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법 없다 ①] 퍼스널 모빌리티, 차도 외에 달릴 수 있는 곳 없어…운전자도 보행자도 ‘불안’

뉴스를 보면서, 혹은 일상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없는가. ‘왜 저런 건 처벌이 안 되지?’ 혹은 ‘이건 어떤 법으로 규제되는 걸까?’ 등. ‘법 없이’ 산다는 것은 보통 법이 있거나 말거나 늘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 없어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을 자주 접한다. <투데이신문>은 관련법 미비로 불편을 겪거나 부당한 일을 겪는 사례들을 전달하고 법안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그런 법 없다’를 기획했다.
▲ 전기자전거(왼쪽) ⓒPixabay/프리큐레이션 | 외발형 퍼스널 모빌리티 나인봇(오른쪽) ⓒ뉴시스

매년 급증하는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교통체증 완화·이산화탄소 절감 효과

관련 법안 미흡으로 차도에서 주행해야
운전자·보행자 “사고 날까 두려워”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전동휠, 전동 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개인형 이동수단)를 타고 가는 사람과 마주치면 영화 ‘백 투 더퓨처’에 등장하는 하버보드를 직접 본 것처럼 사람들은 신기한 듯, 부러운 듯 바라본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최첨단 이동수단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원동기장치자전거(배기량 50cc미만 또는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경우 정격출력 0.59kW미만)로 분류돼 사실상 도로에서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저속으로 달리는 퍼스널 모빌리티는 ‘도로위 무법자’로 불리며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의 이용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와 관련된 법규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이용자들과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경제성 강점으로 빠르게 성장

퍼스널 모빌리티란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1인용 이동수단을 지칭한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작동 시 공해가 발생하지 않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이동수단 및 레저용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의 가격은 보통 30만원에서 100만원대다. 휴대가 간편하고 대중교통과 병행해 사용할 수 있는데다 50km를 달리는데 충전 비용 100원정도 밖에 들지 않아 유지비도 저렴하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에서 지난 1월 발표한 ‘새로운 교통수단 이용에 대한 안전대책 연구’에 따르면 해당 연구에서는 국내 전동휠 판매량을 2014년 3500대, 2015년 1만 7000대가 판매됐으며 지난해에는 7월까지 2만 8000대가 판매됐다고 추정했다.

한국스마트e모빌리티협회 전동킥보드/전동휠분과 양해룡 분과장은 “지난해 500억원대 규모인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내년까지 적어도 30~50%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올해 안엔 5만대 이상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통한 교통체증 해결, 이산화탄소 절감 등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지난 2015년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장에서 세그웨이(전동스쿠터)를 타고 이동하는 119구급순찰대 ⓒ뉴시스

이용자 늘고 있으나 관련 법규는 미흡

급증하는 퍼스널 모빌리티 판매량만큼 이용자도 늘고있지만 관련 법안은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의 도로교통법상 퍼스널 모빌리티에 해당하는 이동수단들은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따라서 원동기면허 혹은 운전면허 소지가 필요하고 헬멧 및 보호장구 착용이 필수다. 또 인도 및 자전거도로, 공원에서의 주행이 금지되는 등 제약이 붙는다. 차도 외에는 달릴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시속이 20~30km밖에 되지 않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차도를 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의 운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고라도 발생하게 되면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가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전주에서는 인도를 보행하던 20대가 주행 중인 전동휠에 부딪혀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이 같이 경미한 부상으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중상 혹은 사망에 이르는 사고도 발생한다. 지난달에는 60대 노인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자동차 추돌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또 같은 달 대구에서는 20대가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던 중 주차블럭에 부딪쳐 숨지기도 했다.

승용차를 운전해 출퇴근을 하는 A(35)씨는 “최근 한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가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차도로 불쑥 튀어나오는 등 ‘칼치기(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불법주행)’를 했다”며 “행여 큰 사고로 이어질까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B(24)씨도 “출근길 사람들이 많은 인도에서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며 “행여 부딪히진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에 따르면 퍼스널 모빌리티 사고는 2014년 40건, 2015년 77건, 지난해 137건으로 급증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 77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명 중 1명이 사고가 날 뻔해 타인과 다툰 적(13.8%)이 있거나 실제 사고를 당한 경험(7.5%)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최근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안전사고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며 “국토교통부, 관련 부처 등과 회의를 통해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현행 법규에 따라 단속을 시행하고 있다”며 “면허 미소지, 안전장비 미착용 등에 대해 단속을 시행하고 있고 면허 확인 없이 퍼스널 모빌리티를 빌려주는 대여소에 대해서도 관련법에 근거해 단속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 전기 스쿠터 스티고플러스 ⓒ뉴시스

외국에서는 발 빠르게 관련 규정 마련…한국은 ‘아직’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개인형 이동수단 관련 법제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고 신기술 개발에 발맞춘 법제 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한 바 있다. 연구를 담당한 홍의표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다양한 종류의 퍼스널 모빌리티의 등장과 이용자 급증에 따라 관련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의 이산화탄소 저감과 근거리 교통수단으로서의 유용성을 인정해 관련 규제 방식의 논의가 활발하다.

독일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 운행방법에 있어서 원동기장치자전거에 준해 면허 취득, 번호판 부착, 반사등 및 후미등, 경적 등을 설치한 경우 자전거 도로 주행이 가능하고 자전거 도로가 없을 시 차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 허가를 받으면 인도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다. 또 의무보험을 가입하도록 규정했다.

핀란드는 2015년 최대 속도 25km/h 이하의 제품에 대해 인도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경적·반사등·안전모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프랑스의 경우 퍼스널모빌리티는 보행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아 인도에서 주행이 가능하지만 차도는 이용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버지니아 주에서는 14세 이하 운전 금지, 플로리다 주는 안전모 착용 의무화 등을 규정했다.

이 외에 호주, 중국은 자전거와 유사하게 통행이 허용되며, 네덜란드는 보험가입을 전제로 차도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역시 크기와 출력, 운행가능 도로 등의 제도를 마련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페달과 전동기의 동시 동력으로 움직이고, 시속 25km/h 이상으로 움직일 경우 전동기가 작동하지 않으며 전체 중량이 30kg 미만인 것’을 전기자전거로 정의하고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이를 운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는 전기자전거만 해당된다. 때문에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 등 의원 10명이 지난달 8일 전동휠, 전동 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의 자전거 도로 통행 기준과 규제 방안을 담은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8일 발의했으며 현재 소관위 계류 중이다.

발의된 개정법률안은 전동횔, 전동 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를 ‘전동 이동 장치’로 규정하고 자전거도로나 인도로 통행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인도로 주행할 경우 ▲시속 10km/h 이하 운행 ▲인도 중앙으로부터 차도 쪽 사이에 위치 할 것 ▲2대 이상 나란히 통행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다양한 형태의 퍼스널 모빌리티가 등장하고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국내 관련 규정의 미비로 인해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이동수단을 중심으로 시장이 조성될 수 있도록 시급한 법제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이용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인 규제와 법안이 하루빨리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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