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길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면 간단히 무시하고 지나치면 된다. 하지만 불특정한 대중과 한꺼번에 만나는 온라인에선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SNS 서비스에는 차단 기능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바란다. 오랫동안 그것은 물리적 거리의 한계 안에서 요구되고 받아들여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은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한 집에 사는 가족 사이에선 애정의 나눔이 그 즉시 이루어지지만, 마을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사는 사람들은 그 보다 오래 걸려 서로를 얽어간다. 즉 인간관계에 깃드는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는 시간이다.

오늘날엔 지구 반대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정보화사회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인터넷망을 이동하는 정보는 그 정보를 대하는 개개인의 감정도 전자의 속도로나른다. 우리는 그만큼 타인의 감정에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몰입하게 된다. 정보화사회는 사람들 사이를, 정확히 말하자면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만든다. 감정이 오고 가는 속도가 빠르다.

감정의 교류가 빠른 환경에서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반응만이 느리다면 집단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보기술에 기반한 소통도구들은 타인의 관심을 끼니로 삼는다. SNS 사용자들은 더 많은 ‘하트’와 더 많은 ‘좋아요’를 갈구한다. 감정과 감정은 속도경쟁을 하게 되고,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솔직하고 과감한 표현이 유용해진다. 인터넷 세상은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을 좀 더 쉽게 용인하기에 감정 자극이 숱하다. 이 때 겪는 피로감은 어떠한 감정이든 다시금 직접적이고 크게 다가오도록 이끌어 피로를 가속화 시킨다. 이를테면 정보의 홍수는 감정의 홍수를 일으킨다.

현대인이 정보화 시대를 맞닥뜨리며 겪는 당혹감은 여기서 발생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서로를 챙길 시간이 없다. 한 명의 사람에게 필요충분한 관심과 애정은 사람사이를 느리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보기술은 개인의 감정에 여유를 주지 않고 더욱 속도를 채근한다. 감정의 홍수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아수라장을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 여전히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면 그만큼의 결핍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와야 할 애정이 오지 않을 때 결핍은 사람을 갈망 상태로 만들고,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응당 자신에게 와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오늘날 인터넷을 떠도는 감정 중 분노의 일상적인 극대화는 이런 현실에 기반한다. 각종 SNS나 매체의 댓글에서 자주 목격하는 느닷없는 욕설에는 자신을 향한 사회의 애정과 관심이 휘발하듯 스쳐가며 생긴 결핍이 깃들어 있다. 물론 결핍을 만든 건 여유를 허락치 않은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순환을 막을 수 없을 때,심리적 둑이 무너져 분노의 형태로 비명을 지른다.

사람은 스스로를 낭패로부터 구할 수 없어지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내면에 공감해 주길 바란다면 차라리 도와달라는 고백이 더 알맞겠지만, 자신을 지키려는 강한 저항은 분노에 동참하길 바라는 요구로 바뀐다. 최소한 온라인에서의 맥락 없는 분노표출은 일종의 도와달라는 요청이다.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생존을 구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성이 마비된 분노를 게시하여 공감을 종용하는 행위는 단순히 관심을 갈구하는 선을 넘어 분노를 구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에서 분노공감의 땔감이 되는 무수한 혐오가 쉽게 전시되고 갈등을 빚는다. 진실로 얻기를 바라는 것은 애정이지만 행위는 정반대의 공격으로 나온다. 그러니 어떤 면에선 자신의 상처를 무시하고 내버려두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좌절되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아마 얼마전 SNS에서 내가 누군가를 차단한 것도 그의 상처와 좌절을 무시하는 범주에 들 것이다.

온라인 세상은 현실 속 대중의 심리적 거리를 압축해 감정을 강화한다. 따라서 여러 인터넷 매체와 댓글에서 목격하는 분노는 우리사회가 희미하게 가려 둔 이면을 대변한다. 분노를 양식 삼아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온라인 문화의 창궐은, 현실을 현미경으로 증폭해 보여주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쩌다 분노마저 구걸해야 하는 세상에 살게 됐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 사실을 외면하고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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