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A 인권단체 사무국 활동가 전원 사퇴를 통해 본 조직 내 민주주의를 위한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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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8월 10일, 국제 인권제도에 대한 국내의 인식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활동하는 A 인권단체의 사무국 활동가 전원이 조직의 반인권·비민주적 운영 실태를 지속해 온 대표자들을 고발하며 입장문을 발표하고 사퇴했다. 이들이 입장문을 발표한 후 48개 인권단체와 458명의 개인 및 활동가들이 연대하고 나섰다.

전(前) A단체 사무국 활동가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7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 한터홀에서 ‘A 인권단체 사무국 활동가 전원 사퇴를 통해 본 시민사회/인권단체 조직 내 민주주의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인권조직 내 수많은 문제들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발제자로 나선 A단체의 홍승기 전 사무국 활동가는 이사회에서 성명서 남발 자제, 정치적 중립성 등 모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활동을 제한해 인권단체 활동가로서 좌절감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또 “국제기구에서 기준으로 제시하는 사회권 규약에 근거해 연속된 휴가 보장을 얘기하면 ‘그것은 국제기구의 기준이고, 우리는 그에 맞출 수 없다’며 논의를 차단했다”면서 “활동가 처우나 단체 운영 전반에 활동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대표진 또는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홍 전 활동가에 의하면 이 단체의 이사회는 활동가들에게 해고위협과 권고사직을 남발하고 조직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활동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고성·막말 등의 언어폭력을 자행했다.

또 일부 명망가들이 ‘인권전문가’라는 타이틀로 단체를 사유화하고 내부 운영과 재정을 방치했으며 이사회에서 독단적으로 의사결정 후 불복 시 비난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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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제자로 나선 김지애 활동가는 이주민 인권 운동을 하는 B단체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 활동가는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는 내게 노동자가 아니라 활동가가 되라고 한다”며 “나는 노동자로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단체에서 활동가로 헌신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활동가의 성장은 간데없이 노동권만 침해받았다”며 “B단체는 활동가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 판쳤고, 참다가 문제를 제기하면 ‘단체의 가치에 동의하지 못한다’, ‘영리 마인드를 못 버렸다’며 활동가로서 자질을 문제 삼았다”고 증언했다.

김 활동가는 “아마 많은 활동가들이 처해있는 모순적 상황일 것”이라며 “스스로 활동가이자 노동자로 정체화할수록, 또 단체의 규모가 작고 체계가 없을수록 더욱 애매한 상태에 빠진다. 조직규모와 운영 형태, 조직 분위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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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가 모두 끝난 후 첫 토론에 나선 ‘참여연대’ 이조은 활동가는 자신이 2013년까지 일했던 C단체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2014년 1월, C단체 활동가 7명 중 6명이 집단 사퇴했다. 다른 이유로 함께 사퇴하지 못한 활동가 1명도 이후 사퇴에 동참했다.

2013년 C단체는 전시담당 활동가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채용 확정 당일에서야 지원자에게 비정규직 채용이라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몇 달 후 이를 알게 된 이조은 활동가가 조직 내 비정규직 채용에 문제를 제기하자 D상임이사가 이조은 활동가에 대한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이를 수용할 때까지 임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사무처에 지시했다. 사무처 활동가들은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하고 강행 시 동반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D상임이사가 일방적으로 사업 전면개편과 사무처 축소 계획을 밝히고 사무처 활동가 대부분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더 이상 대응이 힘들다고 판단한 사무처 활동가들은 시민단체의 사유화 문제, 조직 내 민주주의, 사태의 재발방지 등을 호소하는 성명을 내고 집단 사퇴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조은 활동가는 “3년 후인 2016년, C단체에서는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또 A단체, B단체 등 비슷한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시민사회단체 내에서의 활동가들의 경험과 고충을 익명으로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의 운영자 혜만 활동가는 “활동가들의 활동이 사회 뿐만 아니라 활동가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어야 한다”며 “시민사회 활동가가 행복할 때, 우리 사회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쥬리 활동가는 “활동가들의 이런 문제제기는 누군가가 늘 해왔던 말”이라며 “이런 조직들의 열악한 상황을 운동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토론자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이승훈 활동가는 “활동가의 노동자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노동감수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조은 활동가는 마지막 발언에서 “매번 하는 농담 중 하나인데 ‘인권단체에 인권 없고, 복지단체에 복지 없고, 평화단체에 평화 없고, 노동단체에 노동만 있다’는 자조 섞인 이 말에 더 이상 웃으며 넘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우리 내부에서 먼저 실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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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단체의 이사회는 지난 8월 17일 공식 의견서를 내고 “사무국 전 활동가들이 입장문을 통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담아 A단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대표단의 명예를 손상한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그간 사무국의 파행적 운영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데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사무국 전 활동가들의 문제제기에 상당부분 왜곡된 사실이 포함돼 있으나, A단체가 진일보한 인권단체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애정 어린 비판을 해준 것으로 생각한다”며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지 못한데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숙하겠다”는 의견을 표했다.

본지는 D상임이사, 그리고 B단체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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