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소비③] 독서주치의가 상담 후 적합한 책 골라 배송

   
▲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적인서점 내부 ⓒ투데이신문

고즈넉하고 편한 분위기서 상담 진행
1대 1 면담 후 고민 해결할 책 소개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당신께 이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한 권의 책 속에는 저자의 생각은 물론 사회적 쟁점, 역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직‧간접적인 경험과 지식은 쌓이고 쌓여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책 한 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한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다.

때문에 독서는 과거부터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모토로 삼는 ‘욜로(YOLO)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취미활동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최근 기자는 책에 ‘권태기’가 온 상태였다. 읽어야 하는 책과 읽고 싶은 책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다 종래에는 책과의 관계가 소홀해졌다. 그러던 중 책과의 권태기를 극복시켜 줄 공간을 찾았다. 1대 1 상담을 통해 이른바 ‘독서 주치의’가 나를 위한 책 처방을 해주는 ‘사적인서점’이 바로 고민 해결의 장소. <투데이신문>은 지난 16일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사적인서점을 방문해 독서 주치의와 고민을 함께 나눠봤다.

독서차트 작성

우선 기자는 사전예약으로만 진행되는 책 처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서점에 방문하기 2주 전 사적인서점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해당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신청 필수 항목에는 신청자의 이름과 연락처, 메일주소, 성별, 태어난 달부터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와 신청이유, 가장 좋아하는 책 세 가지를 기입해야했다. 개인 정보란까지는 막힘없이 술술 작성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책 세 가지’를 묻는 항목을 보자 ‘멘붕’에 빠졌다. 번뜩 떠오른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황도 잠시 좋아했던 책이 뭐였는지 곱씹어보자 순식간에 책 세 가지를 추릴 수 있었다. 이후 희망하는 날짜와 책을 배송받을 주소를 기재하고 예약을 마친 뒤 프로그램비 5만원을 입금했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서점을 찾았다. 지도 앱을 토대로 서점을 찾았으나 건물 외관에 간판이 없어 과연 제대로 찾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같은 건물 1층의 헤어숍 사장님께 위치를 물어본 뒤에야 서점의 명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밖에서는 서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프라이빗한 공간에 드디어 발을 들였다.

   

▲ (좌)사적인서점 올라가는 계단에서 발견한 홍보물 (우) 간판이 별도로 없는 사적인 서점 ⓒ투데이신문

   
▲ 상담이 진행된 테이블 ⓒ투데이신문

작은 규모의 매장은 아기자기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은은한 조명과 책꽂이에 적당히 꽂혀있는 다양한 장르의 책, 시선을 크게 분산시키지 않는 소품들. 그 한편에 놓여있는 상담 테이블에 앉자 독서 주치의 정지혜씨는 시원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매장에 있는 책 중 읽고 싶은 책 3권을 골라보라고 했다.

이에 기자는 눈길을 끄는 ▲댓글부대(장강명)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오쿠이즈미 히카루)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이다혜)를 골랐다. 정씨는 책을 고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기자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재밌게 본 적이 있어 이 책(댓글부대)을 골랐으며,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나쓰메 소세키를, 최근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겨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골랐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기자가 말한 내용을 독서 차트에 기입하면서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이며, 어떤 장르의 책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주변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별로였던 책은 어떤 것인지 등을 질문했다. 기자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주치의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리라. 이에 정씨는 “책을 안 읽었던 분들께는 그들의 최근 관심사를 투영해 책을 추천해드리고, 책을 즐겨 읽는 분들은 보통 선호하는 장르만 읽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책을 추천한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고 싶어서 오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책과 관련한 질문에 이어 정씨는 최근 관심사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기자는 평소 책을 좋아하지만, 책에 권태기가 온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는 독서주치의와의 1대 1 상담이었기에 가능했다. 잔잔한 분위기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정씨와 약 한 시간에 걸쳐 독서 취향과 최근 관심사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예약한 시간이 끝나가자 정씨는 이날 나눈 얘기를 취합해 기자에게 전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른 뒤 사전에 기재한 주소로 책을 발송하며, 배송까지는 최대 10일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는 정씨 본인이 추천할만한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보내기 때문이라고. 정씨는 “읽지 않은 책을 처방하지는 않는다”고 프로그램 방침을 밝혔다.

추천받은 책이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정씨는 웃으며 “아직 한 번도 그런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 없다”고 답했다. 그는 “예전에 전공 서적으로 읽었던 책을 배송받은 고객님이 계셨다. 그 분이 ‘전공 서적으로 읽었을 때와 추천받아 읽는 책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결국 이 책이 내 인생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았다’고 말씀했다”며 사례를 들었다.

   
▲ ⓒ투데이신문

책 <악어 프로젝트>를 처방받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책 이야기는 물론 사담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다 보니 책과의 권태가 해소된듯했다. 스트레스도 일정 해소됐다. 마치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후 신하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한 시간여에 걸쳐 독서 주치의 정씨와 속 시원히 상담 아닌 상담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을까. 택배원이 한 상자를 들고 회사 문을 두드렸다. 받아보니 독서 주치의 정씨가 보내온 책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개봉하니 한 통의 편지와 함께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성차별 문제에 대한 여성의 경험담을 만화로 그려낸 책 ‘악어 프로젝트’가 담겨있었다. 이는 독서차트를 작성할 때 눈길 가는 책 3권을 고르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가 책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선택했던 것이 어느 정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처방받은 악어 프로젝트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책 속에서 성희롱 및 성폭력을 가하는 가해자를 남성이 아닌 ‘악어’로 표현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 해당 책을 읽었다는 남 기자도 “가해자들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덜했었다”고 감상을 전했다.

확실히 처방받은 책을 읽음으로써 그저 관심사에 불과했던 페미니즘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책과의 권태도 완벽히 해소됐다. 프로그램 비용 5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먼 미래의 일보다 당장 눈앞의 일로 고민을 하는 이에게 그와 관련한 책을 처방함으로써 작은 힌트를 제공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인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을 안고 있거나, 고민과 관련한 상담과 처방책을 받아보고 싶다면 사적인서점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