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Y는 어느 날 대학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자기 부인 얘기를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선배를 바라보다 상념에 빠졌다.

“은행 다니는 우리 마누라는 매일 가계부를 쓰는데 10원짜리 하나까지 다 맞아야만 잠자리에 들어.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매일 밤 이마 찡그리고 영수증 들여다보며 가계부 쓰는 마누라가 귀여워 죽겠어.”

Y는 전 남편과의 이혼 사유를 그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시시콜콜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바로 그 가계부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진저리를 쳐왔었다. 전직 은행원 출신이던 Y의 전남편은 뭐든 대충 대충인 Y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며 돈 문제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신혼 첫날밤부터 가계부를 쓰게 했다. 인생 선배인 남편의 뜻을 따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 Y는 10원짜리까지 똑 떨어지도록 가계부를 써보려 결혼 기간 내내 노력했지만 선천적으로 그런 일에는 재능이 없었다. 전남편에게 매일 밤 지청구를 들으며 가계부와 씨름했던 그녀는 이혼 후, 그 끔찍한 가계부 쓰기에서 놓여난 것이 제일 속 시원하다고 느껴왔었다. 해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 인간이 그렇게 쪼잔 하고 피곤한 놈이었다고 가계부 얘기를 하며 X허즈를 흉 보곤 했었다. 그런데 맙소사! 그런 끔찍한 취미를 가진 마누라가 귀여워 죽겠다니!

물론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선배의 부인은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거고 Y의 전 남편은 자기가 좋은 걸 Y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어떻든 선배의 아내와 Y의 전남편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다. 금전출납부의 수입 지출 내역이 딱 떨어질 때 뇌에서 행복호르몬이 마구마구 분출되는 사람들. 그러나 이 똑같은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을 바라본 각 배우자의 반응은 정 반대였다.

Y는 반성했다. 아하, 이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였구나.

사람의 취향이란 정말 참 다양하다.

Y의 얘기를 듣고 우리 선배 하나가 떠올랐다. 이 양반은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남편과 함께 성인용품점이나 조명 가게 다녀 온 얘기를 자랑하곤 한다. 부부금실이 그만인 모양인데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그런 쪽의 대화를 금기시 한다는 걸 잘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 구입한 물건의 효용성, 그 놀라운 효과, 새로 바꾼 조명이 만들어 준 끝내주게 로맨틱한 분위기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실 때마다 우리 후배들은 직업상 타고 난 저마다의 리액션 기술로 한껏 분위기를 띄워 맞장구를 쳐드리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가 지극한 민망함을 느꼈다. 그 선배가 나타나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 선배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남편과의 잠자리에 대해 얘기한 거고, 좋은 정보를 모두 함께 나누자는 선한 의도로 그 성스런 이야기들을 하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건 취향의 문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연인 사이, 부부 사이는 취향이 같거나 상대의 취향을 진심으로 존중해 줄 수 있을 때 행복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그렇다고 Y에게 잘못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Y의 전 남편은 자신의 취향을 강요했다. Y에게는 자신의 취향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전 남편을 비난할 권리가 있다. 다만 그 비난은 강요죄에 대해서만 성립된다. 가계부의 끝자리가 10원 단위까지 맞아야만 잠이 오는 그 취향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우리는 상대의 취향에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단, 누구도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 Ⓒ게티이미지뱅크

젊은 날의 브래드 피트가 주연했던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에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결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상대의 취향을 모두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랑한다면 그저 사랑해야한다. 그러나 그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

Y야, 니 이혼은 진짜 현명한 선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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