반대의사를 밝히는 등 재벌기업의 독단적 경영 견제에 힘써왔다.

또한 장 실장이 기획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인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 이른바 ‘장하성 펀드’에서도 김 내정자가 펀드 자문을 맡는 등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어왔다.

이 같은 발자취로 미뤄볼 때 두 사람의 재벌개혁 방안으로 소액주주 권한 확대를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의 대기업 정책이 전망된다.

더불어 두 사람 모두 ‘재벌 때리기’식 개혁에는 반대하고 자본주의 틀 안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에 재벌 해체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불공정한 재벌행태를 바로 잡는데 방점을 두는 점진적인 재벌개혁이 예상되고 있다.

재벌개혁, 시작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부의 재벌개혁은 먼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강화로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4일 김 내정자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제출한 청문회 답변 자료를 통해 “기업집단국이 신설되면 대기업집단에 대한 정책과 감시가 효율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그간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던 주요 대기업집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과징금 등 제재를 강화하겠다”면서 “앞으로 카르텔(담합) 등 불법행위가 적발돼 입게 되는 불이익이 매우 커지는 방향으로 과징금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재벌 불법행위를 전담 조사하며 ‘재벌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친 공정위 조사국이 ‘기업집단국’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강한 압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현행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총수 일가 지분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기준을 20%로 낮춰 규제를 확대하는 안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은 지난해 내부거래를 통해 각각 10조8151억원, 840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부거래비율은 각각 70.4%, 79.9%에 달했다.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각각 30%, 29.99%다.

규제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연간 거래액 200억원 미만, 거래 상대방 매출의 12% 미만의 요건을 맞춰야 한다.

앞서 지난 3월부터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으로 분류되는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실태 점검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실태 점검을 마치고 김 내정자가 공식 취임하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본격적인 감시와 감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 ⓒ뉴시스

가시화되는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해소 방안

지난 18일 김 내정자가 “순환출자가 재벌 경영권 승계에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뿐”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지주회사 전환이 이슈로 떠올랐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롯데, 삼성, 영풍, 현대차,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현대중공업, 대림 등 8개 기업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이중 순환출자해소비용은 현대차가 5조8390억으로 제일 높다. 롯데(1조7508억원), 삼성(1조7431억원), 현대중공업(7851억원) 등과 비교해서도 차이가 크다.

현대차는 공시 등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 추진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향후 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변경은 새 정부의 의지와 순환출자 해소라는 사회적 흐름 등으로 미뤄볼 때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다시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를,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3.88%를, 기아차가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96%와 현대차 5.17%만으로 현대차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의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하다고 꼽히는 안은 순환출자의 축인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를 각각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하고 3개 투자부문을 합병해 지주사를 설립하는 방안이다. 이외에도 현대모비스나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지주사 설립 이외의 방안으로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총수 일가가 확보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방안을 위해서는 지분 확보 비용만 4조6000억원 가량이 드는 등 상당한 비용이 관건이다.

이처럼 현대차의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가 회자되는 가운데 지주사 전환의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계열사 지분을 해소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금산분리를 강화해 재벌이 장악한 제2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캐피탈, HMC투자증권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어 지주사 전환을 통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서는 이들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분 처리가 선결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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