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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인터넷 수리기사로 일하던 50대 남성이 근무 중 고객이 휘두른 흉기로 사망하는 참변이 발생했다. 살해 이유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 화가 났기 때문’. 이에 동종 업계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인터넷 수리기사에 대해 ‘작업중지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충북 충주시 칠금동의 한 원룸에서 KT 자회사 소속 수리기사 A(53)씨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사건 당일 A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터넷 수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집주인 B(55)씨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 화가 난다”며 시비를 붙였고 이로 인해 A씨와 B씨 사이에서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런데 분노를 참지 못한 B씨가 집안에 있던 흉기를 집어 들어 A씨의 목과 복부를 3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A씨가 가까스로 원룸에서 벗어나 행인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 됐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평소 B씨는 7년 전부터 사용해온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주 끊기는 데 많은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민원도 자주 제기해 수리기사들 사이에서는 B씨가 피하고 싶은 ‘진상고객’으로 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교육 정도나 문화적 환경에 맞지 않은 잘못된 생각이나 믿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망상 장애 요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가 자신의 집 인터넷 속도를 고의로 느리게 한다는 피해망상에까지 사로잡혔고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B씨는 “해당 업체와 관련된 사람들만 봐도 화를 참을 수 없었다”며 “누구든 인터넷 수리를 위해 방문하는 수리기사를 해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의 모 CU 편의점에서 봉툿값 50원 때문에 손님이 알바 노동자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불과 지난 8일에는 경남 양산의 모 아파트에서 스마트폰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며 40대 남성이 외벽 도색업무를 하던 작업자를 지탱하던 밧줄을 칼로 절단해 숨지게 했다.

일각에서는 ‘CU 봉툿값 살해사건’과 ‘양산 밧줄 절단 살해사건’에 이어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분노에 의해 애꿎은 노동자가 또다시 희생됐다며 인터넷 수리기사에 대한 ‘작업중지권’ 부여 및 노동자의 존엄성 존중을 촉구하고 나섰다.

▲ 희망연대노조합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논평 캡처 ⓒ투데이신문

희망연대노동조합은 19일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은) 고객의 불만을 노동자 홀로 감내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노동자에게 고객의 불만을 혼자 감당하도록 했다. 자본은 노동자의 권리마저 팔아치웠다. 그리고 이 노동자가 고객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가 안전하게 자존감을 가지며 일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고객도 바뀐다”며 “KT를 비롯해 모든 자본에게 촉구한다. 대고객서비스를 하는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이해관 KT새노조 전 위원장은 <투데이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사건 발생 이후 KT에서는 위험 고객에 대해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위험 고객이라는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기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는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규정이 좀 더 엄격해질 필요성이 있다”며 “현장 노동자들에게 신변위협이 느껴진다거나 정당하지 않은 고객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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