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권력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속담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의 냉정함을 표현하는 말로도 읽혀진다. 사회에서 냉정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정치권은 특히 더 냉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 과해지면 음해와 모함, 무고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서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음해, 모함, 무고를 해서 상대방의 목숨을 뺏는 일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묘사화(己卯士禍)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년) 남곤·홍경주 등의 훈구파가 왕이었던 중종과 연계해서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왕위에 올랐다. 김범은 그의 연구에서, 반정으로 인해 당시까지 가장 많은 104명의 정국(靖國)공신이 책봉됐고(9월 8일),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유순정(柳順汀) 등 삼대장을 중심으로 한 공신들은 중종 초반의 국정을 주도했으며, 이들 삼대장의 위세는 1509년(중종 4년) 윤9월 삼정승을 모두 장악하면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대신들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중종이 선택한 것은 젊은 사림(士林)의 다수 등용이었다. 중종은 등용된 사림들을 견제와 간언을 주로 하는 삼사(三司)에 배치해서 이상적인 국가를 완성하는 파트너로 삼았다. 이 때 등용된 사림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였다. 조광조는 3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서, 중종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빠른 승진을 한 사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김범은 그의 연구에서 중종과의 두터운 신뢰를 알 수 있는 『중종실록』의 기록 하나를 소개했다.

조광조가 말하자 중종은 얼굴빛을 가다듬으며 들었고, 서로 진정으로 간절히 논설해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다가 환관이 촛불을 들고 가자 그제야 그만 두었다. [『중종실록』 1519년(중종 14년) 7월 21일]

신하인 조광조와 날이 저문 줄 모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이 정도로 두터웠던 중종과 조광조 사이의 친분을 깨기 위해서 훈구 대신들이 선택한 이간질의 방법이 바로 모함이었고, 그 대표적인 일설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다. 경연(經筵) 자리에서 훈구 대신들은 왕에게 간언을 마다하지 않는 조광조의 위험성을 알렸고,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파들은 후궁인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통해 중종에게 조광조를 모함하는 한편, 궁중 나인을 시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 走와 肖를 합하면 趙가 되므로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씨를 유포시켰다. 나뭇잎에 꿀(과일즙이라는 설도 있다.)로 “주초위왕”이라고 써서 벌레가 그 모양대로 갉아먹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추가되는 것이 바로 중종의 냉정한 결단이었다. 이상적인 정치를 추진하고자 조광조와 사림 세력을 등용했다. 그러나 중종 스스로가 반정에 의해 등위한 왕이며, 중종 스스로에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그들을 반대하는 훈구 대신 모두가 왕권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광조와 사림의 힘이 비대해지는 것을 보고, 중종은 훈구 대신들의 모함을 받아들여 결국 조광조와 사림 세력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후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훈구 대신들은 각종 권력 다툼 끝에 인종 때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그 정치적 힘을 잃었고, 사림들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잡게 된다. 그리고 조광조는 사림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인해 선조 초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어 영의정에 추증(追贈.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사후 벼슬을 주는 것.)됐다. 권력의 비정함으로 인한 음해, 모함, 무고는 어떤 형태로던지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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