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조건부수급자 고(故) 최인기님의 사망사건 국가배상 소송 변호인단 및 유가족 기자회견

▲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30일 오전 열린 ‘조건부 수급자 故 최인기님의 사망사건 국가배상 소송 변호인단 및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 홍정훈 간사(왼쪽에서 세 번째)와 민변 공인인권변론센터 서채완 변호사(우측에서 세 번째)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결국 나라가 죽였습니다”

일하기 힘든 지병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에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근로활동을 하던 중 사망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자활근로를 강요해 고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등 시민사회단체와 고인의 유가족 곽혜숙씨는 30일 서울 서초구 민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최인기님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근로활동 강제하는 복지제도
조건부수급자 죽음으로 내몰아

유가족의 소송대리인 공감 박영아 변호사에 따르면 좌석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최씨는 심장 질환으로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인공혈관 이식 수술을 받았다. 두 차례의 대수술에 가계가 어려워지고, 증상도 호전되지 않은 최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게 됐다. 수원시는 최씨를 근로능력이 없는 일반수급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위탁된 후인 2013년 말 최씨는 갑자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조건부수급자로 분류됐다. 2013년 분당서울대병원 전문의가 작성한 최씨의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에는 최씨의 건강상태가 근로능력 수행에 제한이 따르는 3단계 혹은 4단계에 해당하는 정도의 질환이 있다고 기재돼 있으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가장 양호한 상태인 1단계로 평가한 것이다.

결국 최씨는 계속 수급을 받기 위해 인근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다가 취업 3개월 만인 2014년 5월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쓰러진 뒤 같은해 8월 결국 숨졌다.

박 변호사는 “조건부 수급자에게 부과되는 조건은 불이행하면 모든 급여를 박탈당할 수 있기에 수급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보장기관은 수급 조건을 제시함에 있어 건강상태, 나이, 근로활동 여부 및 기간 등 전반적인 상활을 고려해야 할 배려와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며 “그러나 공단과 수원시장은 주의의무를 태만히 한 자의적이며 형식적이고 안일한 평가 및 판정과 처분으로 최씨를 무리하게 취업하도록 내몰았고 결국 지병 악화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곽씨는 “(공단과 수원시가) 사람을 사지로 내몰아놓고 ‘원리원칙대로 했다’고 주장한다”며 “연금공단과 근로능력평가 기관을 용서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 故 최인기씨 유가족 곽혜숙씨,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 ⓒ투데이신문

복지의 경계에서 밀려나는 수급자
기초생활보장제도 반드시 개선돼야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기초생활수급비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 금액인데 조건 불이행 시 이를 삭감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수급자의 권리가 유린당하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큰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번 소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기초생활보장을 가장 왜곡하는 것이 근로능력평가제도”라며 “자활을 통해 탈수급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 밖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방출시키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근로능력평가제도를 반드시 없애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양질의 자활사업을 강화하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근로능력은 임의의 수치 합산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방적인 근로능력 평가는 복지가 필요한 빈곤층을 더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건부 수급은 근로능력과 관계없이 기초생활을 보장한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와 모순된다”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조건부과는 사실상 강제노동이며, ‘근로빈곤층 취업우선 지원사업’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변은 유족을 대리해 최씨의 3주기였던 지난 28일 수원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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