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내가 최초로 읽은 미스터리 멜로물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사람>이다.

극 중 눈사람은 어쩐 일인지 난로를 사랑한다. 제 생명마저도 녹여버릴 치명적 매력에 반한 걸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바보 같이 왜 하필 난로람?

페이스북에 친구 진석이가 올린 사진을 보다가 그 동화 생각이 났다.

“우리 딸 예쁘죠?”

진석이(가명‧49세)는 아이가 셋. 그 셋이 모두 아이돌 뺨치는 출중한 외모를 가졌다.

지난 십년 간 한두 번 쯤 봤던가...? 서로 사는 게 바빠 못보고 지냈지만 SNS상으로 가끔 소식을 접하는데 그게 죄 자식 자랑이다. 본인 얘기는 한마디도 없지만 자식 자랑 늘어진 걸 보니 잘 사나보다, 할 뿐이다.

그 세 아이는 진석이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모두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벌써 17년 전이다. 탄탄한 공기업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청년 진석이가 아이 셋 달린 이혼녀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자주 몰려다니던 친구들은 모두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난감했었다. 용기 있는 몇이 미쳤냐고 말문을 뗐고... 돌아가며 뜯어말려 보다가... 저러다 말겠지... 기다려도 보았다. 그러나 결국 진석이는 모두의 반대를 들은 척도 안 하고 덜컥 살림부터 차렸다.

친구들도 기가 막힌데 진석이 어머님은 어떠하셨을까. 진석인 아버지가 안 계셨다. 모 대학병원 간호사였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혼자 진석이와 여동생을 키우셨다. 안정된 직업이었지만 그래도 1970년대에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건 녹록치 않았을 게다. 그렇게 혼자 힘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귀한 아들 진석이는 어머니 흘리신 땀이 헛되지 않는, 더없이 순하고 착한 모범생 아들로 자랐다.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해도 언제나 히~ 하고 웃기만 하던, 순하디 순한 진석이. 그런 진석이가 어머니와 의절하다시피 그, ‘애 셋 딸린 이혼녀’에게로 달려가는 걸 보며 우리는 궁금했었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물론 진석이의 아내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사정상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명문대 미대를 다니던 재원이고 당차고 씩씩한 것이 진석이의 마냥 사람 좋은 부분을 채워주니 그 또한 좋았다. 그래도... 그래도...

어느 날 모임,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진석이가 먼저 일어서 나가자 푸념처럼 누군가 한마디 했다.

“어머니 가슴에 왜 저리 못을 박아, 연락도 안하고 지낸다면서?”

“그러게... 이해를 못하겠어...”

모두들 한마디씩 궁시렁 대는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끝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그래서 모두가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부러워해 온 한 친구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뭘 이해를 못 해.

자기 엄마가 그렇게 사셨잖아. 혼자서 애들 키우며...”

아, 똑똑한 영혼... 예술가의 통찰력은 확실히 일반인의 그것을 넘어서는 거구나!

그 한마디로 나의 궁금증은 모두 해결되었다.

진석이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보았던 거구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 어머니.

그 어머니가 그녀 안에 들어있었던 거구나.

ⓒ게티이미지뱅크

안데르센의 동화 속 <눈사람>의 사랑도 다르지 않다.

따스한 봄이 오자 서서히 서서히 녹아내리던 눈사람의 잔해 속에서 집주인이 겨우내 찾았던 난로 부지깽이가 발견된다. 눈사람은 제 안에 숨겨진 부지깽이 때문에 사랑해선 안 될 난로를 그토록 흠모했었던 것이다.

다행이 진석이라는 눈사람과 그 아내는 녹아내리지 않고 서로 잘 살아가고 있다. 다섯 식구 더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10년이나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진석이와 어머님 관계가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내 오랜 친구 진석이네가 이 글을 본다면, 그런데 아직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서먹한 채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국 그대들을 맺어준 것은 어머님의 희생과 사랑이었다고.

이번 추석 연휴에는 어머님께 큰 절 올리러 다녀오라고.

그런데 아마도 진석이는 이미 그렇게 해오고 있었을 게다. 온 정성을 다해 진석이를 키운 어머님의 고결한 사랑과 희생의 정신이 진석이 안에 단단히 박혀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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