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현재 지구상 70억 인구 중, 사랑에 막 빠져들어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실연의 상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사람이 더 많을까?

위 질문은 이 칼럼의 독자 확보를 위해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다. 그러나 그 답을 알 방법은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이런 추측은 해 본다. 목하 열애중인 사람은 요런 글 챙겨볼 시간이 없지 않겠는가하고. 또,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진 달콤한 순간보다는 지지부진한 관계 속에 피곤해했거나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이 구구절절 내 얘기 같았던 날이 더 많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별, 그 후의 이야기를 선택한다.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분들을 위해.

‘이제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도 되는 걸까?’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랑했던 시간의 두 배,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혼자 지내는 게 좋다고 주장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긴 한데, 그렇다면 10년씩 살다 헤어진 사람들은 10년에서 20년을 연애도 하지 말고 지내라는 얘기가 되므로 이런 조언은 싹 무시해버리시길 바란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빈 시간, 여백은 분명히 필요하다. (사족 같지만 잠시 덧붙이자면 로미오가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다른 여성에게 목매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짝사랑이란 휴지기 없이 바로 바로 옮겨 타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는 이별은 둘의 상호 관계가 끝난 것을 기준으로 한다.)

그 적절한 기간은 도대체 얼마일까?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아파한 후, 훌훌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어야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나만의 감별법을 가지고 있다. 너무 간단해서 실망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00% 정확도를 자랑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요런 질문을 되던지면 된다.

그 사람이랑 왜 헤어졌어?

그 사람, 어떤 사람이었어?

단, 단서가 있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딱 세 줄로 요약해 보라고 해야 한다.

한 번 스스로에게 실험해 보셔도 좋겠다.

위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주변에 소개팅 부탁을 해도 좋겠다. 그러나 수 없이 많은 말줄임표와 접속사를 남발하며 문장을 마무리하지 못 하는 나를 발견했다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전히 흠... 어... 그랬는데... 그래서.... 그러니까... 아, 뭐지...?

이런 식으로 주절주절 늘어졌던 분들께는 이 이야기를 선물로 드린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엄마를 잃은 인디언 꼬마가 있었다. 이름은 리틀 트리. 엎친 데 덮친다고 소년의 부족은 서양인들의 총칼에 떠밀려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 이동을 시작한다. 강행군에 소년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자 함께 걷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작은 나무가 너무 지쳤어요. 좀 쉬어야할 것 같아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한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되는 것도 괜찮아.’ 할아버지는 멈춰서는 대신 발걸음만 조금 늦춘다.

소년은 훗날 그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씀이 백만 번 옳았다고, 그 지혜에 뒤늦게 감사한다.

소년은 걷는 일이 너무 힘들어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 같은걸 느낄 새가 없었던 것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육체적 고통은 마음의 고통을 상당부분 치유해낸다. (아름드리 출판사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인용)

아직도 그를, 그와 끝난 이유를 석 줄의 틀에 가두어 요약 정리해 낼 수 없다면

당신은 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게 맞다.

질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픈 채로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러니 소년의 할아버지가 그리 하셨듯이 자기 자신에게 육체적 고통을 선물해보라고 권해드린다.

어쨌든, 어떻게든 시간은 흐른다.

그 사람은 언제가 석 줄로 줄여질 테고

심지어는 지워진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물병 하나 챙겨들고 뒷산이라도 오르는 건 어떨까?

산 정상에선 이렇게 외쳐 봐도 좋겠다.

다 지나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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