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 ‘남한산성’과 다르지 않은 현실 정치
[칼럼] 영화 ‘남한산성’과 다르지 않은 현실 정치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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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추석은 연말연초, 방학 기간과 함께 영화계로서는 대목인 기간이다. 더군다나 10일이라는 긴 연휴를 건국 이후 거의 처음으로 맞이하다보니 영화계로서도 대작들을 많이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추석에 화제작들이 꽤 많이 상영되었는데, 그 가운데 역사와 관계있는 영화가 바로 “남한산성”이었다.(경쟁작인 영화 “범죄도시”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니 역사와 관계가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영화 “남한산성”의 시나리오는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그 원작으로 하여 작성되었다. 소설과 영화 모두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이야기의 소재이다. 병자호란은 명청교체기, 중국 대륙의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한 청(淸)이, 계속해서 명(明)에게 사대(事大)하면서 정묘호란 때 약속했던 형제의 맹약을 지키지 않는 조선을 침략한 사건이다. 청의 대군이 침략한 이후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갔고, 청의 군대는 북방을 수비하던 조선군과 직접 교전을 피하면서 남한산성으로 진격해서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조선군은 40일 동안 남한산성에서 농성했고, 결국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일컬어지는 조선의 항복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후 조선은 명이 아닌 청과 군신(君臣) 관계를 맺었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왕실 인사, 삼학사(三學士)로 대표되는 조선의 신하를 비롯한 약 오십 만명의 포로가 청으로 끌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고 있다. 중앙대학교 이대화 교수는 그의 SNS에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어사 이시백이 실제로는 유능한 문신으로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겸비한 인물일 뿐,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실제 전장에 나선 사람을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서 이시백에게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무관으로서의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보완장치가 필요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청의 고위 장수들이 청 태종(홍타이지)에게 “칸”이라고 부르는 것은 청이 이미 제국임을 선포한 시점에서 사실과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 높음도 지적했다.

무기 체제에 대한 사실 검증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청의 군대에서 남한산성을 향해 발포했던 “홍이포(紅夷砲)”는 인마(人馬)를 살상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성을 부수거나 배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 포탄이 폭발하면서 그 파편이 살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큰 쇳덩어리 포탄이 날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있는 진법에는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했으니,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대화 교수는 ‘전술과 무기 묘사는 괜찮았으나, 조총과 활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진법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투장면은 언제쯤 가능할까?’라는 말로 영화 속 전투 장면 묘사나 무기 체제 표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영화에서 보이는 사실 관계의 오류 가능성은 그 원작이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겨레21』에서는 「‘남한산성’이 거세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화의 감독이 소설 속 김상헌과 최명길 사이의 논쟁에 매료되어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 영화 “남한산성”의 흠결의 출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삼전도의 굴욕”이 인조의 정치적 실패가 아닌 인조의 정치적 고뇌에 따른 결단으로 묘사한 것, 청에 끌려간 50만명의 포로, 특히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침묵은 “역사의 피해자’라는 운명의 형식을 불가피하면서도 특권적인 것으로 승인·정당화하고자 하는 남성 주체의 정치적 욕망 및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필자의 생각에 특히 김상헌이 칼로 자결한 것(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김상헌은 식음을 전폐하고 목을 메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청에 압송되었다가 돌아와서 82세에 사망한다.)으로 묘사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판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으나, 포로들에 대한 자료의 부족, 당시 정치가 남성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묘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상당한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답답하다.’는 관객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훈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그대로 대사로 쓸 것을 요구했다는 당시 김상헌과 최명길 사이의 성리학적 명분론과 화이(華夷)의 관점에서는 치열하지만, 도탄에 빠진 민중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 답답한 논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칼럼은 상지대학교 정대화 총장대행의 글로 마무리하겠다.

제 나라와 제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진정한 나라가 아니다.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에 이르는 그 참혹한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았던 백성들을 위해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 잘못이 교정되지 못해 결국 20세기의 망국과 분단과 독재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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