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포법(戶布法) 반대 속에 드러나는 양반의 특권의식
[칼럼] 호포법(戶布法) 반대 속에 드러나는 양반의 특권의식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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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호포법의 정확한 뜻은 1호(戶)마다 면이나 베를 세금으로 내는 제도다. 이 법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시행과 중단이 반복되었고, 논란도 많았던 세금 제도다. 고려 충렬왕 때 시행됐다가 조선 태종 때 폐지됐다가, 임진왜란 당시 부족한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류성룡에 의해 잠시 시행됐다. 그리고 숙종 때 다시 시행이 논의되었고,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의 결단에 의해 강력하게 시행됐다.

여기에서 굳이 “정확한 뜻”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법이 “양반에게도 군역을 부과하는 법”이라는 오해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호포법에서는 군포를 걷는 대상을 1호, 즉 한 가구로 집계했기 때문에 양반 계급도 군포 납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호포법은 양반에게 군포를 물리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군역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법이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세금 제도 상 양인(良人)은 모두 역(役)의 의무를 져야 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노비는 양인이 아니라 세금을 내지 않았고, 양반의 경우 성균관 유생이거나 서원에서 과거 준비를 한다는 등의 각종 이유로 의무를 면해 줬다. 그러다보니 소수의 양인이 납부해야 되는 옷감의 양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중간 관리들이 군포를 착복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 결과 국가에서는 부족한 세수를 거두기 위해 군포를 피해 도망간 사람의 친척이나 이웃에게 대신 군포를 물리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군역의 의무가 없는 어린 아이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군포를 징수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역 부과의 단위를 사람에서 호로 조정하는 논의가 생긴 것이다.

『숙종실록』을 살펴보면, 윤휴(尹鑴)가 호포법 시행을 주장했을 때 여러 가지 핑계로 무장한 반대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숙종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흉년 때문에, 여러 법조항이 잇따라 생기기 때문에 등 이유도 다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 “백성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으로 귀결됐다.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단위를 제대로 설정하고, 법을 세분화해서 군역을 부과하자는 호포법이 백성들을 부담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지금으로서도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호포법을 반대한 것은 양반들이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숙종 37년(1711) 우의정(右議政) 조상우(趙相愚)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 법은 옛날에 시행했어야 할 것이고 오늘날에는 시행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규모와 명분이 징포(徵布)하는 법을 중하게 여기며, 납전(納錢)하는 규례는 평민에게만 미치고 사족(士族)에게 미치지 않은 지 이제 수백 년이나 되었는데, 더구나 전의 일로 말하면 일찍이 태종(太宗) 때에 고려말의 호포법(戶布法)을 특별히 명하여 폐지하셨으니, 성의(聖意)를 대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폐단을 범연히 논하면 참으로 치우치게 무거워서 고르지 않겠으나, 그 진실을 천천히 구명하면 상하가 오히려 유지할 수 있고 기강이 오히려 매우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은 반드시 사족(士族)에게 이 근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 8월 17일 갑술 2번째 기사

위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호포법을 시행할 경우 양반들에게까지 군역의 의무가 부과되고, 그러면 소위 “반상의 법도”가 무너진다고 주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반이 군역을 수행하지 않기 위해서 호포법에 반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이 때 등장했던 “유포(儒布)”라는 말이다. 유포는 유자(儒者), 즉 양반 계층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을 뜻하는데, 특히 “세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유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호포법 시행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허적(許積)이 “유포(儒布)의 말은 지극히 근거가 없다”고 말할[『숙종실록』 5권, 숙종 2년(1676) 1월 19일 임인 1번째 기사] 정도였으니, 당시 “호포법은 유포”라는 인식이 얼마나 팽배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숙종 때 호포법 논의 속에서 기득권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숙종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백성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들이 누렸던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세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성직자의 핑계를 대면서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많이 닮았다. 숙종 당시 양반 역시 성리학 지식으로 무장하고 각종 의례를 수행하는 “전문종교인”의 일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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