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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의 그린라이트⑧] 스무 살의 사랑 I
안소연 칼럼니스트  |  soyeon110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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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5  11: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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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20대 중반일 즈음이었다. 라디오를 듣는데 양인자 선생님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김희갑 양인자 부부는 대한민국 가요사에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지만 가요프로그램에서 직접 만날 일은 흔치 않았기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KBS 2FM 정오의 희망곡.... 디제이는 오미희... 라는 게 내 기억인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의례적 인사가 오가고 디제이가 물었다.

이번에 따님이 결혼 하신다면서요? - 네

스무 살 밖에 안 된 따님의 결혼을 허락하셨어요. 걱정되지 않으세요? -

음.. 우리는 모두 스무 살 즈음에 사랑을 경험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죠. 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요. 스무 살의 사랑이란 정말로 특별하고 또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런.. 사랑은 스무 살에만 할 수 있어요. 저는 제 딸이 그런 사랑과 결혼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와우! 얼마나 멋진 말인가?!!

다시 오지 않을 스무 살의 사랑...

스물을 넘긴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양인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당시의 나는 내 대학 1학년 시절의 남자친구를 떠올렸었다. 나 보다 다섯 살 위, 별 볼 일 없는 대학(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의 복학생이었던 그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취준생이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취직이 쉬웠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진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시험을 보는 족족 미끄러졌고 그런 날들이 지속되자 나를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어느 날 나는 그가 나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준 뒤, 버스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청와대 뒷동네인 세검정, 그의 집은 관악산 부근 봉천동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되도록 그의 집과 우리 집 딱 중간에 있는 번화가 남영동에서 그를 만났고 거기서 헤어졌다.

한 달 용돈 10만원, 하루 3천원 꼴로 사용이 가능했던 나와 그의 데이트비용 내역을 보면

맥주 500cc 두 잔 1000원

노가리 안주 1000원

나의 식사대용 간식으로 거리에서 파는 찐빵이나 호떡 200원

그리고 가끔 은하수라는 담배를 300원에 사고 나면 서로의 버스비 외에는 남는 돈이 없었다.

흠... 쓰다 보니 갑자기 비루해진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척도는 사용하는 돈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일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이 좋았다. 맥주에 노가리만 먹은 건 아니다. 1000원하는 닭똥집에 소주를 마시기도 했고 돈까스에 커피로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그조차도 없을 땐 남이 장군이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자 난간에 걸터앉아 캔 커피를 마셨다.(지금은 온 동네가 문화재 보호구역이 되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지만 당시엔 홍지문, 세검정자, 백사실 계곡... 등이 모두 프리패스였다.) 지금은 사라진 남영동 성남 극장에서는 3천원으로 영화도 한 편 볼 수 있었다. 1988년의 서울 물가로는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어쨌든 3천원은 작은 돈이었고 그조차도 늘 내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그를 지치게 했던 모양이다. 그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늘어갔다.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안녕이란 말도 없이 헤어졌다. 아니, 그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싫어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나를 붙잡기를 바라고 그렇게 말했던 건데 그는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나는 뱉은 말을 지켜야했기에 그리움을 품은 채 세월을 견뎌냈고 그렇게 그가 잊혀가던 어느 날, 양인자 선생님의 인터뷰를 듣게 됐던 것이다.

글쎄... 당시에는 얼굴도 모르는 그 스무 살 아가씨가 부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셨고, 설사 아주 돈이 많으셨다 해도 스무 살 딸을 무일푼 취준생과 결혼 시켜 뒷바라지 할 마음은 없으셨을 거다.

그 방송을 들은 뒤로부터 십년쯤 후,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너무 살이 쪄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던 그는 그날 나에게 아주 비싼 밥을 사주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 때 나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저 사람은 지금처럼 부자가 되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몫,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

내 타이밍은 스무 살이 아니었던 거고

내 몫은 부자 남편이 아니었다.

내 타이밍은 지금의 아이 아빠를 내게 선물해 주었고

나름의 행복을 주었으며

덤으로 밤늦은 세검정자 안에서 캔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무 살의 기억을 아스라이 남겨주었다.

대개는 잊고 살지만

문득 떠오르는 스무 살의 사랑은 양인자 선생님의 말처럼 특별하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시절,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아, 스무 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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