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좌) ⓒ뉴시스 / 故 박경근씨의 유서(우) <사진 제공 = 전국공공운수노조>

노조 “임금 착취구조 마사회가 책임져라”
한국마사회 “공정경마 위해 어쩔 수 없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임금 기준 없어 들쭉날쭉
반복되는 마필관리사 죽음…구조 개선돼야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5월 27일 새벽,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하던 박경근(38)씨가 ‘O 같은 마사회’라고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를 비난하며 유서를 남긴채 마구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된 박씨는 대학에서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4년부터 국내 최초의 말 마사지사로 활동할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다. 마필관리사 일을 자랑스러워하던 고인이 갑자기 자살을 한 것이다.

그가 팀장으로 일하던 33조는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인은 평소 마방에서 함께 일하는 동생들이 급여 기준도 없이 밥도 먹기 힘들 만큼 들쭉날쭉한 임금을 받고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때문에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이하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구조 개선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노조의 요구를 묵살했다. 결국 박씨는 구조 개선을 위해 죽음으로 항거했다.

박경근 씨의 어머니는 한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통해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10살짜리 쌍둥이 아들이 보고싶다면서도 말이 걱정돼 5일 동안 마방에서 퇴근하지도 못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들이) ‘우리 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똑같이 일하고 밥도 못 먹는 조도 있다’고 불평불만을 하면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냐고, 열심히 하라고 질책한 것이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다시는 제 아들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을 죽이는 마사회를 변화시켜 주시고, 죽은 우리 아들 명예를 꼭 회복시켜 줄 것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박씨의 부인은 그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통해 “아끼는 동생들만큼은 더 이상 힘들고 외로운 길을 가지 않도록 자기(박씨)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박씨가 사망한 지 14일이 지난 지금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조에 절차를 위임했다.

노조는 “고인이 마사회의 임금 착취구조에 항거하다 죽음을 선택했다”며 마사회가 직접 나서 ‘죽음의 착취구조’를 개선하고 노조탄압을 중단해 고인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장례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동생들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며 구조를 바꾸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 마필관리사 임금구조<자료 제공 =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

불투명한 마필관리사의 임금구조

마필관리사들은 마사회가 단일 마주(馬主)로 모든 말을 관리하던 1993년 이전에는 마사회 소속 직원이었다. 그러나 1993년 개별마주제가 시행되면서 고용구조의 변화를 겪었다. 개인 마주가 조교사에게 경주마를 위탁하고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조교사에게 고용된 마필관리사의 임금은 3단계에 걸쳐 지급된다. 마사회에서 마주에게 경주에 참여한 대가로 경마상금을 지급하면 마주는 본인의 몫을 제외한 잔여 상금과 말 위탁관리비를 조교사에게 지급한다. 조교사는 여기서 본인의 몫을 뗀 나머지 금액을 기수와 마필관리사에게 지급한다.

조교사의 경우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은 마사회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사실상 마사회의 통제 하에서 일을 하지만 공기업의 비정규직 통계에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노조에 따르면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로부터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고 그 이외에는 성과급을 지급받는다. 과천·제주의 경마공원은 조교사와 맺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기준에 의해 성과급을 배분한다. 그러나 부산경남의 경우 정해진 기준 없이 조교사가 자의적으로 배분하도록 돼 있다.

경주 성적이 좋아 상금을 많이 받는 조와 그렇지 않은 조의 마필관리사 임금은 배 이상 차이난다. 노조 관계자는 “마사회는 마필관리사의 평균 급여를 월 463만원 정도로 책정하고 있지만 이는 상금을 포함한 것이고 월 150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마필관리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과천경마공원의 경우 고정성임금(기본급, 제수당) 85%와 경쟁성임금(상금성과) 15%로 돼있지만 부산경남경마공원은 고정성임금 30%와 경쟁성임금 70%로 무한경쟁에 내몰려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과천과 부산경남의 기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 이석재 조직국장은 “개별마주제로 전환될 당시 과천경마공원에는 노동조합이 있어 ‘조교사협회’에서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로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노사합의로 지급기준을 마련해 이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국장은 “그러나 부산경남은 2004년 경마공원 출범 당시 노동조합이 없어 노사합의를 하지 못해 기준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2005년 9월 개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식 ⓒ뉴시스

과로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마필관리사

마필관리사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는 “안전 및 노동시간과 관련해 마사회에서 관리사당 적정관리마수를 책정했지만 개별고용이므로 필수 인원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때문에 적정관리마수가 넘는 말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상금을 성적에 따라 나누기 때문에 끝없이 경쟁해야 하며, 고용주인 조교사들이 시간 외 근무를 강요하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조교사가 상금을 자의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의 말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마사회가 조교사의 면허를 발급, 중지, 박탈할 수 있으므로 관리사의 고용이 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로 양정찬 노조위원장은 마필관리사로 일하던 중 조교사가 면허 중지를 당해 마방이 해체되고 해고자 신분이 됐다. 또 마방의 말 수가 줄어서 해고되는 마필관리사도 있다.

노조는 “현행 개별고용시스템이 지속된다면 계속적으로 발생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노조는 마사회가 노조를 탄압했다고 주장했다.

마사회가 조교사와 면담하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몇 명인지 보고하라’,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이 몇 명이냐’, ‘그 조 관리사들이 제일 많이 가입했네요’라고 언급하면 마사회의 지시감독을 받는 조교사는 과잉 반응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개별노조탄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조합원이 250여명이었으나 노조탄압으로 인해 활동이 크게 위축됐으며 조합비 납부조차 조교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공동기자회견 ⓒ투데이신문

노조 “마사회에서 직접고용 해야” vs. 마사회 “불법 소지 있어 안 돼”

노조 측은 “마필관리 업무는 마사회의 주요 업무이자 상시업무임에도 변형된 간접고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를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사회는 ‘상생일자리 TF’를 마련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마필관리사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마사회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마필관리사 직접고용은 불법의 소지가 있어 불가하다”면서 “마사회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의 업무지시를 받게 되면 불법파견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마필관리사가 마사회의 직원이 된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말의 컨디션 등이 고객들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사회의 경마 시스템은 세계 표준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상금은 성적에 따라 공평하게 조교사에게 지급하는데 조교사들이 투명하게 관리사에게 지급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교사가 마필관리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선할 방향이 있다면 노력할 것”이라며 “마사회와 마주, 조교사와 마필관리사 대표 등이 참여하는 논의구조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노조는 이같은 마사회의 입장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마사회의 경마부정 우려에 대해서도 “현재 구조에서도 마방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경마 비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개별마주제 시행, 강한 처벌조항, 공정성 캠페인에도 경마부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인 비리 근절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공정경마를 이유로 간접고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9일 경기 과천시 경마공원 렛츠런파크 앞에서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마사회에 고용·임금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반복되는 마필관리사의 자살

마필관리사의 자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박용석(사망 당시 34세) 마필관리사가 ‘과도한 업무량으로 다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해고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어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신동원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이번에도 제도개선이 안 되면 다음엔 제가 죽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서 “몇 명이 죽어나가야 이 제도가 바뀔지 정말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반복되는 마필관리사의 죽음 앞에서도 마사회는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어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가는 상황이다.

공기업인 마사회가 고용·임금구조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의미도 무색하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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