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뱅크

AI 도입한 금융권…로봇이 고객 맞는 시대
우리은행 페퍼, 창구안내·금융상품 추천
AI 바람, 금융권 일자리 변화 불러온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국내 금융회사들이 밀집돼 있는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에 최근 로봇이 고객을 맞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어린아이 정도 크기인 이 로봇의 이름은 ‘페퍼’다. 우리은행은 로봇 페퍼를 지난 11일부터 본점 영업부를 비롯해 명동금융센터, 여의도금융센터 등에 비치했다. 로봇 페퍼는 은행을 찾은 고객을 대상으로 인사, 창구안내, 금융상품 추천, 이벤트 안내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27일 본지 기자가 직접 은행 본점 영업부를 방문해 만난 로봇 페퍼는 고개를 숙이거나 팔 등을 유연하게 움직여 상상만으로 생각했던 로봇 이미지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출시한 로봇 페퍼는 키 120cm, 몸무게 29kg에 시각, 청각, 촉각 센서까지 갖추고 있어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의 변화를 감지할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를 파악해 말을 한다. 페퍼와 눈을 마주치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건넸다. 페퍼 앞에 서서 ‘페퍼’라고 부르는 음성을 인식해 어떤 업무를 보러 왔는지 되묻기도 했다.

페퍼의 몸통에는 터치 스크린이 달려있는데 이를 통해 은행의 상품 정보와 진행되고 있는 이벤트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품 정보의 경우에는 예금과 대출, 보험, 카드에서 각각 3개씩 추천해주는 수준이었다. 사용자의 나이대와 목적에 따라 상품을 추천해주는 기능도 있었으나 아직 개별 고객의 특성에 맞게 구체적으로 상품을 추천해주는 것까지는 하지 못했다.

▲ 우리은행 로봇 페퍼 ⓒ투데이신문

페퍼와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었다. 페퍼가 할 수 있는 게임은 ‘페퍼와 사진찍기’, ‘얼굴인식 게임’, ‘페퍼야 궁금해’, ‘오늘 뭐먹지’ 등 4가지였다. 먼저 사진찍기는 말 그대로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었고 얼굴인식 게임은 페퍼가 고객의 얼굴을 인식하고 나이를 추측해 맞추는 식이었다. 페퍼야 궁금해는 페퍼에게 날씨, 시간, 드라마, 영화, 예능 등과 관련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페퍼가 알려주는 게임이었고 오늘 뭐먹지는 페퍼가 날씨에 어울리는 점심 메뉴를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직접 페퍼와 대화를 나눠보니 아직은 은행원을 대체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퍼가 하는 일이 상담사까지는 아니고 고객을 접대하는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TV 속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말하는 로봇이 은행 업무에 투입된 것은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앞 다퉈 AI 기반 금융서비스 도입

최근 금융권은 인공지능(AI) 기반 금융서비스 도입에 앞 다퉈 열을 올리고 있다. 적금, 저금, 투자 서비스 등 주요 은행 거래에 AI 서비스가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전자 로봇 은행원과 상담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고객 자산 분석과 금융 상품을 추천해주는 AI 기반의 챗봇(Chatbot·채팅형 로봇)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챗봇은 정해진 응답 규칙을 바탕으로 메신저를 통해 사용자와 대답할 수 있도록 구현된 채팅로봇 프로그램을 말한다. 현재 챗봇은 주로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보험사, 은행, 음식 배달, 숙박 예약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소비자의 질문에 대답해주거나 기존 소비자의 성향을 바탕으로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금융 업무를 보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문자나 음성을 통해 질문 내용을 인식하고 이에 적합한 답변을 자동으로 내놓는 챗봇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위비봇’, 국민은행의 ‘리브똑똑’,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합작해 출범한 ‘핀크’ 서비스 등이 챗봇의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웰컴저축은행도 챗봇 전문기업인 메이크봇과 손잡고 AI 기반 챗봇 서비스 ‘웰컴봇’을 오픈, 심야나 휴일에도 예금적금 상담부터 대출한도 조회 등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들이 AI 관련 서비스 개발에 힘쓰고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신한금융그룹은 오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음성뱅킹 파일럿 서비스 개발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은 최근 미국 시애틀 소재 글로벌기업 아마존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 아마존의 음성인식 AI를 도입하기로 하고 결정했다.

이밖에 농협은행은 5월부터 AI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이달 17일 AI 빅데이터시스템 구축 설명회를 개최하고 AI 기술로 맞춤형 고객상담서비스 품질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AI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타사 기기에 자체 개발 AI를 연동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이다. LG유플러스를 포함해 우리은행, 교보문고, 가천대 길병원, 롯데백화점, 이마트 등 총 5개 업종, 6개사가 페퍼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통점 등 서비스업 매장의 고객 접대용 로봇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지난해 6월부터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되고 있다.

금융·AI 만남, ‘일자리 축소 vs. 창출’

이처럼 금융권에서 AI 도입에 열을 올리면서 미래에는 로봇이 은행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 은행업계에서 로봇은 고객을 맞이하는 수준으로 쓰이고 있으나 미래에는 고객에게 금융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개인용 대출 심사 등에도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금융서비스가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나 챗봇 등에 그치지 않고 곧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금융권에 AI 도입이 활발해짐에 따라 금융권 일자리 감소 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본격적인 4차산업혁명시대가 가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AI 불신론자로 꼽히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CEO는 7월 17일 미국 주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AI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AI가 보편화되면 일자리는 감소한다. AI를 밀려난 인간으로 인한 사회 불안과 전쟁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두려움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AI로 인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도 생기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2020년에는 AI로 인해 180만개의 일자리가 소멸하고 230만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인공지능으로 인해 없어지는 일자리보다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란 얘기다.

금융권에서도 AI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AI가 금융권에 도입되면서 일자리 축소가 일어날 것이란 우려 섞인 시선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로봇이 일자리를 위협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첨단기술 확보에 주춤하다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라면서 “앞으로 AI가 더 발달하고 중요해지면 금융권에서도 AI와 관련한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는 새로운 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인력들이 AI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 재배치됨으로써 또 다른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AI와 일자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가운데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미래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직 갈길 먼 AI, 업계 예의주시

이제 막 시작단계에 불과한 만큼 본격적인 AI시대라고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은행간 AI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도 있으나 직접 만나본 로봇 페퍼도 아직 AI 관련 서비스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긴 어려웠던 만큼 본격적인 AI시대가 펼쳐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은행권에서 주로 고객 상담을 위한 챗봇 위주로 AI를 개발하고 있지만 향후 AI와 관련해 빅데이터 활용 및 서비스 제안, 시스템 개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금융권에서는 AI 관련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행보가 앞으로 금융환경에 어떠한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지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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