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오래전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일주일에 하나씩 뉴스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던 어느 날,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던 작가로부터 조금은 뜬금없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기자님께서 보내주시는 기사 초고에 비문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한편으로는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당시 내 기사의 문장이 이상하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차였다. 나는 방송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내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물론 잘 쓴다고 자부했던 적 역시 없었지만 적어도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특정 아이템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서 화면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 이전까지의 글쓰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PC로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녹음실에 들어가 프린트한 원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니 입에 자연스럽게 붙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분야 역시도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과학기술 쪽이었기에 기사 작성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만 갔다. 내용과 형식, 농구로 치면 공격과 수비가 모두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나의 첫 기사는 초전도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당시의 나로서는 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글로 된 외계어 같았다. 대전까지 내려가서 해당 교수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지, 기존에 비해 어떤 혁신이 이루어진 것인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뉴스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내 기사를 내가 읽어봐도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보도 자료와 교수님의 설명을 영혼 없이 나열한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방송이 나가고 나서 방송국 내부 피드백이 전달되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방송 내용만으로는 초전도체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매번 전문적인 내용에만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형식에 대한 지적은 용케 피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두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드디어 글쓰기 부분에도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작가에게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좀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작가로부터 돌아온 답문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제가 기자님처럼 남자도 아니고 나이도 네 살 어리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서 몇 년 동안이나 경력을 쌓으며 일했습니다. 제 분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요. 내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해 항변하는 내용이었다.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억울하면서도 아찔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작가가 나보다 네 살 어리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이후 일부러라도 상대의 나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대가 몇 살이 어리건, 학교 후배이건 관계없이 존칭에 존댓말을 사용했다. 내가 특별히 수평적 인간관계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일을 하는 것이 편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졸지에 상대를 여성이며 나이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나 하는 그런 나이 많은 남성이 되어버렸다. 

최초에 받았던 메시지를 다시 살펴봤다. 처음에는 읽어내지 못했던 ‘분위기’가 문장들 사이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건 조심스러움이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에게, 그것도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고 있을 남성에게 바로 그 자부심의 핵심을 찌르기까지, 아마도 적지 않은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니 의도와는 무관하게 당사자에게는 꽤나 공격적인 태도로 읽혔을 듯싶었다.

그 다음에 다시 문자를 보냈는지 아니면 전화를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거라곤 최대한 조심스레 답을 보냈다는 것.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제 기사의 문장들이 이상하다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그런 문자를 보내주셔서 도움을 청하고자 그리 답장을 보냈습니다. 오해를 하시게 만들어 굉장히 죄송합니다.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문장 연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답을 보낸 후 나를 돌아보았다. 단순한 메시지에서조차도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그때까지의 나는 대체 어떤 글쓰기를 해왔던 것일까, 내 자신에게만 자족적인 글을 썼던 것은 아닌가, 혹은 특정 집단 내부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경도된 글만 써왔던 것은 아닐까, 나아가 나는 시청자(독자)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많은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위의 사건을 지나칠 수가 없다. 이날을 전후로 해서 글쓰기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변화의 기점은 이렇듯 전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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