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도거부카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달 한 대학 동아리에서 ‘전도거부카드’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이들은 이른바 ‘무신론 동아리’로 알려진 자유사상 동아리 ‘프리싱커스’(Freethinkers)다.

자유사상이란 무비판적으로 믿는 것들을 경계하고 합리적 견해의 형성을 중요시하는 태도다. 프리싱커스는 현재 대학생 연합 동아리며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의 대학교에 지부를 두고 활동 중이다.

프리싱커스 서울대학교지부(이하 서울대지부)는 12일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등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전도거부카드를 배포했다. 서울대지부 오용재 회장은 "각 단과대학의 주요 위치에도 비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 회장은 “이번 전도거부카드 배포는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베타테스트’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종교에 대응하기 위해 전도거부카드를 만든 것은 아니”라며 전도거부카드에 대한 오해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학내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스를 설치하고 전도하거나 휴지 등을 나눠주는 분들은 소속 동아리 혹은 종교단체 이름 등이 쓰여 있지만,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가지 못하게 붙잡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등 부적절한 전도를 하는 분들의 경우 소속을 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자유사상동아리 '프리싱커스(Freethinkers)' 로고 <사진 제공 = 프리싱커스>

학내 신뢰 파괴하는 전도행위 방지하고자 ‘전도거부카드’ 만들어

전도거부카드는 ‘전도거부카드 매뉴얼(이하 매뉴얼)’과 전도거부카드 2장이 한 묶음으로 배포된다. 전도거부카드 매뉴얼에는 프리싱커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전도거부카드의 사용법, 일방적인 전도활동에 따른 문제점들이 담겨있다.

오 회장은 학내 전도에 대해 “특히 캠퍼스는 공부하는 공간, 학우들끼리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데 일방적으로 다가와 종교를 강요해 방해가 된다”며 “자체 조사결과 전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종교 활동이 아님에도 ‘전도하는 분들 인가보다’하고 피하게 된다는 응답도 받았다”고 지적했다.

프리싱커스가 제시하는 무분별한 전도행위의 문제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전도에 따른 불쾌감과 피해 ▲일방적 전도에 대한 우려로 인한 학내 구성원간 신뢰 파괴 ▲상대방을 존중하는 포교활동임에도 일방적 전도일 것으로 오해받아 무시당하거나 비난받는 부당한 상황 발생 등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프리싱커스는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종교인이나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서로 신뢰를 갖고 즐겁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전도거부카드를 제안했다.

그러나 ‘종교활동의 자유 침해’ 혹은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우리의 책임이 있는 문제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영향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의 신념에 대해 기본적으로 존중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기 되길 바라며 전도거부카드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전도활동은 의사소통의 룰을 깨는 것이기에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이며 비종교인들이 전도거부카드를 내밀고 ‘룰을 지키자’는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도활동중인 종교인에게 전도거부카드를 제시한다면 반응은 어떨까. 오 회장은 한 사례를 들어 “의외로 충돌은 생기지 않았고 그 분들이 오히려 ‘이렇게 대응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전도거부카드의 가능성을 말했다.

▲ 전도거부카드와 매뉴얼 ⓒ투데이신문

서울대 종교동아리 “실효성 있을지 의문”

그렇다면 학내 종교동아리의 반응은 어떨까.

서울대의 한 기독교동아리 회원 A(25)씨는 “종교를 거부할 자유도 있고 전도할 자유도 있다”면서 “하지만 종교는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도거부카드가 등장했다는 것에 종교인들이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학생회 차원에서 학내 규칙을 만들기 위해 배포된 것인 줄 알았는데, 특정 동아리에서 만든 것이라면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불교동아리 회원 B(26)씨도 “전도거부카드를 만들어서까지 전도를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황당하다”면서 “거부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무분별한 전도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카드를 제시한다고 해서 전도를 멈출지 의문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외에 원불교와 천주교, 증산도 등의 학내 다른 종교동아리에도 문의하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학내의 비종교인 학생 C(29·여)씨는 “거절 의사를 나타냈음에도 팔을 붙잡고 강요하는 분들을 여러 번 만났다”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용해볼 것”이라고 얘기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D(23·여)씨는 “종교활동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종교활동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자유의 영역이 아닌 일종의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내에서 학생들을 만나 물어보니 전도활동으로 불편을 겪는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 지난 6월 9일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 비치된 전도거부카드 <사진 제공 = 프리싱커스 서울대학교지부>

“전도는 ‘예의’ 문제”…공존하는 지혜 발휘해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는 전도거부카드에 대해 “‘오죽하면’ 전도거부카드까지 나왔겠나”라면서 “현대사회는 서로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와 법률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면서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하는데, 종교도 이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차별적 전도는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의 사적인 자유와 권리에 침투하는 것이다. 이는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며, 당연히 이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며 “사람이 대개 전도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절 때문인데, 전도거부카드는 예절을 갖춘 형태”라고 분석했다.

전도거부카드의 실효성에 대해 윤 교수는 “서로 대화의 예의를 갖춘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종교 활동의 자유를 실현하기는 힘든 것일까. 전도거부카드의 활용과 효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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