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박사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조선왕조실록』 속에 등장하는 불교 관련 기록들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야 될 일이 기한이 정해지지 않거나 기한이 많이 남을 경우, 자꾸 그 일을 하기 싫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필자도 역시 불교 관련 기록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았다. 대신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부엉이가 울다.’ 혹은 ‘산올빼미가 울다.’라는 기록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UNESCO)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다. 이 가운데 작성 과정과 내용의 상세함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고려하더라도 여러 동물들 가운데 부엉이나 올빼미가 울었다는 것을 기록했다는 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부엉이나 올빼미가 우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세조실록』 3권, 세조 2년(1456) 1월 9일의 기록을 보면, 서운관(書雲觀, 조선시대 천문, 길조와 흉조 등을 관찰하고 예측하는 기관)에서 이틀 전인 1월 7일에 부엉이가 울었다는 것을 세조에게 아뢰자, 세조가 ‘지금부터 만약 부엉이기 울어도 아뢰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것을 보면 세조 이전까지 조선시대에 부엉이나 올빼미가 울면, 관청에서 왕에게 보고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부엉이나 올빼미가 우는 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부엉이나 올빼미의 경우 흉조(凶鳥)로 분류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고가 쓴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처음 등장해서 “배은망덕하고 흉악한 인물”을 비유할 때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된 “효경(梟獍)”에서 “효(梟)”는 올빼미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올빼미가 자신의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당시 중국의 속설이 자리 잡고 있다.(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전해진다.) 효(孝)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는 용납이 되지 않는 짐승이었고, 이것이 올빼미를 흉조로 분류하게 된 계기라는 예상이 든다.

조선시대에 부엉이나 올빼미가 울면 불길한 것으로 여겼던 모습은 그 때 취한 조치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지배층은 부엉이나 올빼미가 울면 해괴제(解怪祭, 괴변을 막고 괴이한 일을 풀어주는 의례)를 지내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왕이 거처를 옮기는 일까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부엉이가 울었다고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임시 거처로 옮겼다는 것과 비슷한데, 하물며 전제군주정 시대에 왕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그 의미가 더 컸다. 또한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고 불교를 통제했던 조선시대에, 부엉이가 울었다는 이유로 승려들을 모아 불경을 외라고 시켰다.

심지어 세종은 부엉이가 울자 군사들에게 부엉이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1424) 3월 3일 기묘 6번째 기사], 세종 16년(1434) 7월 24일에는 또 부엉이가 울자 세종이 부엉이를 다 잡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다그쳐서 호위군인 금위군으로 하여금 잡게 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 군인인 대호군(大護軍) 최보인(崔寶仁)에게 각 관청의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부엉이를 잡도록 명령했다.[『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1434) 12월 11일 갑인 3번째 기사]

부엉이가 우는 것은 정말 불길한 징조를 알려주는 일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런데 『사이언스 타임즈』의 2009년 6월 5일자 기사인 「부엉이에 얽힌 동서양의 비밀 (하)」에 따르면 “5차례의 부엉이 울음 중 3차례가 1453년(단종 1) 9월에 집중되어 있다.”고 언급했고, 이어서 10월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김종서를 비롯한 대신들을 죽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부엉이가 운다는 내용은 중종 때까지, 올빼미가 운다는 내용은 세종 때까지만 등장하고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신이 타파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부엉이의 경우 중종 이후가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사림(士林)들이 본격적으로 집권하기 시작한 시기임을 고려한다면, 성리학 이외의 사상을 이단(異端)으로 강력하게 배격하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부엉이가 우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것도 미신으로 치부한 것이 아닐까 예상된다.

8월 늦더위가 한창인 시점에 우리는 납량특집을 보면서 더위를 잊곤 했다. 납량특집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을 생각해보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에서 밤이면 늘 부엉이나 올빼미, 그것도 아니면 소쩍새라도 울었던 것 같다. 혹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납량물에 부엉이가 울 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