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소비④] 직접 만들어 더 애착 가는 나만의 아이템

▲ 아코자인 가죽 공방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빠른 트렌드 속 느림의 미학
내가 직접 만드는 가죽 아이템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패션·뷰티를 비롯해 모든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가끔은 트렌드를 쫓아가기도 버겁다. 유행이 돌아올까 싶었던 부츠컷 바지와 아디다스 슈퍼스타, 그리고 최근에는 꽃 패턴이 가득한 원피스까지.

이렇게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입을 옷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분명 시즌마다 이른바 ‘기본템(기본+아이템)’이라 불리는 의류를 조금씩 채워 넣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는 옷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가방이나 귀걸이 등의 소품도 착장하려니 마음에 쏙 드는 소품이 없어 아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 요즘 기자는 자주자주 바뀌는 트렌드에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다양한 브랜드 업체들의 가지각색의 아이템들이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막상 구매하자니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이 태반이라 너도나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 흔한 아이템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금새 소비되고 금방 사라진다. 유행하는 아이템을 섣불리 구매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인스턴트처럼 빠르게 생산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게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이에 기자는 느릿하면서도 오래가는 아날로그 감성처럼 그런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은 장소가 바로 대를 잇는 가죽 공방 ‘아코자인’. 몇 해 전 흥행했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 역을 맡은 현빈이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고 트레이닝복을 설명한 것처럼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가죽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때마침 기자가 공방 체험을 신청했던 당시는 아코자인이 10주년 기념으로 10일간 60명에게 가죽 아이템 제작은 물론 옥상정원 무료체험을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9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아코자인을 찾아 직접 가죽 아이템을 제작해봤다.

▲ 아코자인 이세연 디자이너가 아이템 샘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샘플 토대로 가죽·실 색상 선택
가죽 풀칠부터 바느질까지 직접

패션 업계에선 불변의 진리로 통하는 말이 있다. “클래식한 아이템은 영원하다”. 이 말을 떠올리며 클래식한 아이템을 만들겠노라 굳게 다짐하고 매장을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서니 가죽 특유의 냄새와 형형색색의 실 그리고 이세연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 다양한 가죽 아이템들이 기자를 반겼다.

처음에 기자는 클래식한 카드지갑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10주년 무료체험 이벤트를 신청한 터라 선택의 폭이 좁았다. 이는 준비된 DIY 키트가 3개이기 때문이라고. ‘LOVE’라 불리는 이어폰 줄감개와 동전 두 개를 함께 넣을 수 있는 이어폰 줄감개, 그리고 동전지갑. 총 3가지 샘플 중에서 만들고자 하는 아이템을 선택하면 됐다. 평소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기자는 클래식하면서도 유니크해 보이는 LOVE라는 이름의 줄감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 (좌)이어폰 줄감개 샘플 (우)이어폰 줄감개를 만들 가죽과 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다음은 가죽을 고를 차례였다. 이어폰을 감싸줄 부분과 그 위를 덮을 부분, 그리고 손잡이가 될 부분 총 3가지 부분의 가죽을 선택하면 됐다. 기자는 천연 마감을 거친 베지터블 가죽을 선택했으며, 색상은 각각 검은색과 빨간색을 골랐다. 이어 가죽과 가죽 사이를 탄탄하게 고정해 줄 실의 색상도 함께 골랐다. 검은색 가죽과 빨간색 가죽을 고른 터라 무난하게 검은색 실을 선택했다. 색상 선택이 끝나자 이 디자이너는 불박(가죽에 로고나 이니셜 같은 것을 새기는 것) 각인이 새겨질 하트 모양의 가죽 색상을 고르라 권유했다. 각인된 하트는 연인들이 남산에서 자물쇠를 거는 것처럼 아코자인 루프탑에 계속 걸린다고 한다.

가죽과 실, 하트의 색상까지 모두 선택한 다음은 루프탑에 걸린 하트에 불박을 찍기 위해 폰트를 설정할 차례. 알파벳과 숫자, 하트 등이 있는 황동폰트키트에서 폰트를 쏙쏙 고르면 됐다. 기자는 기자의 이니셜과 공방까지 동행해준 전 기자의 이니셜, 그리고 방문날짜를 하트에 새겼다. 그다음으로는 하트를 옥상에 걸 수 있도록 윗부분에 구멍을 냈다.

▲ 아코자인 루프톰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공방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일단락한 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루프탑에서는 손가락 끝으로 토코놀 풀을 가죽 뒷면에 얇게 펴 바르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디자이너에 따르면 가죽의 뒷면은 반질반질한 앞면에 비해 조금 거칠기도 하거니와 가루가 떨어질 수 있다. 때문에 그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토코놀 풀을 바른다고. 풀을 발라 마감처리 된 뒷면은 확실히 작업하기 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지고 광도 올라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풀이 어느 정도 마르면 가죽 위에 샘플 도안을 대고 뾰족한 송곳으로 구멍을 뚫을 곳의 위치와 본드를 바를 곳의 위치를 체크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다시 공방으로 내려가 하트에 구멍을 낸 것처럼 손잡이를 고정할 부분과 똑딱단추를 달 부분에 구멍을 뚫어준다. 이후 르가드 인두기를 이용해 가죽 가장자리를 여러 번 눌러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멋이 나는 랭선(장식선) 작업을 한 뒤 금속 장식을 이용해 미니 손잡이가 될 부분을 고정하고, 똑딱단추를 단다.

▲ 장식 달기 및 랭선(장식선) 작업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제 각각의 가죽을 본드를 이용해 서로 조립할 차례다. 우선 사전에 송곳으로 본드를 칠하겠다고 표기한 부분을 칼로 긁어낸다. 이는 본드를 바를 부분이 매끈매끈한 가죽 윗면이기 때문에 표면에 스크래치를 줘 본드가 고루 발리기 위함이라고.

본드를 바를 부분을 긁어냈다면 이제 가죽 위에 바느질할 구멍을 낸다. 마치 포크가 연상되는 도구인 목타(치즐·그리프로도 불림)는 바느질하기 편하게 사전에 구멍을 내주는 도구다. 한쪽 손으로는 목타를 가죽에 댄 뒤 나머지 손으로는 망치를 쥐고 가볍게 목타를 내려친다.

목타를 이용해 사선으로 이어지도록 바느질 구멍을 냈다면 본드를 바를 차례. 헤라라는 도구를 이용해 본드를 아주 얇게 펴 바르고 일정 시간 말린 뒤 망치로 툭툭 두드려 두 가죽을 합친다. 기자가 본드를 바른 뒤 바로 두 가죽을 붙이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이 디자이너는 “본드가 어느 정도 마른 뒤 붙여야 접착력이 좋다”고 설명했다.

▲ (왼쪽 상단부터) 본드를 바를 수 있게 가죽을 미는 장면, 목타를 이용해 바느질 선을 내는 모습, 해라를 이용해 본드를 바르는 모습, 본드가 어느 정도 마르면 두 가죽을 붙이는 모습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완벽히 두 가죽을 고정한 후 끝이 납작한 마른 송곳을 이용해 다시 한번 바느질 구멍을 냈다. 이미 목타를 이용해 바느질 선을 뚫었지만 본드로 두 가죽을 붙였기에 뒷부분에 구멍이 뚫려있지 않기 때문. 앞뒤로 바늘이 들어갈 구멍이 완벽하게 뚫리면 바늘 두 개를 이용해 바느질을 시작한다.

바느질은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라는 기법을 이용한다. 새들 스티치는 유명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마구 및 안장을 만드는 기술에서 비롯됐다. 현재 새들 스티치 기법은 튼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가죽공예에서 빠질 수 없는 기법이라는 평을 듣는다.

어린 시절에 한참 유행하던 십자수도 곧잘 했기에 바느질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바늘 두 개를 이용한다고 하니 어려울 것 같았으나 생각만큼 어렵진 않았다. 더구나 바늘도 마치 십자수 바늘처럼 끝이 뭉툭해 두려움이 대폭 줄었다. 자신감이 붙어서일까.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는 바느질도 금새 끝났다. 곧바로 실을 매듭지은 후 망치로 바느질선을 두드리고 마무리했다. 이는 망치로 바느질 선을 톡톡 치면 실이 바느질선에 납작하게 붙으면서 선도 살아나고, 넓게 뚫렸던 바느질 구멍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 (좌) 두 가죽을 붙였기 때문에 납작 송곳으로 다시 한번 바느질 선을 내는 모습 (우) 새들 스티치 기법으로 바느질 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LOVE’를 만들다

드디어 작품이 완성됐다. 손바닥 1/4 크기의 이어폰 줄감개를 만드는데 3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샘플의 크기를 보고 한 시간 이내에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자만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가죽 뒷면에 토코놀 풀칠을 해 일정하지 않은 면을 다듬어주고, 가장자리에 랭선 작업을 하고, 장식을 달고, 본드를 칠하기 위해 토코놀 풀칠을 한 부분을 제거하고…. 조그만 작품 하나 만드는 데도 품이 상당히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핸드 메이드 가죽 제품 단가가 비싼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가죽공예 체험을 해 본 결과를 한마디로 하자면 ‘느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겠다. ‘빨리빨리’가 일상화된 요즘.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제품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독촉 하나 없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일상 속 스트레스는 해소되고, 어느새 내가 직접 만든 하나의 작품이자 아이템이 완성돼있다. 시간이 갈수록, 손때가 묻을수록 더 멋이 나는 그런 아이템을 만들고자 한다면 아코자인 공방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 (좌)루프탑 테라스에 걸린 하트 (우) 이어폰 줄감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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