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한국 사람들이 식당에서 많이 찾는 음식은 늘 변해왔다. 오랫동안 주된 메뉴는 탕이나 국 또는 찌개였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서민들이 육류의 높은 열량을 값싸고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국물음식만한 게 없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름진 서구음식이 휩쓸던 때도 있었다. 주로 미국식 정크푸드의 느끼한 양념을 흉내 낸 유행이 더 갈 곳이 없을 때 등장한 게 매운 맛이다. 물론 한식에서 매운맛의 비중이 나날이 커져왔지만, 2000년대 전후 거의 모든 식당에 등장한 매운 음식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요즘은 자극적인 한가지 맛이 재료의 풍미를 덮으면 인기가 없다. 양념은 재료의 맛을 돋우는 수준으로 약해지고 대신 재료의 다양한 맛이 함께 어울리도록 복합적이어야 한다. 여러 해외문화를 접하거나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중음식점의 음식들이 이처럼 때마다 유행이 바뀌는 이유는 손님들 때문이다. 외식시장의 맛 흐름을 만들어내는 건 시장의 수요자인 대중의 요구다. 식당주인들은 시장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비단 식당뿐 아니라 고객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가 비슷하다.

이는 언론매체들에게도 적용된다. 언론사는 독자없이 존재할 수 없다. 특히 특정 사상이나 이념의 지향을 내비치는 언론사들은 그들의 방향성을 소비하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운영된다.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은 진보적 독자들과 보수적 독자들의 선호가 없다면 설 곳을 잃는다.

근래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른바 '한경오'라 불리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언론의 논조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언론사는 각기 역사나 운영 등에서 저마다 특징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주로 진보적 독자들의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에서 판매부수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만 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진보언론 그룹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진보진영 시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중이다.

진보언론 비판자들은 문재인이라는 특정 인물의 지지자 이전에, 정치적 주장을 직접 표출하여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다만 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하게 시민의 정치 세력화를 꾀하는 점이 다르다. 21세기 전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시민들이 독자적 세력화에 성공해 정당정치 전면에 나선 사례는 없었다. 김대중 김영삼 등 몇몇 거물 정치인에게 일어났던 결집은, 실제로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력이 견인한 세력화였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2000년대 초 노사모의 등장은 우리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던 현상이었다. 그리고 전례가 없었기에 항구적 세력화를 이룰 만한 경험과 능력 또한 부족했다. 참여정부의 탄생에 시민사회의 공이 컸지만 이를 정치적 세력으로 유지할 수 없었기에 대통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져 갔다. 시민들은 시민세력화에 절반만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언론이 보인 자세는 독특했다. 진보언론의 성장은 시장의 수요자인 진보진영 독자들의 요구에 충실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기간동안 진보언론들은 진보진영 독자들이 시민세력으로 온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진보적 올바름을 규정하고 선점했다. 공급자가 수요자의 요구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진보언론이 새시대의 마중물이 되려던 헌신의지가 앞서 나가서 일 수도 있다. 혹은 보수세력의 프레임에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진보언론의 이러한 양상을 이끌어 낸 데에는 진보진영 시민들의 몫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언론사들은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생산해야 판매부수가 담보되기 때문이다. 진보언론의 논조와 진보진영 시민들의 태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보의 두 축으로 자리잡아갔다.

그러나 진보진영 시민들은 탄핵 촛불집회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다. 탄핵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독자적인 세력화의 가능성을 봤다. 시민들 스스로 정치 세력화 하고 있다. 여기에는 참여정부 시절의 세력화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이 응집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는 진보언론과 시민 사이의 갈등은 시민세력의 자기교정 과정이다. 같은 현상은 그들이 야당의 불만족스러운 정치인들을 대하는 장면에서도 발견된다. 요즘 여권지지자들은 새 정부의 각료 내정자 청문회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에게 항의문자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들은 변화를 깨닫지 못하는 진보언론과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묘사하며 벌어지는 왜곡도 교정하려는 중이다. 시민의 주장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다.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자신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앞서의 음식 이야기로 빗대자면, 손님들이 단골 식당에서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시오! 안 그러면 다신 안 오겠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