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기자는 지난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택시운전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5·18민주화운동의 참혹함을 직접 느끼고 당시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현장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광주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한 친구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그 친구가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에 기자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5·18국립묘지도 가는거야? 이야, 9년 만에 광주 다시 가보는 거네. 너 거기 추모 포스트잇도 붙이고 왔잖아”

“내가?”

그렇다. 기자는 광주에 가봤다는 사실도, 5·18국립묘지를 방문해 추모를 했었다는 사실도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까마득하게 몰랐을 것이다. 단순히 기억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이고,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무관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자와 같은 무관심이 모이고 모여 끝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늦었지만 최근 기자처럼 <택시운전사>를 보고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3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해결되자 않았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이 마치 계획됐던 것처럼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군에 출격 대기 명령이 있었으며 전투기에 폭탄을 장착해 광주 공습을 준비했었다’, ‘계엄군이 광주교도소 내에서 다수의 사망자를 암매장한 후 은폐했다’는 등의 증언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라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 이전에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5·18민주화운동을 몰랐던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없던 사실이 새롭게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사실이 이제야 드러났다. 그리고 진실을 밝혀내지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원치 않지만 우리는 5·18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가해자가 됐다. 

5·18민주화운동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장훈명(65·당시 택시운전사)씨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취재를 마친 날 저녁 장씨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늦기는 많이 늦었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5·18민주화운동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으면 좋겠어. 그래야 먼저 간 동지들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장씨의 바람이 이뤄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정부가 5·18민주화운동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제 그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끝내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속죄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날까지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37년, 148번 계절이 바뀌고 32만4120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광주의 시곗바늘은 여전히 1980년 5월 소중한 가족과 친구, 이웃, 모든 것을 앗아간 그날에 멈춰있다. 하지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고 했던가, 멈춰버린 광주의 시계가 깨어나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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