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높은 젠더 감수성을 갖춘 성 평등 정부’를 공언한 문재인 대통령이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인사를 발탁해 난항을 겪고 있다.

문 대통령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저서 <남자란 무엇인가>에서 여성비하 발언들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악의적 편집’이라는 반론도 나왔으나 여성의 동의를 받지 않고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 평등 인사 문제는 안 전 위원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발탁한 의전비서관실 탁현민 선임행정관이 2007년 저술한 <남자마음 설명서>와 같은 해 3명의 저자와 함께 공동저자로 참여한 대담집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 여성비하 표현을 해 문제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둘이 친군데 당신이 먼저 첫 경험을 했어. 와서 자랑할 거 아냐? ‘나 오늘 누구랑 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내가 그 여자애에게 가서 ‘왜 나랑은 안 해주는 거냐?’고 하면, 그렇게 해서 첫 경험이 또 이뤄지는거지”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짓을 해도 별 상관없었어. 얼굴이 좀 아니어도 신경 안 썼지. 그 애는 단지 섹스의 대상이니까”

대담집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중 탁 행정관의 발언 내용

위에 인용한 내용 외에도 탁 행정관은 이 책에서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본인과 성관계를 맺은 여성을 친구와 ‘공유’했다고 표현했다. 해당 여성은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남성들이 중학교 3학년 여성에게 “왜 나랑은 안 해주느냐”고 압박해 첫 경험을 했다고 자랑하면서 이를 마치 무용담처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저질’스러운 것이다.

이를 ‘어린 시절의 잘못’이라고 두둔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가 해당 책을 출판했을 당시는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다.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된 성인이 여성을 성욕 해소 도구로 공유했다고 당당히 말한 것은 그의 젠더 인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야당은 일제히 탁 행정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은 일제히 “성 평등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가치에 반하는 자격 미달 인사”라며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여당 의원까지 탁 행정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탁 행정관의 발언이 도를 지나친 것은 맞는 것 같다”며 “탁 행정관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청와대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온라인에서도 ‘#그래서_탁현민은’이라는 해시태그가 생겨날 정도로 탁 행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탁 행정관이 물러나지 않는 것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태도다. 이들은 ‘일개 행정관’에 대해 공격하는 것이 지나치다며 두둔하고 있다.

과연 그를 ‘일개 행정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청와대 대통령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뉴딘콘텐츠 김효겸 대표이사는 2013년 발간한 그의 책 <대통령 의전의 세계>에서 “의전비서관실에서는 실제로 청와대의 ‘총체적 행동양식의 기획 및 집행’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탁 행정관은 대통령의 메시지와 이미지 관리, 홍보기획 등을 총괄한다고 볼 수 있다.

성 평등 정부에서 이런 중요한 자리에 젠더 의식이 부족한 사람을 발탁하면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룰 수 있을까. 탁 행정관이 계속 자리를 유지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성 평등’이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더 나아가 탁 행정관에 대한 비판을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위한 ‘보수 우파의 계략’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보수 정권이 ‘종북세력’ 운운하며 비판할 수 없도록 입을 막았던 것과 같은 모양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돼지발정제’ 사건은 ‘종북 세력의 계략’이었는가. 비판한 사람이 보수 우파든 진보 좌파든 타당한 비판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탁 행정관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요구해야한다.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성 평등 정부를 만들겠다는데 이토록 젠더 감수성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관리한다면 실패할 것은 뻔한 일 아닌가.

인사 실수를 인정하고 ‘인사 5대 원칙’에 성 평등 의식을 포함해 엄격한 인사를 하는 것이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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