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욱 변호사

최강욱이 최근에 펴낸 『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진화』의 앞부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변호사로 일하며 ‘총리실 불법사찰 사건’을 통해 권력과 검찰의 결탁을 끊어 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진화』, 저자 소개 중>

한 명의 변호사가 거대권력인 검찰에 맞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 하고 있다.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최강욱은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스스로 ‘허접한 변호사’라 하고 있지만, 이 사람의 말과 글,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겸양’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최강욱의 직업은 변호사다. 따라서 ‘법’에 해박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고, 이 외에 정치와 역사 방면에도 넓고도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부조리를 대할 때의 최강욱의 모습은 흡사 전투를 앞둔 장수처럼 용감하고 거침이 없는데,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쌓인 지식과 현장 경험을 토대로 바른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사람을 대할 때는 무척 온화하고 겸손하다.

이처럼 맹수 같은 용맹과 풀 같은 겸손함을 겸비한 『삼국지』의 등장인물이 있다. 오나라 손권의 참모이자, 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감택(闞澤, ? - 243)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다. 소설에서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의 진영으로 가서 조조를 속이고,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를 침공했을 때 명 참모 육손을 추천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용감성과 결단력이 돋보인다. 반면 정사에서는 박학다식하여 학자들과 손권이 감택에게 학문과 나랏일을 자문하였고, 태자태부(太子太傅, 황태자의 스승) 벼슬을 한 전형적인 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소설과 정사를 합해 보면 최강욱과 무척 닮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 감택(闞澤, ? - 243)

조조를 낚은 어부

208년, 형주지역을 차지한 조조는 내친 김에 인접 지역의 손권까지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시작된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고 유비의 세력과 연합하여 전쟁 준비를 했다. 이 때 손권 진영의 명장 황개는 주유와 짜고 조조의 첩자들이 보는 앞에서 주유한테 대들다가 죽도록 얻어맞는다. 모두를 속이고는 조조에게 거짓으로 항복을 할 심산이었다. 황개는 조조에게 자신의 거짓 항복 편지를 전할 사람으로 감택을 선택했다. 감택이 말했다.

“대장부가 한 번 세상에 태어나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초목과 함께 썩어갈 뿐이지요. 장군께서 이처럼 몸을 돌보지 않으시는데 제 어찌 작은 목숨 하나를 아끼겠습니까!”

감택은 어부로 변장하고는 작은 배를 타고 조조의 진영으로 노를 저어 간다. 한참을 가니 저 앞에 조조의 진영이 보인다. 보초를 서던 군사는 감택을 잡은 뒤에 조조한테 보고했다. 조조는 높은 자리에 앉아 감택을 내려다보면서 묻는다.

“네가 손권의 참모라면서? 이곳엔 왜 왔느냐?”

감택은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크게 혼잣말을 한다.

“조조 승상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현명한 인재를 찾는다고 하더니 지금 보니 다 헛소문이구나! 황개가 틀렸어!”

조조가 대답한다.

“나는 지금 너희와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적군의 참모가 여기 왔으니 물어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황개는 손씨를 삼대 째 섬기고 있는 사람인데, 이번에 주유한테 이유 없이 매를 맞아 분함을 못 이겨 조조 승상께 항복하여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황개와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므로 몰래 와서 황개의 밀서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승상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조조는 감택이 건네 준 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다가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감택을 노려본다.

“네 이놈! 고육지계를 쓴 뒤에 너를 시켜 거짓으로 항복하는 편지를 보냈구나! 네 놈이 어디서 감히 나를 희롱하려 드느냐! 여봐라! 저놈을 끌고 나가 목을 베어라!”

역시 꾀돌이 조조답다. 이런 계책에 속을 사람이 아니다. 이제 감택은 죽게 생겼다. 그런데 감택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도리어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하하하!”

“내 벌써 네 놈들의 흉계를 다 알고 있는데 어째서 웃고 있느냐!”

“당신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황개가 사람 잘못 본 걸 웃는 것이오.”

“나는 병법서를 많이 읽어서 속임수를 잘 알고 있다. 네 놈이 남은 속여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래요? 그럼 병법서에 어떤 것을 ‘간계’라고 합디까?”

“네놈들이 진짜 항복을 하려고 했다면 언제 항복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하하! 어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라! 만약 이대로 싸운다면 주유한테 사로잡히고 말 거다! 무슨 병법서를 읽었다고 자랑을 하느냐! 배운 것도 없는 놈이로구나. 너 같은 놈한테 죽는 내가 아까울 지경이다!”

“뭐라? 네 어찌 감히 나한테 배운 것도 없는 놈이라고 하느냐!”

“만약 약속을 했다 치다. 한 쪽에서 급히 손을 쓰지 못하는 일이 생겼는데 저 쪽에선 약속대로 나선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일은 형편을 봐 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나를 죽이려 하니, 참으로 배운 것도 없는 놈이로구나!”

천하의 조조가 감택에게 속고 말았다. 이후 황개는 항복하러 가는 척 하면서, 생선기름을 먹인 섶을 잔뜩 실은 스무 척의 배에 불을 지르고 배를 놓아 버렸다. 삽시간에 조조진영은 불바다가 됐다. 조조는 이 적벽대전에서 패한 이후 한동안 장강(長江) 이남 지역을 넘보지 못했다.

● 위기에서 빛을 발한 소신

이와 같은 기개가 있으니 결단력과 추진력 또한 강할 수밖에 없다. 소설 『삼국지』의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이릉전투’에서 감택의 결단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221년, 유비는 손권의 손에 죽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군을 일으켜 오(吳)나라를 침공했다. 유비는 연전연승했고, 손권의 장수들은 패전을 거듭했다. 이듬해에 손권은 유비에게 화친을 제의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감택이 나선다.

“우리나라에 하늘을 떠 받들만한 인재가 있는데, 왜 쓰지 않으십니까?”

손권이 대답한다.

“그게 누구란 말입니까?”

“주유가 죽은 뒤에 노숙이 뒤를 이었고, 노숙이 죽자 여몽이 큰일을 대신했습니다. 여몽이 죽은 지금, 육손이 뒷일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육손은 서생이지만 가슴 속에 큰 지략을 품고 있습니다. 주유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육손을 기용한다면 반드시 적을 격파할 것입니다. 만약 육손이 실패한다면 저도 함께 벌을 받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손권의 참모들은 대번에 반대를 한다.

“육손은 일개 서생에 불과합니다. 유비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크게 쓰면 안 됩니다.”

“육손은 나이도 어리고, 명망도 부족합니다. 장수들이 복종하지 않을 겁니다.”

“육손은 한 고을을 다스릴 그릇입니다. 큰일을 맡기기에 부족한 사람입니다.”

감택이 누군가. 조조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쟁쟁한 참모들이 다들 반대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좌중을 돌아보며 크게 소리친다.

“만약 육손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끝장날 겁니다. 제 가족의 이름으로 육손을 보증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손권은 여러 참모의 말을 듣지 않고 감택의 손을 들어주었다.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아 전군을 통솔하게 했다. 육손은 감택과 손권의 기대에 부응했다. 유비 군대를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으며, 이 싸움에서 패한 유비는 결국 퇴각하는 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감택은 이렇게 ‘적벽대전’과 ‘이릉전투’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

이처럼 감택은 소설 『삼국지』에선 담력과 기개, 결단력을 갖춘 참모로 등장한다. 앞선 두 일화에서 황개와 손권은 감택을 완전히 믿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전투 위주로 서술을 하다 보니 이 두 사람이 ‘왜’ 이처럼 감택에게 큰일을 맡기거나 의견을 수용했는지, 그 까닭을 밝히지 않았다. 『삼국지』의 등장인물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라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정사 『삼국지』에 나타난 감택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감택은 대대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학문을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하여 돈이 없었다. 이래서 남 대신 책을 필사해 주고 그 값으로 종이와 붓을 받았다고 한다. 옛날의 뛰어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감택은 머리가 좋아서 책 한권을 베끼면서 그 내용을 모두 암기했다고 한다. 스승을 찾아가 배웠고, 각종 서적을 읽고 연구했으며, 천문과 역법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세상에 드러났다.

손권의 휘하에 있으면서 나라의 의식이나 학문을 담당했으며 황태자의 스승인 태자태부(太子太傅) 벼슬을 했다. 문관들은 나랏일을 하다가 경전에서 막히는 일이 있으면 모두 감택을 찾아와서 질문했고, 손권 역시 감택을 매우 존경했다. 소설에 보이는 단호한 성격과는 달리 감택은 매우 겸손하고 신중했으며,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을 대할 때도 예의를 다했고, 남의 결점을 보고도 섣불리 지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푸른 하늘 밝은 해와 같은 절개와 의리도 어두운 방 캄캄한 구석에서 배양되고,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경륜도 마치 연못에 다다른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 한 조심성에서 나온다.”<홍자성(洪自誠), 『채근담(菜根譚)』>

감택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감택은 이처럼 평소에는 침착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강적 조조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남들이 다 반대를 해도 소신을 고집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한다. 감택은 거기에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지식까지 지닌 사람이었다. 황개와 손권이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최강욱 변호사

● 최강욱(1968 - )변호사

별을 떨어트린 사람

최강욱은 현재 법무법인 청맥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사람이다. 가끔씩 시론(時論)을 쓰거나 방송출연을 하며, 『권력과 검찰(괴물의 탄생과 진화)』,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끝까지 물어주마(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다)』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만나고 있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활동 중이며, 2017년 6월에는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이에 비례하여 대중적 인지도도 꽤 높은 편이다. 사람들은 최강욱의 논리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말과 글을 좋아하고, 권력자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검찰’과 ‘법’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최강욱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최강욱은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날 글과 방송을 통해 ‘완성된 최강욱’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래서 변호사가 되기 이전까지의 최강욱의 행적을 알고 있거나, 이에 주목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최강욱의 강직함은 변호사가 되기 전 십년의 군법무관 생활을 통해 다져졌다.

“2004년 1월부터 국방부 검찰단에서 근무한 그들은 몇 건의 군납비리, 공병비리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개인비리로 구속해 군 안팎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2005. 7. 『신동아』>

당시 최강욱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제 아무리 군검찰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소령이 ‘현역 대장’을 구속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군 이래 처음’이라는 말에서 그 무게감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주변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강욱은 강단 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신일순은 ‘업무상 횡령’, ‘국고손실죄’로 추징금 1억 769만원, 2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소 가벼운 처벌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최강욱의 활약까지 빛을 잃었다고 볼 수는 없다.

“육군은 해마다 진급심사가 끝나면 심사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소감문을 인트라넷에 게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대령-준장 심사소감문이 빠져 있었어요. … 소장 진급에서 탈락한 백승도 준장이 남 총장(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을 가리킴)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최광준 준장이 남 총장에게 이임인사 하러 갔다가 윤일영 인사참모부장과 심하게 다툰 직후 즉석에서 사표를 던졌다는 얘기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또 하나 화제가 된 게 고3 때 한반이던 세 명의 대령이 모두 진급한 사실이었어요. 현 정권 실세라는 L의원이 그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군 내에서 말이 많았지요. 그밖에도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첩보가 많았어요. 그래서 한번 파헤쳐보자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2005. 7. 『신동아』>

현역 대장을 구속시킨 일만 해도 엄청나다 할 것인데, 최강욱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군의 장성 진급비리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최강욱은 이 때 국방부 검찰부장으로 있었다. 최강욱은 우선 인사관리처장 L준장과 인사검증위 J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방부 장관과 차관은 최강욱의 요청을 거부했다.

“두 사람이 상관으로서 범죄에 관여한 증거를 다 잡았어요. 관련자 진술도 있었고요. 영장 내용을 보완하라는 얘기는 없었어요. 우리가 박주범 법무관리관과 김석영 검찰단장한테 듣기로는 영장 청구에 대해 장관은 불구속수사를 원한다고 했고 차관은 화를 냈다는 거예요. 장관은 노골적으로 ‘장군은 구속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고요.”<2005. 7. 『신동아』>

재판의 전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장관이 이렇게 나오니 최강욱도 어쩔 수 없었다. 국방부에 보직을 ‘변경’해 달라는 뜻을 담아 ‘보직해임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국방부는 정말로 최강욱을 ‘해임’시켜 버렸다.

“법 규정상 당사자가 보직해임을 원하면 보직변경을 해야 합니다. 보직해임은 징계이므로 사유가 없으면 본인이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 우리 뜻은 이런 상황에서는 수사를 못하겠다는 거지, 징계성 보직해임을 요구한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참에 우리를 수사팀에서 내보내려고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보직해임이 돼 3개월간 다른 보직을 못 받으면 현역복무부적합자가 돼 강제로 전역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된다. 군법무관은 군에서 10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는데 현역복무부적합자로 전역당하면 10년을 채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관은 법무관리관을 통해 우리에게 다른 보직을 받으라고 자꾸 권하더군요. 검찰관 자리 빼고는 다 주겠다며. 거절했지요. 일단 보직해임결정을 취소한 다음에 얘기하자고. 설사 변호사 자격이 상실돼도 안 받겠다, 나중에 법적 투쟁으로 되찾아오겠다고 했죠.”<이상 2005. 7. 『신동아』>

사건의 몸통이라는 의혹이 있던 남재준은 육군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최강욱은 이후 전역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곡절 끝에 이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감택이 조조 앞에서 목숨을 걸었던 것처럼 최강욱 역시 그러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고도 살아남았듯이 최강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군의 비리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이다. 비록 그렇지만, 자신의 자리를 걸고 당당히 최고 권력자에게 맞섰던 최강욱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고, 언젠가 국민이 그 노력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

감택이 육손을 추천하면서 ‘만약 육손을 등용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끝장날 것’이라고 강변했던 것처럼 최강욱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 검찰은 초유의 탄핵정국을 지나며 숱하게 오르내린 개혁대상 1호였다. … 대통령과 재벌기업인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법망을 빠져나가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에 검찰개혁이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단 하나의 개혁과제’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2017. 6. 22. 뉴시스>

검찰의 무소불위한 권력, 이들과 정권의 부조리한 유착관계에 대해서는 최강욱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국민 역시 구체적인 사례를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 검찰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줄 안다. 나는 우선 최강욱의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라는 말에 주목해 봤다. 왜 ‘이번’이어야만 하는가?

“촛불시민은 그러한 작태를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려 구속시켰다. 그래서 당면한 시대정신은 다시 ‘진정한 적폐청산’이 되었다. 민주화를 이루었다 면서도 여전히 뿌리 뽑지 못한 그것, 9년간의 퇴행 속에서 다시 강고해져가는 악습과 구태가 모일대로 모인 그것. 권력에 굴종하고 아부하는 것이 곧 이익이 되는 반민주적 작태가 오히려 삶의 지혜가 되는 시대는 이제 정말 끝내야 한다는 게 주권자의 명령인 것이다.”<2017. 4. 12. 뉴스토마토>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시대’와 ‘이 시대를 사는 주권자’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보수정권 9년 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국민의 삶은 피폐일로를 걸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부조리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부조리의 청산을 촉구하며 전국에서 촛불이 타올랐고, 2017년 현재의 정권은 절박한 촛불 시민의 열망을 안고 태어났다. 시민들 역시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예로부터 뛰어난 지도자는 모든 일을 혼자 이루지 않았다. 제일 유능하고 명석해서 지도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인사야 말로 만사라고 했다. 대통령의 고민과 결정에 진솔하고 유익한 충언을 할 수 있는 이들만이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자격이 있을 것이며 … 능란하되 요란하지 않고, 능숙하되 교활하지 않은, 진짜 프로들이 모여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 문재인이 보여준 진솔함, 소박함, 진중함, 따뜻함이 단호함, 명석함, 유려함, 유연함으로 꽃피워지길 바란다.”<2017. 5. 10. 뉴스토마토>

부조리를 청산하려면 먼저 가장 윗자리에 있는 대통령의 의지가 높고, 정치력이 뛰어나야 하겠지만, 그를 옆에서 도울 인재를 잘 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강욱이 제시한 ‘인재의 조건’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은 이들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고 하겠다.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소신껏 살아온 사람의 말이므로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벼슬을 해야 할 사람

“못난 어른들은, 특히 우리세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를 노태우 당선이란 통탄할 결과로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 이룬 절반의 승리의 경험은 두고두고 자부심이 되기도 하고 부끄러움이 되기도 합니다. … 못난 어른들, 특히 나이 들수록 더 추해져만 가는 모습을 결코 잊지 말고 닮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꼭 투표해야 합니다. … 그리고 꼭 기억하세요. 차가운 바다에서 애타게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의 안부를 걱정하던 세월호의 친구들을. 그들이 살아있다면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처럼 처음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2017. 5. 8. 최강욱 페이스북>

최강욱의 강직함 속에는 이와 같은 부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간 자신의 업적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자랑을 해도 크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텐데, 오히려 ‘부끄럽다’고 한다. 아울러 최강욱의 강직함 속에는 ‘연민’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운 태도를 지니고 살아왔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대한제국 시절에 이준 열사가 평리원에서 검사로 잠시 일했는데… 이준 열사가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특별사면 명단에 넣었대요. 법부의 상관들이 그 이름을 지웠고, 그 사실로 상관을 고발하다 체포되었어요. 그걸 가져다가 검찰의 상징 내지는 귀감으로 삼으려는 시도인 거예요.”<최강욱 지음, 『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신화』, 창비, 2017, 17-18쪽>

“죄수의 딜레마, 진영논리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킨스가 제시한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상대방이 배신할 때는 보복하지만 내가 먼저 배신하는 일은 없으며(nice), 배신했던 상대방이 반성하고 협력 행동으로 돌아오면 바로 용서해주고(forgiving), 이 전략을 취할 때 내가 얻는 이득은 상대방보다 크지 않지만 이를 시샘하지 않는다(not envious)는 원칙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2017. 6. 5. 뉴스토마토>

“공자는 자로라는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고, 또한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고도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의 중요함을 피력하였다.”<2017. 6. 29. 뉴스토마토>

최강욱의 강직함 속에는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있다. 최강욱은 감택과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독서에 침잠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역설적으로 부조리에 더욱 강하게 저항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한다.

“선거 때마다 또 다시 불나방들을 만난다. 출세를 향한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사람’의 품격에서 ‘자리’의 품계만을 따지는 속물이 되어버린 한 때의 ‘인재’들을 바라보며 그저 안타까운 한숨만 토할 수밖에…물론 그 분들은 나를 바라보며 “출세도 못한 놈이 어따 대고…”라 말씀하시겠지만.”<2014. 5. 20. 허핑턴포스트>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감택은 벼슬을 했고, 최강욱은 아직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많고, 품고 있는 뜻이 바르고 큰 사람이므로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 그 역할을 훌륭히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막상 자리에 앉으면 사람은 다 변한다’고들 한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은 출세를 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어깨에 힘을 주고 목을 빳빳하게 세운다. 과연 최강욱도 높은 자리에 앉으면 변하게 될까? 그러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사람의 말과 글, 그간의 행적이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한다.

최강욱은 벼슬을 해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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