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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타 트윅스터’ 한받 “나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민중엔터테이너”[인터뷰] 음악으로 민중과 연대하는 아티스트 한받
김태규 기자  |  ssagaz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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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3  14: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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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쟁 현장서 흥겹게 춤추는 ‘민중 엔터테이너’
‘홍대 두리반 투쟁’ 승리 경험이 연대 활동 기반

영화감독 꿈 포기한 후 노래하며 위로받아
음악이 가진 힘, 민중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음원유통업체가 뮤지션 착취하는 구조에 보이콧
‘자립음악생산조합’ 활동으로 인디 뮤지션 지원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겨울,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집회·시위에 참여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헌정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촛불집회에는 국민들이 외치는 함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정권을 바꾸자고 외치면서도 노래를 통해, 춤을 통해 즐겁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큼 집회·시위가 국민의 권리로써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금도 여전히 크고 작은 집회·시위가 매일 이어진다. 철거민, 세입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등 많은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집회 참가자들은 ‘승리’를 외치며 싸우지만 가능성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집회 현장에 연대하며 음악과 춤으로 흥겹게 맞서는 뮤지션이 있다. 그는 고용주, 건물주 등을 향해 ‘돈만 아는 저질’이라며 조롱하고 풍자한다. 자본과 권력에 핍박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연대한다.

<투데이신문>은 민중의 아픔을 함께하고 흥과 즐거움을 나눠주는 ‘민중 엔터테이너’, 1인 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 한받(본명 한진식·43)을 만나 그가 민중과 음악으로 연대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 지난 4월 28일 KT스카이라이프노조 기자회견에서 연대공연한 야마가타 트윅스터 ⓒ투데이신문

한 남자가 몸을 배배 꼬면서 춤추다 

Q. 스스로를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하는데 그 의미는.

보통 엔터테이너는 대중매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동하는 연예인을 지칭한다. 반면 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 소위 말해 민중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로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하고 있다.

Q. 민중가수와는 다른 개념인가.

민중가요는 보통 진중하고, 가라앉아 있고, 암울한 분위기가 많다. 그런데 촛불 시위를 겪으면서 집회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상황은 열악하고 절망적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흥겹게 즐기면서 싸울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본다. 민중 엔터테이너는 그에 맞게끔 변화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Q. 아마츄어증폭기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2003년에 아마츄어증폭기로 데뷔해 2008년까지 활동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전자공학에서 많이 다루는 것이 ‘증폭기’다. 이 증폭기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아마츄어’라는 단어는 프로의 반대 개념이라기 보다는 생생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담겨있다. 그래서 생생한 날 것의 느낌을 증폭시킨다는 의미로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Q. ‘아마츄어증폭기를 위한 아마츄어증폭기’로도 활동했다. 독특한 콘셉트인데.

2008년에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개인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아마츄어증폭기 활동을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마츄어증폭기를 잊지 못해 공연을 요청하더라. 이제 아마츄어증폭기는 없으니 ‘아마츄어증폭기를 위한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커버 혹은 오마주했다고 할 수 있다.

Q.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만 보고 사람들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야마가타’는 일본의 지명이다. 야마가타 현이라고 있는데, 이곳에서 열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유명하다. 1995년 변영주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낮은 목소리’라는 영화로 이 곳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이름이 좋은 이미지로 남았던 것 같다. ‘트윅스터(tweakster)’라는 말은 실제로 있는 단어는 아니다. 임의로 떠올린 것인데, 이 단어를 발음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가 ‘한 남자가 몸을 배배 꼬면서 춤추는’ 모습이었다. 이 두 단어를 함께 발음했을 때 느낌이 참 좋았다.

Q. ‘한받’이라는 이름도 남다르다.

‘한받’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전을 떠올리더라. 그런데 대전을 뜻하는 한밭은 티읕(ㅌ)받침이다. 사람들이 이를 헷갈려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거나 한 번 더 관심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한받 역시 이름을 발음했을 때 느낌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작명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께서 보시던 <성명 파동학>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발음의 파동이 에너지가 돼서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는 논지의 책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보고 ‘이름을 잘 지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 지난 4월 28일 KT스카이라이프노조 기자회견에서 연대공연 중 ‘이단옆차기’를 부르며 춤추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투데이신문

음악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 

Q.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향인 대구에서 대학교까지 다녔다. 그래서 서울 홍대 앞 인디 문화를 선망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기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대학 졸업 때까지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대학을 10년만에 졸업하고 취직을 위해 상경했다. 그 때 클럽 ‘빵’이라는 곳에 오디션을 보고 통과해 정식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Q. 음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뭉클해지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들을 때 짜릿한 것들이 있었다. 나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 같기도 하다. 내가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큰 힘이 됐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미약하지만 내 음악을 가지고 현장에 가서 자신 있게 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음악에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Q. 곡을 만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현장연대를 위한 곡이 아니면 주로 일상생활에서 얻기도 한다. 내 노래 중 ‘미세먼지가’라는 곡이 그렇다. 지금은 안하고 있지만 2~3년 정도 ‘구루부 구루마’라고 홍대 앞에서 리어카를 끌며 음반을 판매하고 알리는 활동을 했었다. 이후 폐가 많이 상해서 원인을 생각해보니 몇 년 사이 심해진 미세먼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나더라. 그래서 미세먼지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 경각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은 퍼포먼스 할 때도 많이 쓰인다. 또 사람들과 길거리를 행진하면서 만들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미세먼지 내가 뭔지
  하염없이 바라봤지

  미세먼지 내가 뭔지
  하염없이 생각해봤지

  미세먼지가 하늘위로 날려날려
  미세먼지가 구름위로 밀려오네

  미세먼지에 나의 몸과 마음까지
  미세먼지에 흠뻑흠뻑 젖어간다

  밀려드는 미세먼지
  그 속에서 추는 춤은

  누군가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가는걸까

금자탑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아니아니아니에요  
나는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금은보화 나와라 뚝딱  
녹음 짙은 숲 속을 둘이 같이 걸어요  

 

 

Q. 아마츄어증폭기의 가사에 우울한 유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금자탑’이나 ‘극좌표’ 같은 곡.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아, 내가 그런 정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울하지만 유머러스한’ 정서.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비슷한 정서에 공감대를 느끼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Q. 아마츄어증폭기를 접고 야마가타 트윅스터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편집조교로 일했다. 학교에서 매킨토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개러지 밴드(Garage band)’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으로 댄스음악, 춤추기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 마침 친분이 있는 한예종 학생들이 파티를 기획할 때 나에게 DJ로 참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처음으로 야마가타 트윅스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아마츄어증폭기가 메인 활동이었다. 그러다 2008년 아마츄어증폭기를 은퇴하고 나서도 계속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런데 아마츄어증폭기로서는 새 노래도 안 나오고 해서 ‘이럴 바에야 야마가타 트위스터를 제대로 한 번 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이걸로 계속 활동할 수 있겠구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Q. 아마츄어증폭기와 야마가타 트윅스터 음악의 차이는.

아마츄어증폭기는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포크 음악이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비트에 맞춰서 춤추는 흥겨운 전자음악이다. EDM 같은 댄스음악 장르다. 조금 더 세세하게 들어가보면 ‘어떤 메시지를 노래하는가’의 차이다. 개인의 일상으로부터 노래가 나오느냐 아니면 사건의 현장으로부터 노래가 나오느냐 하는 큰 차이가 있다.

Q.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를 어릴 때 많이 좋아했는데 그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너바나(Nirvana)와 같은 그런지, 얼터너티브 락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또 일본 피쉬만즈(Fishmans)라는 밴드의 영향도 받았다.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골목길’의 이재민,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강병철과 삼태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분들이 진정한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다.

   
▲ 지난 4월 28일 KT스카이라이프노조 기자회견에서 연대공연중 '돈만 아는 저질'을 부르며 춤추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투데이신문

연대 공연, ‘두리반 투쟁’ 승리 경험 나누는 의미 

Q. 현장 연대 공연을 시작한 계기는.

기륭전자 불법파견 투쟁현장에 연대한 적이 있다. 당시는 아마츄어증폭기와 야마가타 트윅스터 두 가지 모두 활동했다. 그런데 반응이 싸늘했다. 단식 현장에서 춤을 췄으니 그럴만 하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다 ‘두리반’ 철거 현장에 연대하게 됐다. 홍대입구역 경의선역 및 공항철도역 건설로 그 근처에 있던 칼국수집 두리반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분쟁이었는데 두리반이 결국 유사한 상권에서 장사할 수 있게 돼 승리한 싸움으로 끝났다. 사실 승리를 기대하지 못했던 싸움이었다.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싸워왔던 곳이다. 그런데 결국 이기는 것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 그 이후로 두리반의 기운 때문인지 많은 곳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뼈아픈 패배의 현장도 있었지만. 두리반에서 했던 승리의 경험이 그 뒤로 활동하는데 큰 기반이 됐다.

Q. 음악으로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음악으로 그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힘을 주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흥겨움, 재미와 현장에서 느끼기 힘든 즐거움의 요소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두리반에서 승리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투쟁현장에 가서 나눠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대 현장은.

포이동(개포4동 1266번지. ‘재건마을’로도 불린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포이동은 79년 ‘자활근로대’ 분들이 강제이주 당한 곳이다. 그런데 88년 강남구가 갑자기 포이동을 도서관부지로 변경하면서 주민들이 ‘불법점유자’가 됐다. 강남구에서는 강제철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민분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셨는데 그때 연대공연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포이동에 계신 분들이 당시 집회에서 했던 공연, 퍼포먼스들을 기억해주신다. 그게 그분들께 알게 모르게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Q. 연대공연을 할 때 해당 연대현장을 위한 노래를 꼭 들고 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것을 중점에 두고 곡을 만드는지.

현장을 위한 노래를 들고 가는 것은 내 나름의 철칙이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음악가를 불렀을 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단 그 현장의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힘이 돼주는 것, 또 현장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현장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의 상황, 사람들을 노래에 담아낸다. 여력이 안 되면 기존의 곡을 개사해서라도 현장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

‘KT스카이라이프 해고임박 노동자를 위한 노래’라고 KT스카이라이프 집회 현장에서 부른 곡이 있다. 가사가 “진짜 사장 나와 우리 절규 들어라 쪼갬 계약 하지마 고용승계 허락해 우리 직접 고용해 우리들 더 이상 자본의 노예 아니야 참고만 있지 않을게 자본의 개 아니야 노동의 축제로 거듭날게 끝까지 맞서 싸울게‘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외치는 메시지들이 잘 녹아들도록,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한다.

반복되는 가사도 많다. 가사가 너무 길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듣는 사람도 헷갈린다. 그래서 단순 명확한 메시지가 인식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만든다. 나도 노래가 많다보니 헷갈린다. 그래서 짧게 만들어서 부르기 쉽도록 한다(웃음).

Q. 거리의 공연과 클럽 등의 공연은 어떻게 다른지.

거리공연이라는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너무 좋다. 클럽공연은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 앞에서만 하기 때문에 짜여진 것에 맞춰서 하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거리공연은 훨씬 더 자유롭고, 거리의 모든 것들이 나의 무대가 될 수 있다. 아마츄어증폭기의 맥락과 연결된다고 보면 되겠다. 거리의 모든 날 것들이 퍼포먼스 요소로 수용될 수 있다.

   
▲ 지난해 7월 16일 서울 마포구 탈영역 우체국 앞에서 공연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사진 제공 = 오쟁>

권력과 자본때문에 쫓겨나는 사람들에게 힘 주고파 

Q. 퍼포먼스도 상당히 특이하다. 공연 중 사람들을 끌고 밖으로 나가거나 짜파게티를 끓이는 등 재미있는 퍼포먼스가 많은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걸 실현해 보는 것이다. 두리반에서 짜파게티를 끓이는 퍼포먼스가 그 중 하나다. 짜파게티는 70~80년대생들을 아련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라는 카피가 ‘아빠’와 매치된다. 요리를 못하는 아빠가 요리해준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 당시 두리반에 있던 원래 집기들이 모두 철거되고 버너 하나 두고 거기에 냄비를 올려 가끔 국 끓여먹고 했었다. 그래서 버너와 냄비를 가지고 짧은 시간에 같이 나눌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아 짜파게티를 끓이면 노래 길이하고 맞게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해서 퍼포먼스를 했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공연 도중 버스에 올라타 한 정거장을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계속 ‘돈만 아는 저질’을 부른 적도 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따라 올라타 함께 불렀다.

Q. 현장에서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등 퍼포먼스를 할 때 반응은 어떤지.

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쫓겨나면 함께 소리도 지르고 항의하기도 한다. 제지를 당해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 힘을 얻는다. 물론 집회 반대 측의 사람들은 안 좋게 본다. 하지만 이를 너무 신경 쓰면 퍼포먼스가 안 된다. 일단은 내가 연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다.

Q. 복장도 상당히 독특하다. 퍼포먼스를 위해 구입하는 옷인지.

그렇다. 개인 취향일 수도 있는데 원색이나 화려한 패턴의 의상을 입으면 힘이 난다. ‘신종 각설이’, ‘21세기 전자 품바’, ‘디지털 박수무당’이라는 얘기도 들어봤다.

Q. 허리를 튕기는 등의 퍼포먼스가 선정적이라는 평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관객의 연령층을 생각해 퍼포먼스를 구성하기도 하고, 연대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많다거나, 여성분들이 불쾌해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시면 조절하기도 한다.

Q.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단옆차기’ 가사도 그렇지만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일터에서, 삶터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사회적 약자에게 더 힘을 줘야 하지 않나. 약자의 편에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싶다. 약자들에게 계속 관심을 주고 도움을 실천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한때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후회없어 

Q.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다고.

사실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삶을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흘러왔지만 그 당시의 꿈도 막연하게 좋아서 떠올렸던 것 아닌가 싶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엔지니어나 선생님 같은 평범한 꿈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 전에 통지서를 받으러 학교 강당으로 모이라고 해서 엄마와 가서 기다리는데, 한 선배가 무대 계단을 뛰어올라가더니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조정현의 ‘그대 생각 뿐’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입학 하면 저렇게 음악 틀어주는데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뀐 것 같다. 그렇게 방송반에 들어갔고, 영상에 관심이 생겨 장래희망을 영화감독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Q. 영화에 대해 열정이 많았는데 영화를 접게 된 이유는.

독립영화제에 출품을 하기도 하고 대구에서 동호회를 만들어 영상제를 열기도 했다. 20대 초반,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내가 영화를 찍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고 존경할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찍었더니 어설프고 부족함이 많았다. 내 자신에게 기대가 컸던 것 같다. 5년간 후회없이 열심히 하다가 25살에 영화를 접었다.

Q.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어릴 때 프랑스 누벨바그의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같은 감독을 많이 좋아했다. 그 영향을 받아 내가 영화를 찍으면 다들 실험영화라며 어렵다고 했다. 현대 영화는 대부분 상업영화다. 그런 영화를 찍고 싶진 않았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나 아마츄어증폭기와도 상통되는 지점인데,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삶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을 찍고 싶었다.

   
▲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문화예술인 지원 확대 위해 적폐 청산해야 

Q. 박근혜 정권에서는 블랙리스트 등 문화예술계에 여러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봤는지.

나는 블랙리스트에 없더라. 너무 안 알려져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좌파라 그런지(웃음). 그래서 ‘그냥 이대로 쭉 활동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Q.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예술인을 위한 정책을 공약했는데.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직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나 검열에 순응했던 사람들이 자리에 많다. 그 분들이 알아서 내려오시면 좋을 텐데. 이런 적폐가 확실히 청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어떤 단체인가.

말 그대로 음악가들이 자본에 기대지 않고 자립하면서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구축하기 위해 음악가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협동조합 성격의 단체다. ‘51+’라는 축제를 기획해 매년 5월 1일 축제를 연다. 또 자체적으로 충무로에 공연 공간도 가지고 있어 공연을 기획해서 공연도 하고, 조합에 가입한 음악가들이 음반을 만들 때 제작비를 대출해준다던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도 한다. 음악을 전혀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 수 있게끔 도와주는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무엇보다 현장을 기반으로 결성됐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Q. 인디 뮤지션으로 살아가는데 고충이 있다면.

일단 클럽 운영자들 대부분이 임차인인데 최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들이 쫓겨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클럽이나 공연장은 뮤지션들의 활동 기반인데 갈수록 사라져 뮤지션들에게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닥치고 있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뮤지션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중매체에 관심과 자본이 쏠린다. 티비에 한 번 나와야 몸값이 올라간다. 활동을 계속 하고 있어도 티비에 나오지 않으면 뮤지션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자립음악생산조합, 뮤지션유니온 같은 단체들이 거대한 유통,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뮤지션과 클럽 등이 함께하는 로컬 음악 신(scene)이 존속하면서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홍대 앞에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

Q. 연대현장 외에 다른 활동영역이 있다면.

처음 시작이 홍대 앞이었으니까 이곳 클럽에서 가끔 공연을 한다. 그리고 자립음악생산조합이나 미디액트, 마을미디어 등 미디어센터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의 원주미디어센터에서 청소년 문화학교 수업을 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어떻게 만드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나누는 활동을 한다.

2016 애국가(哀國歌)

4대강과 아파트 산이 마르고 닳도록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건물주 보우하사

땅 투기 삼천리 콘크리트 강산
대한 사람 착취당하는 우리나라 만세

대한사람 착취당하는
대한사람 착취당하는
애국가 애국가

애처로운 대한사람아
애국가 애국가

   
▲ 지난 5월 27일 '창원아시아미술제'에서 공연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사진 제공 = IRISNAP>

거리극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 만나고파 

Q. 실험해보고 싶은 음악 장르가 있다면.

이미 하고 있긴 한데, 그동안 서울로에서 만리동 주민의 이야기를 극 형식으로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만나는 ‘만리동 미싱유’라는 거리공연을 했다. 나는 이것을 ‘길거리 저질 오페라’라고 이름 붙였다. 이를 시작으로 거리극 형식의 공연을 통해 더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시민들을 만나는 방식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오페라단의 이름도 뉴 서울 프로퍼 간디(New Seoul Proper Ghandi)라고 지었다.

Q. 앞으로 앨범 발매 계획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나는 그동안 (앨범을) 많이 냈다. 앞으로도 계속 낼 계획이다. 다만 음원사이트를 통해서는 발매하지 않을 것이다. 음원유통업체가 갑이고 수익의 대부분을 착취해가기 때문에 보이콧하고 있다.

Q. 만약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야마카타 트윅스터의 활동 영역이나 장르가 바뀌게 될까.

그렇지 않을까. 정말 좋은 상황을 노래하는, 천상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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