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국정을 농단하던 대통령이 사람들의 힘으로 탄핵되었고, 탈권위적인 대통령의 모습이 지지를 받는다. 예뻐한다는 핑계로 공공연히 행해지던 교사의 성추행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자식에게 폭언을 하고, 구타를 하면 아동학대로 친권을 박탈당하는 세상이다. 또한 직장에서 상사의 폭행과 폭언이 많은 비난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위와 같은 모습만 보면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여전히 소위 “윗사람”에게 폐륜적 행위를 가하는 사람들은 비난을 받는다. 학교 안에서 기간제 교사에게 반항하고, 심지어 그 교사를 폭행한 학생들이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아직까지 부모의 유산이나 병을 이유로 부모를 폭행하는 자식은 “폐륜아”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탈권위적이었던 대통령에게 그의 학력과 탈권위적 행위를 이유로 비난과 인격 모독,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필자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다. 바로 연세대에서 일어난 폭발물 테러 사건이었다. 대략적 사건의 개요는 연세대학교의 모 교수에게 택배가 전달되었고, 그 택배 속의 텀블러(뚜껑이 있는 컵)의 뚜껑을 열자 폭발이 일어나면서 안에 있던 나사(혹은 못)들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경찰의 조사 결과 피의자는 피해자인 모 교수의 제자였다. 뉴스1의 보도에 따르면, 그 제자는 ‘자신이 작성한 논문과 관련해 김 교수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후 범행을 준비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와 피의자가 함께 게재하려고 준비했던 논문 준비 과정에서 의견 대립이 심했다고도 전해진다.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일종의 가십거리, 혹은 ‘학생이 스승에게 어찌 감히!’라는 수준에서 논쟁이 끝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것 때문인지 유독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피의자가 일으켰다고 추정되는 테러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한다. 아무리 지도교수의 꾸중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물리적 폭력으로 보복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필자는 “사제관계”를 비롯한 전통적인 권위 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존에 “당연히” 따르고 감내해야 되었던 소위 “윗사람”의 불합리한 비난과 폭력에 대한 피해자들의 저항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다 이어서 소위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제 권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기가 왔다는 판단이 들었다. 기존에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존재들에 대하여 의심하고, 이들의 행동이 “권위의 남용”인 경우가 많으며, 권위에 대한 저항이 늘어나지만 그 도가 지나쳐서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을 넘어서는 이러한 때에, 어떻게 권위를 발휘하고, 어떻게 권위를 받아들여야 할까?

그 답을 필자는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에서 찾았다. 잘 알려진 이 사자성어의 뜻은 한 마디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맹자(孟子)』의 「이루(離婁)」라는 장(章)의 하편에서 맹자가 “易地則皆然”, 즉 ‘처지가 바뀌었어도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포탈에 검색을 하면 「이루」장 상편에 나온다는 결과가 많은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전후 사정을 보면, 맹자가 치수로 유명했던 우(禹)와 농업과 토지의 신인 후직(后稷)이 그 지위에 있으면서 태평성대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을 세 번이나 그냥 지나친 것과 공자(孔子)의 제자 안회(顔回)가 난세에 살면서 극도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안빈낙도의 자세로 살았던 것을 칭찬하면서 “이들의 처지가 바뀌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이어서

우 임금은 천하에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못해서 그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가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이처럼 (백성 구제를) 급하게 여겼다.

고 말하면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 자세라는 뜻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권력을 가지고 권위를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권력이 없었던 시기를 보냈던 사람이다. 즉 권력이 없는 사람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 상대가 되는 존재들은 그러한 권위를 가져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느끼는 책임감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 그야말로 권위를 가진 사람과 그 상대가 되는 사람 모두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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