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위조나 조작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소년의 이야기다. 17살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 간도 크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위작했다.

아일랜드가 태어난 건 18세기 말이었다. 책 만드는 장인이자 셰익스피어 수집가였던 아버지에게 셰익스피어의 서명을 위조해 만든 임대계약서를 보여준 게 모든 사건의 시초였다. 기뻐하는 아버지를 본 뒤 위조는 계속 됐다. 아일랜드의 나이에선 어느 백작의 후원에 감사하는 셰익스피어의 편지 정도가 적당했다. 그러나 옛 글씨체를 흉내 내서 ‘햄릿’과 ‘리어왕’의 원고 일부를 위작한 건 장난의 선을 넘긴 일이었다. 전문가들이 진품이라며 반겼다.

아일랜드는 아예 새로운 희곡을 쓰기로 작정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그는, 이 대문호의 희곡을 하나 골라서 전체 행수가 똑같은 새 희곡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보티건과 로웨나’였다. 아버지 서재의 벽난로 위에 로웨나가 보티건에게 술잔을 바치는 그림이 걸려있는 걸 보고 영감을 떠올린 작품이었다.

전문 위작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는 차츰 여러 사람들의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희곡을 사들인 극작가는 작품의 질에 갸우뚱 했고, 연극의 주연을 맡은 배우는 아예 가짜라고 확신했다. 결국 공연 첫 날 배우가 무대 위에서 ‘이 엄숙한 바보짓은 언제 끝나나’라는 독백을 하자 찜찜한 연극을 보던 관객들도 폭소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날 아일랜드가 해왔던 몇 년간의 연극도 함께 막을 내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 아일랜드가 아니다. 당대의 전문가들이다. 셰익스피어의 감사편지에 적힌 가짜 서명은 진짜와 대조하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달랐다. 그러나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햄릿과 리어왕 위작 원고를 보고 신에게 감사해 하던 전기작가도 있었다. ‘보티건과 로웨나’를 산 극작가는 ‘마치 셰익스피어가 어렸을 때의 작품 같다’고 혹평하면서도 원고지가 낡은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어버렸다.

사람은 종종 믿어야 할 것을 믿기 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이길 바라는 것을 믿는다. 발견된 적 없는 위대한 작품이 눈앞에 번쩍 나타나길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아일랜드의 사기극은 차라리 진짜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문재인 후보의 아들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았던 증언이 실은 조작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고, 그래서 사실이길 바랐고, 그러므로 사실이어야만 했던 결과가 증언 조작이다. 국민의당이 내놓은 변처럼 캠프의 검증 실수일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상대 후보에게 흠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가 이성적으로 제어됐다면 이번 사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국민의당 대선캠프는 기대가 현실이 될 것 같은 기회 앞에서 정치가 가야 할 목표를 잊었던 듯 보인다.

어쩌면 피의자 이유미씨 개인에겐 증언 조작이 공명심이나 권력을 향한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줄 기회로 비쳤을 수 있다. 이는 이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선 기간 동안 유독 국민의당에서 유사한 일이 잦았다. 국민의 당은 안철수 후보의 이희호 여사 방문 녹취나 권양숙 여사 친척 특채 주장 등으로 몇차례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어떤 기회가 오면 거기에 거는 기대만큼 위악적인 사건들이 터졌다. 결국 선거법 위반 범죄까지 터졌다.

‘발가락이 닮았다’로 유명한 소설가 김동인은 ‘광염 소나타’라는 단편 소설을 썼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환경의 주인공은 성정이 거칠었다. 그는 어느 날 방화를 하여 악상을 떠올리고 비범한 작품을 만든다. 이어 방화로는 곡이 만들어지지 않자 죽은 시체를 참혹하게 훼손시켜 곡을 만든다. 그리고 나아가 사람을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지나치지 못하다가 결국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설에선 내용을 풀어가는 두 사람이 나온다. 어떤 기회가 사람의 재능과 범죄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낸다면, 그 기회를 저주해야 하는가 혹은 축복해야 하는가를 이야기 나눈다. 그 대화의 시작이자, 소설의 첫번째 대사는 이렇다.

“기회라는 것이 사람을 망하게도 흥하게도 하는 것을 아시오?”

본인을 위해 뛰던 캠프의 일이란 점에서, 안철수 전 후보에게 지난 대선은 어떤 기대를 품은 어떤 기회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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