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카드 꺼냈지만 본전도 못 찾아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뉴시스

‘중도대통합’ 내건 안철수, 일주일 만에 철수
호남 중진 반발로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어

당내 갈등 계속 남아있어…친안계 vs. 호남 대결
중도대통합, 내년 지선 앞두고 언제든 열려있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주도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이 결국 일주일 만에 잠잠해졌다. 통합론이 나오면서 당내 갈등이 표출됐고, 이로 인해 당이 공중분해 위기까지 갔지만, 전날 호남 중진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합 대신 정책·선거연대로 가닥을 잡으면서 일단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이번 철수로 체면을 구겼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주도하는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결국 없었던 일이 됐다. 일주일 전만 해도 국민의당 산하 연구기관인 국민정책연구원이 비밀리에 통합과 관련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른정당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공식적으로 통합 논의에 불을 붙였고, 유승민 의원 역시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찬성 의사를 보였다. 안 대표 역시 계속해서 통합의 군불을 지폈다.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국민의당 안철수(오른쪽)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뉴시스

안철수의 도박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다급함에서 나온 제안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가 보수대통합을 명목으로 한발한발 가까워질수록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자강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었다. 바른정당 자강파로서는 자당 통합파가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게 되면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된다. 이 같은 위기감에 바른정당 자강파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했다. 국민의당의 경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가 보수대통합을 하게 되면 원내 1당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에 자당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과 통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 대표에게는 다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던진 도박이 바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이었다. 결국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을 꺼내 들면서 국민의당 소속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 됐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도박이었다.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이들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호남 민심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바른정당이 비록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와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정당이라고는 하지만 호남 정서와는 완전 별개의 정당이다. 호남 민심이 바른정당을 수용할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발하고 나섰다.

또한 바른정당 내부에서도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바로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국민의당, 특히 호남 의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고수하는 인물들이다. 반면 바른정당은 대북 강경 노선을 취하는 정당이다. 서로 정체성이 맞지 않다. 때문에 만약 통합하게 되면 이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방법이 있긴 하다. 호남 의원들을 버리고 통합하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통합의 조건으로 국민의당에 박지원 전 대표를 버려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유승민 의원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정황상 바른정당 내부에서 박지원 전 대표를 버리는 카드로 생각했다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안철수 대표가 박지원 전 대표를 버리면서까지 바른정당과 통합했을 경우, 과연 어떤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는 호남 민심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안철수의 철수

여기에 바른정당이 오는 11월 13일 전당대회에 신경 쓰기로 하면서 당 내부에서도 통합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게다가 국정감사 기간인 상황에서 국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정계개편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안철수 대표는 더 이상 통합론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결국 안 대표는 한발 양보하는 형국을 취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대신 정책·선거연대로 급선회한 것이다. 안 대표로서는 호남을 버리고 바른정당과 통합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통합론을 당분간 접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5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이 문제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미 전날 호남 중진 의원들을 만나 정책·선거연대로의 선회로 귀결했기 때문에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안 대표와 호남 의원들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 형국이다. 특히 박지원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은 상당히 마음이 상해있는 상태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자신들은 버리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마음고생이 상당했다. 안 대표에게는 이 갈등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봉합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왼쪽 두번째) 대표가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내 중진의원들과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 시계방향부터 주승용 의원, 안 대표, 조배숙·이찬열 의원, 김동철 원내대표. ⓒ뉴시스

안철수의 미래

안 대표는 이번 통합론을 띄우면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통합론에 제동을 걸었지만 호남 의원들과의 간격은 더욱 벌어진 상태다. 친안계와 호남 의원들 사이의 갈등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증폭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제2창당위원회가 제안한 시도당위원장과 지역위원장 일괄사퇴의 뇌관은 아직도 살아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당이 호남 정당이라는 점을 볼 때 시도당위원장과 지역위원장 일괄사퇴는 결국 호남계의 힘을 빼고 친안계가 당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호남계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날 연석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결론이 쉽게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곧 친안계 세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남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서 정책·선거연대로 급선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위원장 일괄사퇴에 집중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당을 새로운 정당으로 만들어 내놓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당이라는 것은 곧 친안계가 장악한 당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이 흐지부지된 지금도 당내 갈등의 씨앗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 갈등은 언제든지 밖으로 표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년 지방선거 때 지금의 정당 구조로 선거를 치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개편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는 국민의당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줬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의 보수대통합보다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자강파의 중도대통합이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우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자강파의 중도대통합의 가능성은 얼마든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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