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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친일인물의 후손들은 친일행적을 통해 축적한 부와 권력을 기반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간다.

제헌국회는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산됐다. 친일청산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친일인물의 후손들이 언론, 기업, 고위관료와 정치인 등의 자리에서 권력을 쥐고 있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한 문화재단에서 선조의 친일 행적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대신 업적을 기리는 상을 제정해 수년째 시상을 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바로 우리나라 재계 순위 1위 기업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인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외할아버지인 고(故) 홍진기를 기념하는 ‘홍진기 창조인상’이다.

유민문화재단 “창조적인 삶 실천”
업적 기려 ‘홍진기 창조인상’ 제정

“1917년 그가 태어난 조국은 식민지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일본인보다 총명한 청년으로 자랐다. 경성제일고교를 거쳐 당대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던 경성제대 문학부에 진학함으로써 그 생애 첫 발을 법조계에 내딛게 된다.”

“그의 생애는 험난한 시대 상황을 뚫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온 개척자의 삶, 그것이었다. 앞을 내다보는 예지와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철저함으로 언제나 그 스스로 변화를 선도하는 선구자가 됐던 것이다.”

유민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 실린 유민(維民) 홍진기에 대한 소개글이다. 유민문화재단과 중앙일보는 지난 2010년부터 ‘홍진기 창조인상’을 제정해 과학·사회·문화 등 3개 분야에서 개인 혹은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인기를 끈 가수 싸이, ‘알파고’와 겨뤄 유일하게 승리를 기록한 이세돌 9단 등이 수상하면서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 되기도 했다.

유민문화재단에 따르면 이 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활동하며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던 홍진기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생전 홍진기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과와 가치를 일궈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재를 발탁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까지 올렸는데…
부정선거 항의 시민들에 발포 명령도

그런데 각종 기록 등을 통해 홍진기의 삶을 살펴보면, 친일 행적과 독재정부 옹호 등이 눈에 띈다.

1917년생인 홍진기는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2년 3월 경성지방법원 사법관시보로 법조계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1944년 9월 전주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돼 해방될 때까지 근무했다. 이 경력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청 법제부 법제관으로 활동하던 홍진기는 해무청장, 법무부 장관 등을 거쳐 1960년 3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된다. 그는 장관 재직 중 4·19 혁명을 맞게 된다.

4·19 혁명 당시 이승만 정권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지시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로 인해 체포된 홍진기는 1961년 9월 30일 군사법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군사법정은 이 판결에서 ‘서울시내 일원의 발포명령자는 홍진기’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63년 8월경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친일행적과 독재정권 옹호 등 이력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유민문화재단은 홍진기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공로만을 언급해 미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진기는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해명하거나 사과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민문화재단은 ‘친일 행적 등을 미화하고 상을 제정한 것 아니냐’는 본지의 질문에 “특별이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공식적인 답변을 거절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친일인물 기념상이 제정되는 것에 대해 “상을 만들어 시상하게 되면 이를 통해 기득권이 새롭게 형성된다”면서 “수상자체가 중요한 이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을 제정하면서 친일인물에 대해 미화하게 된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국내 친일인물 기념상 통계를 조사하기 위해 계획 중에 있다”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자체 등이 진행하는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들이다. 후손, 개인 등이 친일인물 기념사업을 많이 해 이런 것들을 포함하면 그 수가 너무 많아 대략적으로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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