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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자 나라’ 과로=능력으로 미화
과로가 능력되는 나라, 명맥 끊어야

산재인정, 통상 7~10%...소송가야 30~40%
우울증 등 정신질환 대한 부정적 인식도 문제

과로 대한 법적 정의 내려 방지해야
산재보험, 사회보장적 취지 살려야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2013년 해외 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는 세계은행과 기네스북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만든 세계지도를 공개했다. 한국은 ‘일중독자들(Workaholics)’이라는 딱지를 달았다.

일중독자들의 나라에서 잦은 잔업과 야근은 능력으로 미화됐다. 그렇게 과로는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척도가 됐고 과로가 능력이 되는 나라가 만들어졌다. 그 과로로 인한 개개인의 피해는 ‘회사와는 무관한’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됐다.

자본은 그 습성인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에 가능한 최대한의 노동을 요구했다. 노동은 이 같은 불합리한 요구에 무력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계에 다다른 노동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자본은 다시 고유의 습성을 발휘해 망가진 노동을 버리고 새로운 노동을 취하면 그만이었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본격화된 효율적인 경영이라는 명목, 노동의 부품화는 이를 더 쉬이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자본의 논리에 국가마저 동조했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의 오랜 역사에서 국가와 자본의 결탁은 점차 공고해졌다. 그렇게 국가는 노동에게서 등 돌려왔다.

산업현장에서 재해로 인한 피해도 쉬쉬하는 상황에서 과로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노동은 있지만 사람은 없는 사회가 됐다. 노동이 살기 좋은 나라 대신 노동이 죽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투데이신문>은 과로자살 연재 그 마지막으로 한국 과로자살의 현실과 예방·구제를 위한 노력, 또 제언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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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로자살 실태

한국의 과로자살은 현재까지 언론 등을 통해 크게 이슈화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로자살로 추정된다는 내용은 나오지만 과로자살로 명시된 내용은 추후에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이희자 노무사는 “(실무적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과로자살이 많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과로자살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시각과 인식을 이유로 들었다.

이 노무사는 “우리나라는 우울증 등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그게 사회적으로 노출될 경우 굉장히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서 “때문에 치료의 시기를 놓친다거나 치료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은 부분이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도 감기처럼 편안하게 인식되면 병원 다니면서 치료받을 수 있을 텐데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다 보니까 치료에 소극적인 측면도 병을 키우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본인이 상황상 조직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조직을 헤어나올 수 없는 여러 상황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게 되고, 이것이 악화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민변 노동위 소속 정병욱 변호사는 “우리나라 자체가 유교 전통이 있는 국가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숨긴다”며 “유가족들도 과로로 자살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산재로 처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숨기고 밖으로 내놓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더불어 “과로로 인한 자살이 언론이나 사회에 노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사회시각 등이 열려있지 않고 자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숨기고 통계도 안 잡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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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자살, 산재 인정 현실은

현재 한국은 과로자살은 물론 과로사도 산재로 인정되기 벅차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업무상 과로사·자살 산재보험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업무상 과로사의 산재 승인율은 2012년 20.5%, 2013년 29%, 2014년 26.1%, 2015년 25%, 2016년 25.9%에 불과했다.

업무상 자살의 경우에는 2013년 37.7%, 2014년 29.7%, 2015년 37.2%, 2016년 38.7%로 집계됐다.

이 노무사는 “(과로사의 경우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공단에 심사를 청구하거나 노동부 산재재심사를 청구했을 경우, 과로사 산재인정비율이 통계적으로 7~10%가 나오며, 소송으로 갈 경우 30~40%가량이 산재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과로자살의 산재인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업무와 재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다루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제37조에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에서는 자살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으로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위해 공동원인설과 상대적유력원인설이 사용된다. 이희자 노무사에 따르면 공동원인설은 업무에 의한 강도의 정신적 부담이 다른 원인과 함께 공동원인으로 돼 발병하거나 자살에 이르렀다고 인정되면 족하다는 견해다.

반면 상대적유력원인설은 업무에 의한 강도의 정신적 부담이 다른 원인인 업무 이외의 부담이나 정신질환의 기왕력(현재까지 걸렸던 병력)이 없는 등 자살의 유력한 원인으로 될 것 같은 개체적 요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력한 원인으로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노무사는 “과로성 재해 전반으로 보면 (상대적유력원인설에서 공동원인설로) 대체적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과로자살 같은 경우에는 최근 법원에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자살하는 이유가 본인 정신의 심약성, 취약성 등이 원인이라며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가 많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설령 그런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 부분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면 예전에 비해서 과로자살을 폭넓게 인정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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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예방 위한 노력

최근 집배노동자들과 IT업계의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에서도 과로사와 과로자살에 대한 문제 제기와 예방을 위한 입법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올 3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안(과로사 방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이 법은 현행 산재법에서 과로로 인한 사망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규정하고 있던 것을 ‘과로사’라는 표현으로 명시하고 과로사로 인한 자살 역시 과로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과로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국가의 책무를 법 규정에 명문화했다. 과로사 방지법 제3조는 국가가 과로사 등을 방지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토록 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3년마다 과로사 방지대책을 수립하고 그 추진성과를 국회에 보고토록 했다.

더불어 고용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과로사방지협의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협의회는 근로자 대표와 노동부 공무원 및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기타 과로사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 구성되며 과로사 문제에 대한 문제점 및 해결 방안을 노동부에 제시할 수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도 지난 5월 ‘과로사 예방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과로사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 직업성 질환의 진단 및 예방, 발생 원인의 규명을 위한 직업성 질환 역학조사 대상 사업장이 가능해진다.

이 의원은 “최근 집배노동자와 IT 게임업체 노동자들의 공짜 노동 등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와 직장 내 괴롭힘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과로사 및 정신질환에 능동적인 예방 및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 개정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입법활동과 더불어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민간의 노력도 생겨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 일과건강 등의 단체들은 ‘과로사 예방 센터(가칭)’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병욱 변호사는 “과로사예방센터는 전문가들만 모이는 센터가 아니라 유가족 등 과로와 관련된 사건에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분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하고, 과로와 관련된 법제를 개선하며, 과로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한 홍보를 하고자 한다”며 “이를 통해 과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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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풀어야 하나

과로자살·과로사 문제의 예방과 구제에 대해 먼저 정병욱 변호사는 우선 과로에 대한 법적 정의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물론 산재보험법에서도 딱히 과로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고 있지 않다”며 “과로에 대해 정의를 내린 규정 자체도 없어, 우리는 흔히 과로라고 쓰고 있지만 과로에 대한 법적 정의규정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한국은 과로의 정의라든지 과로에 대한 업무상 재해 개념을 종합적으로 묶어놓은 법이 없다 보니 과로에 대한 인식도 그리 확대되지 못했으며 판례도 거기에 대해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때문에 국가가 과로를 관리·예방하고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이나 노동환경, 업무상 스트레스 등에 대해 개선해나가는 등 과로 자체에 대한 예방과 관련된 시스템을 과로사방지법이나 근로기준법 등에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희자 노무사는 과로자살 등 과로사 산재 인정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의 엄격한 기준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적용하는 과로사 인정 기준은 1주간 근무시간이 4주 평균 64시간이거나 12주 평균으로 1주에 60시간”이라며 “이 기준을 맞추기 굉장히 어렵지만 공단이나 노동부는 이 고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꼬집었다.

또 “공단이나 노동부 산재재심사위원회까지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소송으로 가서 상당수가 구제를 받는다”면서 “그러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점 등이 부담스러워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족 측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 십중팔구 공단에서 항소, 상고를 이어가 (소송이) 몇 년 가는 경우도 있다”며 “그 사이 피해근로자나 유족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그런 고통을 (국가가) 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산재보험은 근로자나 그 가족의 생활보장 측면이 있는 사회보험”이라면서 “꼭 소송까지 가서 산재가 인정되는 것보다 소송 이전단계에서 조금 폭넓게 인정해줘야 사회보장적인 취지에 부합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했다.

위의 전문가들이 말한 제언을 짚어보면 △과로사방지법 등을 통해 과로에 대한 정의 명문화 △과로 자체에 대한 예방과 관련된 시스템의 법제화 △산재보험법이 사회보험으로써의 취지를 살려 과로 재해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제할 필요성 등이다.

과로가 능력으로 포장되는 나라, 때문에 타의에 의해 과로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나라는 이제 명맥을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로에 대해 정부가 법적 정의를 내리고 이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

일본과 같이 다소 실효성이 의심되더라도 다양한 제도 등을 실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죽기 어려운 나라를 벗어나야 한다. 지난 시간 동안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쌓아 올린 허울 좋은 나라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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