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과 1948년 두고 격론 오가

▲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文 대통령, 2019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선언
보수야당, 1948년이 건국절이라며 크게 반발

헌법 전문은 건국시점 명확하게 밝히지 못해
내년 지방선거 개헌안 국민투표가 승패 좌우

문재인 대통령이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보수야당들은 계속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건국절을 이야기하면서 논란을 부추긴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는 해”라고 언급했다. 이는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못을 박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보수역사학계와 보수정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판단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절을 놓고 여러 가지 역사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 뒤 임시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건국됐다는 게 정설이고 제헌헌법에도 명문화돼있다. 그러나 보수진영 일각에서 임시정부가 국가의 구성요소인 ‘영토’와 ‘국민’을 갖지 못한 망명정부였다는 등 반론을 펴며 보혁갈등이 확산돼왔다.

보혁 갈등으로

사실 건국절 논란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1948년을 건국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진영에서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진보진영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와서 건국절 법제화 추진을 하면서 진보 진영은 엄청난 반발을 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학계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일었다. 이런 반발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하게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결국 건국절 논란이 더욱 증폭된 것이다. 그야말로 보혁 갈등이 건국절을 통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건국절 논란을 문 대통령이 일으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판단하는 것은 북한을 의식한 것이라면서 좌파 진영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더욱 크게 반발했다. 바른정당 역시 이 시점에서 왜 논란을 좌초했냐라면서 부정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 8·15해방을 기뻐하는 국민들의 모습(왼쪽)과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 모습 (오른쪽) ⓒ뉴시스

사실 건국절 논란은 역사학계에서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다. 역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느 시점을 건국으로 봐야 할 것인가라는 학술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역사학계는 뒤로 한 채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때문에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의 논의는 멈추고 역사학계가 건국절 논란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진보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어느 시점을 건국으로 볼 것인지 연구해서 정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보다 정치권에서 건국절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헌법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2년 뒤인 2019년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맞는 해라고 밝혔다. 따라서 2년 뒤인 2019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식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건국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 만약 건국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2년 뒤인 2019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식을 할 경우 그야말로 사회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그 기준은 역시 헌법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건국절 논란을 증폭시킨 이유는 헌법에 우리나라 건국의 시점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은 1987년 개정된 헌법이다. 현재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돼있다. 반면 제헌헌법 전문을 살펴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돼있다. 현재 헌법 전문과 제헌헌법 전문을 비교하면 제헌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해 명확하게 명시돼있다. 반면 현행 헌법 전문은 우리나라 건국의 시점에 대해 명확하게 명시돼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우리나라 건국의 시점이 명확하게 명시되지 못한 시기는 1962년 헌법 개정 때부터이다. 다시 말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개정된 헌법 전문부터 우리나라 건국 시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1962년 헌법 전문을 살펴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고 돼있다. 다시 말하면 제헌헌법 전문에 제시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 헌법 전문이 1987년 헌법에도 고스란히 담겨지면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불명확한 헌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담긴 헌법은 사라지게 됐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지만 직선제 개헌에 매몰되면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이 퍼져나가게 됐고, 보수 정당이 이를 역사적 논리의 무기로 삼으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헌법에 마련되지 못하면서 그 논란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보수진영은 1948년을 건국시점으로 삼음으로써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내려오는 보수정권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려고 하고 있고, 그 보수정권이 대한민국의 주류라는 점을 각인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헌안은 과연

때문에 20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명확하게 박아야 한다. 그러자면 개헌을 해야 한다. 현재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에서는 내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해서 국회 본회의 통과를 계획하고 있다. 개헌특위는 공론조사를 거쳐서 올 10월까지 쟁점을 정리해 국민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가지는 것으로 합의했다. 개헌특위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정부 형태’다. 대통령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을 놓고 어떤 정부 형태로 갈 것인가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문제는 개헌이라는 것이 정부 형태만 바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 넘게 사용한 헌법이기 때문에 헌법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기본권도 추가를 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다. 그리고 헌법 전문도 고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명확하게 못을 박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어느 진영의 논리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 논리냐라는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보수 진영은 1948년을, 진보진영은 1919년을 건국해로 주장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어느 시점이 건국해로 명시되느냐에 따라 향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게 되고, 보수와 진보 진영 중 어느 진영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느냐의 기로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뉴시스

더욱이 개정된 헌법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붙여진다.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된 헌법의 찬반 여부를 가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는 ‘건국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느 시점을 건국절로 볼 것이냐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결과가 달라진다. 만약 보수 진영의 입김이 강해서 개정된 헌법 전문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규정한다면 진보 진영은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보수 궤멸론까지 내세우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집권여당에게 몰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 건립일을 건국절로 동조하는 사람들은 집권여당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거꾸로 만약 개정된 헌법 전문에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규정할 경우 보수진영과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동조하는 유권자들은 보수 정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건국절 논란이 내년 지방선거의 가장 핫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승패 가른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무상급식이 이슈가 됐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박근혜정부 심판론이 이슈가 됐다. 지방선거는 총선과 달리 후보자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승패를 좌우하는 선거가 아니다. 어떤 이슈가 어떤 식으로 강타를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개헌 주민투표가 그 승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건국절 논란이 있다. 건국 시점을 두고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식의 헌법 전문이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헌법 전문을 놓고 유권자들은 격론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그 지방선거의 승패는 좌우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건국절 논란에 대한 여론몰이다. 오는 10월까지 공론조사 작업을 국회 개헌특위가 실시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개헌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건국절 역시 개헌의 내용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자면 문 대통령 입장에서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절이라는 내용을 개헌안에 담기 위해서는 여론몰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절 이야기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건국절 논란을 일으켜서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절로 규정되기 위한 사전포석을 깔아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여론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 승리의 포석을 깔아두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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