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말이음센터 신애경 통신중계사가 수화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영상·문자 이용한 실시간 통신중계
24시간 청각·언어장애인 의사소통 지원

수신자 가리지 않고 요청하는 곳 어디든 전화
장애인의 목소리 돼 자유롭게 통화하도록 도와

야간 중계사 하루 평균 50~60건 중계
이용자들의 감사 인사에 가장 큰 보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필수품처럼 이용할 만큼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됐지만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 통화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수화를 하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손’과 비장애인의 ‘말’을 이어준다는 의미의 손말이음센터는 이들의 전화 통화를 돕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통신중계사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투데이신문>은 통신중계사의 일과를 담기 위해 서울 무교동에 위치한 손말이음센터를 찾았다. 24시간 운영되는 손말이음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중계사들의 목소리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모두가 퇴근하는 저녁 6시, 기자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 옆 NIA빌딩 15층.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KTcs에 위탁 운영 중인 ‘손말이음센터’가 있는 자리다.

손말이음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자는 답답함을 느꼈다. 일반적인 사무실에 비해 높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40여 칸의 자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통화 내용을 중계사 외에는 알 수 없도록 해 이용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 통신중계사들의 자리가 높은 칸막이로 둘러싸여 있다 ⓒ투데이신문

손말이음센터는 영상을 통해 수화를 통역하고 상대방의 음성을 다시 수화로 전달하는 ‘영상중계’와 문자로 통화 내용을 입력하면 중계사가 음성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음성 통화내용을 중계사가 다시 문자로 전달하는 ‘문자중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손말이음센터 근무자 정원은 40명인데 현재는 29명만 일하고 있다. 이날 야간 근무자는 신애경 중계사와 권오익 중계사 2명이었다. 주간에 비해 중계요청이 많지 않은 야간은 근무 인력이 적다고 한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신 통신중계사가 먼저 출근했다. 신 중계사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근무를 하지만 업무 시간보다 훨씬 일찍 센터로 나왔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신 중계사는 “밤새 계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라며 기자를 걱정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 중계사는 “가장 먼저 유니폼을 갈아입고요, 머리 상태나 용모를 단정하게 정리해요”라고 말했다. 중계사들은 남색이나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의 유니폼을 입는다. 영상을 통해 수화로 대화할 때 손이 잘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또 영상을 통해 청각·언어장애인과 대화해야 하기에 복장·용모 점검은 필수다.

▲ ⓒ투데이신문

“청각장애인분 요청으로 대신 주문전화 드렸습니다. 저는 107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신애경이고요, 문자로 하시는 말씀 제가 그대로 중계 해드리겠습니다. 네. 엽기반반 덜 매운 맛으로 해주시고, 치즈하고 라면 사리 좀 넣어주세요. 여기 주소가…”

신 중계사의 업무는 이렇게 청각·언어장애인들의 통화를 중계해주는 일이다.

“여기는 107 손말이음센터라고 하고요, 청각장애인 대신 전화해드리는 중계센터입니다. 아, 처음 들어보셨다구요? 발신번호가 02-107로 뜰 거예요. 청각장애인분을 대신해 주문하는 전화니까 끊지 마시고 받아주세요…네. 친절하게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중계사 신애경이었습니다.”

주문전화를 마칠 쯤 음식점 사장이 통신중계서비스가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질문한 모양이다. 신 중계사는 “통신중계서비스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많이 알려져야 장애인분들도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 손말이음센터 신애경 중계사가 음식주문전화 문자중계를 하는 사이 시계가 오후 10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신 중계사가 근무를 시작하는 오후 7시부터는 주로 음식 주문전화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신 중계사는 “주문 내용과 결제 금액, 집 주소 등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집중해야 해요”라면서 “통신중계서비스는 녹음이 되지 않고 통화기록도 저장되지 않아요”라고 설명했다.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잘못 전달될 경우 책임 소재를 밝힐 수도 없고, 음식점 사장이나 음식을 주문한 장애인 모두 피해를 받게 된다.

녹음이나 통화내역 등 기록을 남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신 중계사는 “통신중계의 특성상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나 계좌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중계사에게 말해야하는 경우가 있어서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남기지 않는 거죠”라고 말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 중 개인정보 유출을 불안해하는 분들은 없는지 물었더니 그는 “중계사들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 ‘통신중계서약’을 해요. 어길 경우엔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계사의 자리마다 통신중계서약이 붙어있었다.

▲ 통신중계서약 ⓒ투데이신문

신 중계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또다시 수화중계 요청이 들어왔다. 청각장애인이 복통으로 병원에 전화해 상담받으려고 중계를 요청한 것이다. 신 중계사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청각장애인의 수화를 의사에게 전달했다.

“청각장애인 요청으로 대신 전화드렸습니다. 저는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신애경입니다. 수화로 하시는 말씀 그대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화요일 아침부터 배가 많이 아파서…지금 위가 팽창됐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아프거든요…”

신 중계사는 “중계 서비스가 없으면 청각장애인분들은 이 시간에 직접 병원까지 찾아가셔야 해요. 그래도 중계서비스 덕분에 이렇게 전화를 통한 상담이 가능해졌죠”라고 말했다.

신 중계사의 수화 중계를 지켜보던 중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상대방의 말을 수화로 통역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한 말을 전달할 때도 상대방에게 말로 통역하면서 동시에 수화를 하고 있던 것이다. 기자가 왜 통역하면서 수화도 같이 하느냐고 질문했더니 신 중계사는 “제가 입말로 통역할 때는 카메라를 보지 않고 몸을 약간 돌려서 수화로도 똑같이 얘기해요. 제가 청각장애인의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요”라고 답했다.

또 수화를 할 때 단어를 말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 입모양도 중요한지 물었더니 신 중계사는 “그럼요.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구화(口話)인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구화인이란 언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이 상대가 말하는 입술 모양을 통해 그 뜻을 알아듣고, 본인도 소리 내서 말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왼쪽)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수화를 비장애인에게 통역할 때(오른쪽)는 몸을 돌려 대화를 전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투데이신문

신 중계사는 교회를 다니다가 수화를 배우게 됐다. 교회에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해 현재까지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설교를 통역하고 있다고 했다. 1986년 처음 수화를 시작한 신 중계사는 센터 내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한다.

신 중계사와 대화를 하던 중 문자중계 요청이 들어왔다. 한 청각장애인이 택배가 오지 않자 택배기사에게 문의를 하려고 중계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택배기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는데 신 중계사가 계속 무엇을 입력하고 있었다. 신 중계사는 “따르릉~ 하는 신호음을 문자로 알려주는 거예요”라고 알려줬다. 통화 중에 들리는 모든 것들을 중계해주는 것이다.

신 중계사는 “오후 7시부터 오전 2시까지는 음식 주문전화나 콜택시 요청 전화가 가장 많이 들어와요”라며 “오전 2시 이후에는 중계 요청이 많지 않고, 오전 6시가 넘으면 출근 때문에 콜택시 요청 전화가 많이 와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오전 2시가 지나자 중계 요청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제야 중계사들은 잠시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풀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중계사들은 하루 평균 50~60건의 통신중계를 한다고 한다. 신 중계사는 휴식시간 전까지 43건의 통신중계를 했다.

▲ 통신중계사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안마의자(왼쪽 위), 수면실(왼쪽 아래)과 휴게 공간(오른쪽) ⓒ투데이신문

야간근무자들은 2시간의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전 2시가 되자 신 중계사가 먼저 휴식시간을 가졌다. 손말이음센터에는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중계사들의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수면실과 2대의 안마의자가 있다. 휴식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물으니 신 중계사는 “주로 잠을 자요. 아무리 밤 시간에 일하는 게 익숙하다고 해도 쉬는 게 필요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신 중계사가 휴식시간을 갖고 잠을 청하러 간 뒤 기자는 권오익 중계사와 대화를 나눴다. 권 중계사는 수화를 배운 지 15년이 됐다고 한다. 그는 신 중계사와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처음 수화를 배우게 됐다. 권 중계사는 “수화통역사들이 보통 교회에서 시작을 많이 해요. 개인적으로 ‘수화를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 손말이음센터 권오익 통신중계사 ⓒ투데이신문

권 중계사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수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 세종문화회관에 자주 갔어요. 세종문화회관 광화문 쪽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사이에 두고 넓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6~7명 정도의 형, 누나들이 손짓을 하면서 너무 즐겁게 웃는 거예요. 그런데 말은 하지 않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수화인 줄 몰랐어요”라면서 “‘내가 저 사람들처럼 손으로 말을 할 줄 알았더라면 대화를 한 번 해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30대가 돼서야 교회에서 수화를 배우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새벽시간이라 중계 요청이 많지 않아 권 중계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중계를 하면서 가장 긴장할 때가 119 신고 같은 응급전화가 올 때예요. 문자중계는 상관없는데, 수화 중계가 들어오면 무척 긴장하죠. 제 손 끝 하나로 이 사람이 모르핀을 맞아야 하는데 아스피린을 맞게 될 수도 있고, 생사가 달린 순간에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처방이 달라지거든요”라며 여러 내용의 통화를 중계하면서 겪은 일들을 들려줬다.

▲ 손말이음센터 권오익 통신중계사가 문자중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통역자의 입장에서 모든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저희는 중계할 때 욕도 그대로 전달해요. 상대방이 얘기하는 그대로, 감정을 실어서 전달하죠. 중간에서 내용을 제 마음대로 편집하면 통신법에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화의 맥락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라며 “마음이 여린 중계사 분들은 욕설이 오가는 대화를 중계하고 나면 울기도 해요”라고 중계사들의 고충을 털어놨다.

수화나 문자 중계 특성상 청각·언어장애인의 욕설까지도 그대로 전달하는데 전화를 받는 비장애인이 ‘당신이 뭔데 나한테 욕을 하느냐’고 중계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단다. 감정을 싣고 통역을 하다가도 이런 경우엔 차분하게 목소리를 바꿔 “청각장애인 분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드리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대화를 하던 중, 권 중계사는 기자에게 수화하는 비장애인에게 최고의 칭찬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네가 농아(聾啞)인 줄 알았어’라는 말이에요. 제 자랑이지만 농아인 분들과 대화하면서 여러 번 들었어요”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계사는 수화통역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달고 산다고 한다. 권 중계사는 “이쪽 계통이 다 그렇지만, 박봉이에요. 사명감이 없으면 사실 하기 어렵죠. 수화도 하나의 언어인데, 외국어 통역사 같은 경우는 괜찮은 보수를 받지만 수화통역은 ‘봉사’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급여가 정말 적어요”라면서 “해결이 돼야 하는데…모르죠. 정책이 어떻게 되려나”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권 중계사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 신 중계사가 휴식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오후 8시부터 출근해 일한 권 중계사가 쉴 차례다. 권 중계사는 오전 4시부터 6시까지 휴식시간을 가진다.

▲ 손말이음센터 신애경 통신중계사가 수화통역 중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자리로 돌아온 신 중계사가 기자에게 간식을 먹으라며 빵과 과자를 나눠주면서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까요?”라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는 “언젠가 동료 중계사가 사과를 먹으라고 나눠줬어요. 그런데 사과를 잘게 잘라서 가져왔어요. ‘뭐야, 사과를 왜 이렇게 가져왔지’했는데 중계를 하다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일하는 중간에 간식을 먹다가 갑자기 통화중계요청이 들어오면 얼른 삼키거나 뱉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조각이 크면 삼킬 수가 없어요. 잘게 잘라놓으면 바로 삼키고 중계할 수 있죠.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꿀팁’이에요”라며 웃었다.

기자는 오전 4시 30분경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신 중계사에게 잠시 쉬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안마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분명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느덧 시계가 오전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랴부랴 아침 시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중계실로 들어갔다.

오전 7시가 되자 신 중계사는 “아직 한 시간 남았는데 50건이나 했네요”라며 “7시 지나면 출근 때문에 장콜(장애인콜택시) 중계 요청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손말이음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통신중계를 했다. 그러다가 주말까지 운영하게 됐고 이후 24시간 중계로 확대됐다. 신 중계사는 “서비스 시간이 확대될 때 청각장애인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저희들 때문에 조금 더 편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면서 고마워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 손말이음센터 신애경 통신중계사가 문자중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대화 중 마침 장애인 콜택시 요청 문자중계가 들어왔다. “네 안녕하십니까. 107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신애경입니다. 청각장애인 OOO님이시고요, 뇌병변 장애도 있으신 분 같네요. 집에서 센터 간다고 하셨어요. 대기자가 있나요?”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이 개인적인 수화통역 부탁을 하기 위해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 중계사는 “저희는 이름만 고지하고 번호는 알려드리지 않아요. 법적으로도 알려주지 못하게 돼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중계사들도 수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무 중계사와 연결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부탁을 하시는 분들께는 안심하고 이용하시라고 말씀을 드리죠”라고 말했다.

오전 7시 30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는 중계사들이 출근했다. 중계사들은 신 중계사와 마찬가지로 출근하자마자 유니폼을 갈아입고 용모를 정돈했다. 곧 퇴근을 앞둔 신 중계사는 주간근무 중계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드디어 오전 8시. 길었던 신 중계사의 야간 근무가 끝났다. 이날 신 중계사는 총 55건의 통화중계를 했다. 신 중계사는 업무일지를 기록하고 자리를 정리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밤샘 중계를 마친 후였지만 신 중계사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너무 즐거운 일이라 힘든 것도 잘 못 느끼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중계사님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됐어요’라고 감사 인사를 해주시면 정말 보람을 느껴요. 힘든 것도 싹 날아가죠. 그 분들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24시간 쉼 없이 일하는 통신중계사들 덕분에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오늘도 무사히 일상을 보내고 있다.

▲ ⓒ투데이신문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