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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인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기”[인터뷰]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전소영 기자  |  js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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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1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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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동생 故 박래전 열사 죽음 계기로 인권활동 시작
30여년간 우리 사회 여러 인권문제에 발 벗고 나서

‘인권’, 모든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수용돼야
과거에 비해 국내 인권 상황 향상됐다 볼 수 없어

문재인 정부, 국민 믿고 인권개혁 이뤄내야
인권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됐으면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가 하나 있다. 개인 혹은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 ‘인권(人權)’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해서’, ‘권력이 없어서’, ‘소수자라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헌법으로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국민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되레 국민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 외면하는 가해자가 됐다.

그렇게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잃고, 용산참사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던 노동자들을 잃고, 세월호참사로 소중한 아이들을 잃었다.

‘언젠가는 바뀌겠지’라고 국가를 굳게 믿고 기다려준 국민들의 신뢰는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로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나섰다.

그 중심에는 인권활동가 박래군(56)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있었다.

박 소장은 1988년 6월 광주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한 동생 박래전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94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활동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천막농성, 노숙농성, 단식농성, 집회,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국가 폭력에 맞서 싸웠다. 2004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을 설립해 다른 인권활동가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평생 가까이 인권운동을 하며 살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박 소장. <투데이신문>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박 소장을 만나 우리나라 인권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은 굉장히 폭넓은 개념이다. 때문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인권이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다. 모든 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가치로 존중되고 수용돼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다.

Q. 언제부터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졌나.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인권의식이라는 게 별게 아니었다. 폭압적인 정권에 당하지 않는 것, 강제로 끌려가 고문당하지 않는 것, 이런 게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었다. 굉장히 낮은 수준의 인권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 참가하면서 비로소 인권에 대한 의식을 제대로 확립하게 됐다. 국내에서 알던 (좁은 의미의) 인권과는 매우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Q. 현재 국내 인권 상황을 평가하자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향상됐나.

과거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기라고 하는 노태우 정권까지와 비교하자면 상당히 향상됐다. 특히 표현의 자유 자체가 봉쇄됐던 과거에 비해서는 시민 정치적 권리 부분이 많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 이후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졌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권은 굉장히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 측면만 가지고 인권이 좋아졌다 혹은 나빠졌다고 평가할 수 없다.

Q.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동생이 분신 사망했다(박래군 소장의 동생인 박래전 열사는 1988년 6월 4일에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 파쇼 타도하자,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를 외치고 분신자살한 민주화운동가다). 그 뒤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에서 의문사진상규명 농성을 지원하면서 인권운동에 발을 딛게 됐다.

Q. 1994년 유가협을 나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인권운동사랑방은 어떤 곳인가.

유가협에서 나온 후 고문피해자 지원사업을 하다가 1994년 8월부터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본격적으로 인권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993년 3월에 창립한 인권단체다. 이전까지는 양심수, 정치범 등 굉장히 좁은 범위의 인권문제를 다뤘다면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국가 폭력 전체의 문제로 확장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한국의 인권운동사(史)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90년대에 새로운 인권운동의 흐름을 선도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2004년 인권운동사랑방을 나와 인권재단 ‘사람’을 설립했다. 이유가 뭔가.

(당시 국내는) 인권단체들이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인권단체의 규모도 작고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인권활동가들이 계속 일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인권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게 바로 인권재단 사람이다.

Q. ‘사람’은 어떤 단체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바란다.

재단에서 돈을 모아 직접 활동하기보다는 인권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와 활동가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비용을 만들어 단체들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활동가들을 돌보고 있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Q.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운영되는 민간인권센터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우려되는데.

전통적으로 인권운동은 국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면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질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 경제적으로는 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만약 해당 기업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가급적이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만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가로부터, 기업으로부터 재정적 독립을 하는 것은 인권문제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노제ⓒ뉴시스

이명박 정부 : 공권력 남용·국가 폭력이 낳은 ‘용산참사’

Q.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나.

우리 사회는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들의 주도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특히 상가 세입자의 경우에는 사업 초기 엄청난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투자비용이 발생하는데 재개발 상황이 닥치면 이런 부분은 보상에서 제외되고 3개월 치 영업손실만 보장해준다. 3개월 치 영업손실도 영수증으로 입증해야만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이다. 재개발하는 쪽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개발법이 만들어져있다. 게다가 폭력적인 용역의 개입과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 때문에 내몰리는 것은 항상 철거민이다. 그러다보니 철거민들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고 결국 마지막에는 망루농성을 벌이는 것이다. 자기 방어를 위한 극단적 투쟁이다. 용산참사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럽게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철거 용역들이 투입돼 세입자들은 쫓겨날 상황에 몰렸다. 하지만 조합은 세입자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결국 세입자들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망루를 짓고 올라간 것이다.

Q. 당시 경찰의 살인 진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는데.

망루 농성자들은 용역이나 경찰이 쳐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를 위해 화염병 등 인화성 물품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 경찰도 과거의 진압 경험으로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화기가 소진됐는지 확인하고 화학 안전장비를 동원해 인내 진압을 벌이도록 매뉴얼화돼있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모두 무시하고 망루농성 하루 만에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해 화재가 일어난 것이다. 이는 분명 공권력이 국민을 학살한 것이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국민이 설령 법을 위반하고 불법농성을 벌일지라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국가에 없다. 더군다나 이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축소수사, 은폐수사, 꿰 맞추기 수사 논란이 지속됐다. 용산참사는 종합적인 국가 폭력이자 국가범죄라고 생각한다.

Q. 고(故) 백남기 농민도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 이후 경찰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이철성 경찰청장이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 선언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2004년 허준영 전 경찰청장도 인권경찰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쯤 여의도에서 농민시위가 벌어졌을 때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했다.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넘겨받고 싶은 속셈으로 인권경찰을 들먹이고 있다. 경찰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하는 서비스 기관이다. 이제까지의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 ‘세월호 진상규명 조기강제종료 시키려는 박근혜정부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 ⓒ뉴시스

박근혜 정부 : 무책임한 국가가 낳은 인재(人災) ‘세월호참사’

Q.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로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회운동 세력이 전국적으로 대책위를 구성해 활동한 것은 세월호참사가 처음이었다던데.

세월호가 침몰했고 탑승객 전원이 구조됐다는 뉴스를 봤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2시간 후쯤 전원구조는 오보였다는 게 확인됐다. 참사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며 그 역할을 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구조는 이뤄지지 않고 언론의 오보는 계속됐다.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사실 사회운동세력이 재난참사 문제에 관여를 하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어 굉장히 두려웠다. 그러다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모아 임시 기구인 4.16참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 위협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해 임기 기구가 아닌 정식 시민단체인 4.16연대를 만들었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배경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충격이 컸던 것도 있지만 재난참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고 본다.

Q. 세월호참사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동의한다. IMF 이후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고 동행하는 게 어려워졌다. 경쟁 사회에서 살다보니 나 살기 바빠 다른 사람은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공감능력을 회복하게 됐다. 또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효율과 비용을 따졌다면 이제는 사람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세월호참사가 유가족과 희생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덮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밑바탕이 돼 지난해 촛불혁명도 가능했다고 본다.

Q, 세월호참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돼야 할까.

우리가 상실한 인간성과 존엄성을 새롭게 확립해가는 과정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여기서 포기하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언제 또 희생될지 모르는 과거의 위험사회로 돌아가게 된다는 공감이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것 같다. 사회운동 세력에 의해서가 아닌 국민들 스스로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성숙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세월호참사라고 생각한다.

   
▲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뉴시스

문재인 정부 : 촛불 정권에게 주어진 인권 개혁 과제

Q. 지난해 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광화문 광장에서 범국민적 촛불집회가 23차에 걸쳐 열렸다.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촛불집회는 굉장했다. 외국에서도 촛불 집회에 대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평가 기준이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외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진행됐다는 점, 추운 겨울에도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권력을 바꿔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민들이 왜 촛불을 들고 나왔나에 대해서 고민해봤으면 한다. 그동안 정부는 헌법 자체를 부정하는 비상식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단지 이에 대한 분노와 충격만으로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9년을 겪으며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정치권과 사회운동 세력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높아졌다. 국민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그 안에서 토론을 하며 판단을 내려 거리에 나섰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불신한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행동으로 보여주고 움직이고 있다.

Q. 촛불혁명을 이끈 '퇴진행동‘ 공동대표로서 감회가 남다를 듯한데.

퇴진행동은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직접 발언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은 진실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모여 행진하고 정치토론을 하는 등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이 퇴진행동을 이끌었다고 봐야 한다.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시민이 탄생했다.

Q. 정부에게 ‘100대 과제’를 남기며 퇴진행동을 해산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세월호 진상규명, 언론장악방지법, 백남기농민 특검 실시, 국정교과서 폐기, 성과 퇴출제 폐지, 사드 배치 철회 등 6대긴급현안을 제시했지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선체조사위원회 법안 통과 말고는 아무것도 추진된 바가 없었다. 이와 관련된 문제를 10개의 영역별로 나눠서 그 내용을 추려 만든 것이 100대 과제다. 퇴진행동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100대 과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퇴진행동이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퇴진행동은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임시 기구였고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목표를 이뤘으니 해산하고, 대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그들이 주체가 돼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 지는 게 맞다.

Q. '100대 과제’ 중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는.

문제들을 수평적으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꼽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던가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생존권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Q. 이명박 정부의 용산참사나 박근혜 정부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보면 잘하고 있다. 탈권위주의적이고 여러 사회 문제의 비상식적 조치를 바로잡는 등 이전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라고 생각한다. 국회(야당)의 벽을 넘어야 한다. 협상이 필요한 부분은 해야겠지만 계속해서 발목이 묶여 주저 앉아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촛불을 들고 싸웠던 국민들을 믿고 전진해야 한다. 국회가 계속해서 개혁을 방해한다면 국민들이 알아서 다시 또 싸워줄 거다. 그들의 변화 에너지, 개혁 에너지를 믿길 바란다. 아쉬운 점은 (소수자)인권에 대한 관점이다. 대선 토론 과정에서 나온 동성애 찬반론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에 실망이 컸다. 동성애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후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안 하겠다고 한 것은 실축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인권적 관점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앞으로 ‘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돼야 하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지’, ‘노동자의 파업은 당연한 권리야’ 등과 같이 인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Q. 인권이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 사회다. 집회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사회 등급제가 없고 여성이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즉, 자유와 평등이 조화롭게 보장되는 모습이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권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돕는다’는 연대 정신이 살아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주권자 의식을 갖고 정치에도 적극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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